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대통령이 비상계엄을 선포한 3일 밤 서울 여의도 국회 출입문을 경찰이 통제하고 있다. 박종민 기자12·3 비상계엄 선포 때 경찰을 동원해 국회의원의 출입을 차단했던 조지호 경찰청장과 김봉식 서울경찰청장이 내란 중요임무 종사 혐의로 구속된 가운데, 당시 '경찰의 벽'에 막힌 탓에 계엄 해제 결의안 표결에 참여하지 못한 국회의원은 최소 14명에 달하는 것으로 파악됐다.
경찰 통제로 '계엄 해제' 투표 참여 못한 의원 최소 14명
19일 더불어민주당 천준호 의원실이 확보한 국회사무처 자료에 따르면, 비상계엄 선포 후 2시간 18분이 흐른 4일 0시 47분에 개의해 15분 뒤 '비상계엄 해제 요구 결의안(결의안)'을 가결시켰던 국회 본회의에는 총 215명의 의원이 출석했다.
개의 시점에 본회의장에 있었던 재석 의원은 190명으로, 결의안은 이들의 전원 찬성으로 가결됐다. 본회의 출석 의원으로 집계된 나머지 25명은 결의안 표결 이후 회의장에 온 의원들로, 당시 본회의는 새벽 5시 54분까지 지속됐다.
CBS노컷뉴스가 결의안 표결이 이뤄진 후 뒤늦게 본회의에 출석한 국회의원 25명을 전수조사 한 결과 이들 가운데 14명이 경찰의 국회 통제로 시간을 뺏겨 투표에 참여하지 못했다고 밝혔다. 정당별로는 △민주당 9명 △국민의힘 3명 △개혁신당 2명이었다. 이번 조사는 의원 본인 확인(13명), 보좌진을 통한 확인(12명) 방식으로 진행했다.
민주당 안규백 의원은 "3일 밤 (국회 앞에) 도착했지만 경찰과 세 차례 실랑이를 벌이다 결국 표결이 끝난 뒤에야 들어갈 수 있었다"고 말했다. 같은당 장종태 의원도 "지역구(대전 서구갑)에서 출발해 4일 0시 30분쯤 (국회 정문으로) 들어가려 했다. 국회의원 신분증까지 제시했는데도 (경찰이) 못 들어가게 했다"며 "(동료 의원들이) '담이라도 넘어서 들어오라'고 했으나 이미 방어가 강화돼 담을 뛰어넘을 수 있는 상황도 아니었다"고 밝혔다.
국민의힘 안철수 의원과 함께 있었다던 안 의원실 관계자는 "(안 의원이) 계엄 선포 이후에 바로 국회로 왔지만, 경찰이 막고 있어 들어갈 수 없는 상황이었다"며 이후 당사에서 의원총회가 개최된다는 문자를 받고 당사에 갔다가, 다시 본회의 참석을 위해 국회로 향했다고 전했다. 그러면서 "(안 의원은) 결의안이 상정돼서 급한 마음이었는데, 경찰들과 조금 실랑이가 있었다"며 "표결은 못하고 월담을 해서 국회로 들어간 것"이라고 설명했다.
개혁신당 이주영 의원도 "4일 0시 40분쯤 이준석 대표와 같이 국회 3문으로 들어가려고 했으나, (경찰이) 막았다"고 증언했다. 같은당 이준석 의원은 "1시 51분까지 (국회 밖에) 붙잡아 놨다"고 했다.
민주당 박수현 의원은 경찰 뿐 아니라 계엄군에게도 막혔다고 증언했다. 박 의원은 "시민들의 도움으로 국회 문을 간신히 통과했는데 국회의원회관 지하통로 철제문이 막혀있었다"며 "틈으로 들여다보니 707부대가 차 있었다. '내란 공범이 되니 문을 열라'고 10여 분을 외쳤는데 가결되고 난 이후에 문이 열렸다"고 했다.
4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제418회국회(정기회) 제15차 본회의에서 비상계엄 해제 요구 결의안이 재석190인, 찬성190인으로 가결되고 있다. 윤창원 기자본회의에 늦게 출석한 나머지 11명의 국회의원 가운데 7명(민주당 6명·진보당 1명)은 지역구 방문이나 출장 일정 진행 중에 계엄 선포 소식을 접하고 급히 본회의장을 찾았지만, 표결에는 참여하지 못했다고 밝혔다. 그 외 4명(국민의힘) 가운데 2명은 당사에 있다가 본회의장으로 갔다고 밝혔고, 2명은 구체 사유를 밝히지 않았다.
