더컨버세이션 갈무리"역사적으로 쿠데타 시도는 절반만 성공한 반면, 민주적으로 선출된 지도자가 친위 쿠데타(self-coup)를 시도하는 경우 5건 중 4건 이상이 성공했다. 1987년 독재 시대를 끝낸 한국은 민주주의에 대한 위협에 대항한 시민들이 친위 쿠데타를 실패하게 했다."
2차 세계대전 종전, 1945년 이후 전 세계에서 발생한 쿠데타를 분석한 '콜퍼스 데이터세트(colpus dataset)' 연구자인 존 조셉 친(John Joseph Chin) 카네기멜론대학교 조교수와 조 라이트(Joe Wright) 펜실베이니아주립대 정치학 교수는 3일 한국에서 벌어진 윤석열 정부의 친위 쿠데타 실패에 대해 이 같은 분석을 내놨다.
미국 비영리 매체 더컨버세이션에 실린 '친위 쿠데타란 무엇인가? 대한민국 대통령의 시도는 실패로 끝났다 - 증가하는 세계적 추세 속의 주목할 만한 예외'(What is a self-coup? South Korea president's attempt ended in failure − a notable exception in a growing global trend)라는 5일자 분석 기고에서 연구자들은 윤석열 정부의 계염령 선포를 '친위 쿠데타'(self-coup)로 정의하고 2차 세계 대전 종전 이후 전 세계에서 발생한 쿠데타와 3일 한국에서의 친위 쿠데타 사이에서의 차별점을 짚었다.
연구자들은 윤석열 대통령이 사전 예고 없이 '친북 반국가 세력'의 위협을 이유로 3일 계엄령을 선포하고 군을 동원해 국회의사당 점거와 민주당 등 야당을 무력화 시키려 한 시도는 많은 한국인들을 경악하게 했다며 이를 '오토골프(autogolpe)' 또는 '친위 쿠데타(self-coup)'라고 정의했다.
쿠데타 연구 분석 시스템인 '콜퍼스 데이터(colpus dataset)'에 따르면 2차 세계대전 이후 10년보다 최근 10년 동안 친위 쿠데타가 가장 많이 발생하며 점점 더 흔해지는 현상을 보이고 있다.
저자들은 모든 쿠데타 시도에는 행정권 탈취를 포함해 민간인에 대한 군인들의 감시와 불법적 행위가 공통적으로 수반되는 특징을 갖고 있다고 봤다. 그러면서 주로 군권을 가진 쿠데타 세력이 현직이나 유력한 정치 지도자로부터 그 권한을 빼앗으려는 의도를 가지고 있다고 지적했다.
대표적으로 아우구스토 피노체트 장군이 이끄는 칠레 군부는 1973년 첫 민주적 투표로 당선된 살바도르 아옌데 대통령과 행정부를 축출하고 군부 통치를 시행했다. 대한민국에서는 1961년 5.16 군사 쿠데타와 1979년 12.12 군사 반란 사건이 대표적이다.
1945년 2차 세계대전 종전 이후 민주 국가에서 발생한 친위 쿠데타 비율. 더컨버세이션 갈무리 윤석열 대통령이 3일 저녁 비상계엄을 선포한 가운데 4일 밤 서울 국회의사당에서 계엄군이 국회 본청으로 진입하고 있다. 연합뉴스 "이례적인 한국의 친위 쿠데타 방식"
45년 만에 선포된 윤석열 정부의 12·3 계엄령 선포에 대해 연구자들은 단순히 국가 위기에 의한 계엄령보다 친위 쿠데타(self-coups) 또는 역 쿠데타(coups in reverse)였다고 평가했다. 계엄령 선포 의도를 보면, 현 행정부가 정권 내의 다른 권력(사법부-법원이나 입법부-의회)에 대해 불법적 강제 수단을 동원하거나 이를 지원해 자신의 임기를 연장하거나 권력을 확장하려는 의도가 다분하다는 것이다.
군대 등 물리력을 동원해 의회를 폐쇄하거나 선거의 패배를 뒤집으려는 시도에 주목하며 2021년 카이스 사이에드 튀니지 대통령이 자신의 권력을 지속하기 위해 의회와 사법부를 해산 시킨 사건, 2021년 트럼프 대선 패배에 불복해 지지자들이 조 바이든 당선인의 대통령 인준을 막기 위해 국회의사당을 무력으로 점거했다가 결국 진압된 사건 등을 꼽았다. 당시 트럼프는 2020년 대선 패배 후 선거 결과가 조작됐다는 음모론을 주장해 사태가 확산됐다.
실제 이번 윤석열 정권의 계엄군은 헌법과 계엄법 위반 소지가 있는 국회와 선거관리위원회에 군 특수부대를 투입시켜 봉쇄·장악을 시도했다. 이런 점에서 연구자들은 한국의 이번 친위 쿠데타가 다른 유형들과 다른 특징을 띄고 있다고 강조했다.
