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대통령이 21일 오후 서울 종로구 재동 헌법재판소에서 열린 탄핵심판 3차 변론기일에 출석해 차기환 변호사와 대화하고 있다. 사진공동취재단12·3 내란사태를 벌인 대통령 윤석열 탄핵 국면에서 벌어진, 윤석열 지지자들을 위시한 극우 세력의 법원 테러를 제대로 단죄하지 못하면 한국 사회가 내란을 넘어 '내전' 상황으로 치달을 수 있다는 경고가 나온다. 그간 내란을 옹호하고 극우 세력을 두둔해왔다고 비판받는 국민의힘이 자의든 타의든 내전 상황을 부추기고 있다는 성토 역시 커지고 있다.
정치평론가 김준일은 21일 CBS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 유튜브 방송 '정꿀쇼'에 출연해 윤석열 지지자들의 서부지법 폭동 사태를 두고 "장기 내전의 신호탄"이라고 진단했다.
김준일은 "이번 폭동 등 민주주의를 부정하고 법치주의를 부정하는 것에 대해 정치 세력이 어떻게 대응하는가가 굉장히 중요하다"며 "민주주의가 후퇴해 서로 폭력을 용인하기 시작하면 악의 순환을 일으키고, 그것이 독재자의 등장까지 용인할 수 있다"고 우려했다.
그는 독재자 프란시스코 프랑코(1936~1975)에게 유린당한 스페인 사례를 들며 "프랑코가 내려오고 우파가 계속 (정권을) 잡고 있었는데, 1981년 좌파가 (선거에서) 이겼다. 그런데 쿠데타가 일어났다"고 운을 뗐다.
"군인 200여명이 국회의사당에 들어가 선거 결과를 좌파에 넘겨 줄 수 없다고 했는데, 그때 우파 정당들이 (쿠데타를) 인정할 수 없다며 단호하게 (군인들을) 체포했다. '좌파에게 정권을 넘겨 주더라도 더이상 민주주의 원칙을 훼손할 수 없다'며 결단을 내린 것이다. 그렇게 쿠데타가 끝나고 스페인의 민주주의가 이어져왔다."
김준일은 "지금 국민의힘이 하는 (내란 세력을 옹호하면서 극우화 되는) 것들은 내전의 신호탄이다. 굉장히 위험하다"며 "한 번 가슴이 아프고 국격이 떨어지는 문제가 아니다. 해외 사례를 봤을 때 이런 식으로 폭력을 용인하기 시작하면 악의 구렁텅이로 빠질 수밖에 없다"고 경고했다.
"내전 행위자는 '두 집단'…내란 행위자는 '문제적인 한 집단'"
내란 우두머리 혐의를 받는 윤석열 대통령이 구속된 가운데 19일 오전 서울 마포구 서울서부지방법원 현판이 떨어져 있다. 연합뉴스그렇다면 '내란'과 '내전'은 어떻게 다를까. 사회연구자 최성용이 이를 알기 쉽게 풀었다.
최성용은 전날 SNS에 올린 글에서 "내전과 내란은 다르다. 특히 내전을 습관처럼 쓰면 안 된다"며 설명을 이어갔다.
"쿠데타나 테러, 반란을 통해 공화국을 위협하는 것은 내란이다. 내전은 한 정치공동체 내의 두 집단이 물리력을 사용해 서로를 제압하려는 것이다. 요컨대 내전의 행위자는 '두 집단'이고, 내란의 행위자는 '문제적인 한 집단'이다."
이에 따라 그는 "지금은 내전이 아니라 내란 상황"이라며 "더욱이 전쟁과 학살을 다루는 연구자로서, 내전이라는 은유는 좀 더 엄밀하게 다뤄져야 한다고 본다"고 강조했다.