한편 해당 본회의에 불출석한 국회의원 85명 가운데 83명은 국민의힘, 2명은 민주당 의원이었다. 국민의힘 추경호 전 원내대표의 '당사 의원총회' 공지 영향도 컸을 것으로 추정된다. 다만 전날 한 언론을 통해 공개된 당일 국민의힘 의원들의 단체 대화방 내용 전문에는 "경찰들 있어서 담도 못넘어가요ㅠ"라는 내용도 포함돼 있다. 같은당 의원 18명은 이런 상황에서도 표결에 참여해 결의안에 찬성표를 던지기도 했다. 이를 감안하면 경찰 통제로 표결에 참여하지 못한 국회의원은 이번 전수조사로 파악된 14명보다 더 많을 것으로 보인다.
경찰, 국회에 1900여명 투입…헌법 전문가들 "국회 봉쇄, 내란죄 성립"
경찰이 국회에 제출한 자료를 보면, 첫 국회 출입 통제는 비상계엄 선포 직후 3일 밤 10시 46분에 시작됐다가 20분 뒤 국회의원과 국회 관계자의 출입은 허용됐다. 그러나 국회의 활동을 금한다는 내용의 포고령이 발표된 직후 밤 11시 37분부터 다시 국회의원 출입까지 전면 차단됐다. 이 같은 경찰의 조치가 해제된 것은 다음날 새벽 1시 45분쯤이었다.
4일 새벽 국회에 배치된 경찰 기동대는 총 32개 부대, 1900여 명에 달했다. 경찰의 무전 녹취록에는 국회의원의 출입은 막고, 계엄군은 진입시킨 정황이 담겼다.
전문가들은 경찰이 국회의원의 출입을 통제하며 국회의 정상적인 활동을 차단했다면 내란죄를 적용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김선택 교수는 "국회가 계엄 해제 요구안을 결의하지 못하도록 강압적으로 방해하고, 무장병력까지 동원해 국회를 심야에 기습한 것은 폭동"이라며 "판례에 따르면 국회의사당을 강압적으로 봉쇄하는 것만으로도 내란죄 성립이 가능하다"고 말했다.
경희대 법학전문대학원 정태호 교수도 "비상계엄이 선포되더라도 국회에 특별한 조치를 취할 수 없게 돼 있다"며 "경찰까지 투입해 국회의원들의 출입을 막은 것은 국회의 정상적인 활동을 막기 위한 것으로 국헌문란의 목적에 부합한다"고 강조했다.
앞서 경찰청 국가수사본부 비상계엄 특별수사단은 비상계엄 선포 약 3시간 전 윤석열 대통령을 만나 계엄 관련 내용을 전달 받은 뒤 국회에 경찰을 투입, 출입을 통제해 내란에 가담한 혐의로 조지호 경찰청장과 김봉식 서울경찰청장을 구속했다.
윤석열 대통령이 긴급 담화를 통해 비상계엄을 선포한 가운데 4일 새벽 서울 여의도 국회의사당 정문 앞에서 군·경찰과 대치하던 시민들이 비상계엄 해제 요구 결의안이 가결되자 환호하고 있다. 류영주 기자일선 경찰관의 책임에 대해선 전문가들의 의견이 나뉘었다. 헌법연구관 출신인 노희범 변호사는 "현장 경찰관이나 병사는 상부의 명령에 따라 동원된 측면이 크다"며 "이들이 국회의 기능을 마비시키려는 의도를 가졌다고 보긴 어렵다"고 말했다.
반면 정 교수는 "병사나 경찰관들은 (국헌문란) 목적 달성을 위한 수단으로 동원됐지만 어쨌든 가담한 것"이라며 "그 시스템 속에 있었기 때문에 원치 않았지만 가담하게 된 불행한 사태가 발생했다"고 봤다.
김 교수 역시 "부화수행자는 시키는 대로 왔다 갔다 하는 사람들이어도 다 처벌한다"며 "(내란죄가) 굉장히 중범죄이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우리나라는 법치행정 국가"라며 "위법적인 명령에는 불복종 의무가 있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