콜퍼스 데이터에 따르면 1945년 이후 민주 국가에서 발생한 친위 쿠데타는 모두 46건이었다. 특히 민주주의 국가에서 발생한 쿠데타 시도의 절반 이상이 사법부나 입법부를 표적으로 삼았고, 이중 약 40%만이 민주적 선거 결과를 훼손하거나 선거 당선자를 축출하려 했고, 대부분은 상대 정치 지도자나 현 정부를 표적으로 삼았다.
윤석열 정권의 계엄군은 야당인 더불어민주당이 다수당을 차지하고 있는 의회를 장악하기 위해 계엄령을 선포했지만, 민주주의 국가에서 발생한 친위 쿠데타의 4분의 1만이 이에 해당한다는 점에서 흔치 않다고 지적했다.
더컨버세이션 갈무리 계엄이 선포된 4일 서울 여의도 국회 의사당에서 군인들이 국회 관계자들과 충돌하고 있다. 윤창원 기자왜 친위 쿠데타는 실패했을까?
연구자들은 윤석열 정부의 친위 쿠데타가 실패한 이유에 대해서도 분석을 내놨다.
친위 쿠데타를 시도하는 대통령이나 친위 조직들은 현 정권이 국가 권력을 쥐고 있는 만큼 쿠데타 성공 확률이 높다고 생각할 가능성이 있다면서도 이번 12·3 친위 쿠데타에 자신이 속한 여당(국민의힘) 지도부의 사전 지지 없이 쿠데타를 시도 했다는 것은 매우 이례적이라고 분석했다.
콜퍼스 데이터에 따르면 전통적인 쿠데타 시도의 절반만이 성공하는 반면, 민주적 절차에 의해 선출된 지도자가 친위 쿠데타를 시도하는 경우 5건 중 4건 이상이 성공했다.
연구자들은 쿠데타 성공 요인은 당파적 동맹과 군부 엘리트 등 권력과 밀접한 관계에 있는 많은 이들의 협력에 달려 있다면서, 군사적 지원이 도움이 되지만 항상 결정적인 것은 아니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쿠데타 실패에는 군부와 정당 정치인의 이탈이 주된 이유가 되지만, 서울에서 보여진 것처럼 쿠데타에 반대하기 위해 수많은 시민들이 거리로 쏟아져 나올 때 군부는 긴장하고 쿠데타 동조에서 이탈할 수 있다고 봤다. 쿠데타에 대한 국제 사회의 비난도 친위 쿠데타를 뒤집는 데 영향을 끼친다고 말했다.
1980년 전두환 신군부의 '김대중 내란음모 조작 사건'은 국제 사회의 비판적 여론과 미국의 압력에 무력화된 대표적 사건이다.
연구자들은 미국처럼 민주적 자본을 축적해온 오랜 민주주의 국가에서는 친위 쿠데타가 발생활 확률이 적다면서 이는 민주주의에 대한 대중의 지지, 민주주의의 오랜 역사와 함께 성장해온 시민 사회의 역량이라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한국이 1961년부터 1987년까지 군사 독재 정권이었지만 1987년 민주화 이후 40년 가까이 민주적 절차에 의한 통치에 기반해왔고, 이 같은 민주적 시스템이 위협받았던 지난 3일 국회 여야 지도자들이 윤석열 정권의 계엄령에 반대하는 의결을 만장일치로 통과시킨 점을 높게 평가했다.
특히 1972년 박정희 유신 계엄, 1980년 전두환 비상계엄과 대조적인 결과였다고 주목했다.
윤석열 대통령이 비상계엄을 선포한 지난 3일 저녁 서울역 TV에 관련 뉴스가 나오고 있다. 연합뉴스 4일 오후 서울 동화면세점 앞에서 열린 '내란죄 윤석열 퇴진! 시민촛불'에서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 조합원을 비롯한 참석자들이 용산 대통령실 방향으로 행진하고 있다. 연합뉴스 친위 쿠데타 지도자의 미래는?
연구자들은 친위 쿠데타를 시도한 지도자가 장기 집권한 적은 거의 없다고 전했다. 콜퍼스 데이터에 따르면 실패한 친위 쿠데타 지도자 중 임기가 끝날 때까지 1년 이상 집권한 지도자는 단 1명뿐이다.
그러면서 윤 대통령의 집권 기간이 얼마 남지 않았을 가능성이 크다고 봤다. 실제 6개 야당이 윤 대통령에 대한 탄핵안을 제출했다고 강조했다. 국회의원 300명 중 200명 이상이 찬성해야 하는 투표에서 국민의힘 소속 의원 108명 중 18명이 계엄령 해제요구안에 찬성표를 던짐으로써 탄핵안 반대 이탈표 가능성이 있다고 짚었다.
연구자들은 친위 쿠데타의 위협에도 불구하고 민주주의를 상징하는 국회가 적어도 지금은 버텨내고 있는 것 같다고 평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