"한국사회에서 내전은 적어도 3년간의 한국전쟁 시기 또는 1948년 4월 3일부터 1953년 7월 27일까지 벌어졌다. 그 이후로 지금까지 내전은 없었다. 물론 국가가 사회를 대상으로 하는 '사회 내전'을 제외한다면. 12·3 비상계엄이나 광주 5·18은 두 집단 간의 내전이라기보단 국가가 사회를, 민간인을 대상으로 한 내전이었다."
최성용은 "개념으로 말하자면, 갈등과 내전은 다르다. 갈등의 한 유형이자 단계론적인 갈등 범주에서 극단적인 단계에 해당하는 것을 내전이라 부른다"며 "지금은 아직 거기까지 안 갔다. 12·3 비상계엄의 순간만이 '사회 내전'에 해당할 수 있다. 현재는 공화국을 대상으로 하는 '내란'이라고 말해야 옳다"고 분석했다.
"불행히도 여러분은 극우를 통제할 수 없다"
국민의힘 김민전 의원이 지난 17일 국회 교육위원회 전체회의에서 열린 AI 디지털교과서 검증 청문회에서 '백골단' 회견과 관련해 의견을 피력하고 있다. 김 의원은 윤석열 대통령 체포 반대 집회에 참가하며 '백골단' 명칭을 사용한 '반공청년단'의 국회 기자회견을 주선했다. 연합뉴스서부지법 폭동 사태는 물론 최근 국민의힘 김민전 의원의 '백골단' 기자회견 사태에서도 단적으로 엿볼 수 있듯이, 여당이 당장의 정치적 이득을 위해 극우와 손잡고 이들 세력의 제도권 진입을 돕는 데 대한 비판도 비등하고 있다.
역사학자인 주진오 상명대 명예교수는 지난 19일 서부지법 폭동 사태가 벌어진 뒤 올린 SNS 글에서 "지금 우리는 입법부는 물론 사법부마저 쿠데타 세력에게 공격을 당하는 국면에 이르렀다"며 "단호하게 막지 못하면 파시즘으로 전락하게 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주 교수는 특히 "여기서 중요한 것은 보수의 태도다. 극우와 손을 잡고 파시즘으로 함께 몰락할 것인지, 법과 질서를 확립하는 방향을 택할 것인지 결정해야 한다"며 "이미 국민의힘은 보수정당을 포기하고 극우세력에 영혼을 팔았다. 사법부를 침탈한 폭도들을 온갖 궤변으로 옹호하는 것은 보수라고 할 수 없다"고 질타했다.
작가 허지웅 역시 같은 날 올린 SNS 글들을 통해 "현재 진행 중인 여당의 극우화는 놀라운 일이 아니다. 이들은 자신들의 생존을 위해 국가의 존망을 걸고 폭민의 당이 되길 자처했다"며 "당장은 쉬운 길로 보이겠지만 사실 그건 길이 아니다. 절멸이다"라고 꼬집었다.
그는 서울서부지법 폭동 사태 관련자들에 대한 철저한 수사를 촉구하면서 "어디서부터 시작된 일일까. 정부 여당이 참회와 쇄신 대신에 극우를 품에 안고 동일시하는 순간 시작됐다"고 성토했다.
이어 "대통령 권한 대행이 경제 회복과 공동체 재건의 첫걸음이 될 정당한 법 집행에 족쇄를 걸었던 순간 시작됐다"며 "지난 세기 유럽에서 여러 번 되풀이됐던 몰락의 첫 단추가 21세기 대한민국에서 다시 한번 맞물려 끼워졌다"고 우려했다.
허지웅은 "과거 그들(지난 세기 유럽 정치권)은 극우와 손을 잡았다. 연정을 하거나 내각에 참여토록 했다. 잠시 동안의 불쾌한 악수일 뿐 당장의 위기만 해결되면 언제든 극우를 통제할 수 있다고 자부했다"며 "불행히도 그런 일은 벌어지지 않았다. 여러분은 극우를 통제할 수 없다. 한번 제도권 안으로 들어온 극우는 모든 걸 완전히 불태워 마침내 스스로 불쏘시개가 될 때까지 결코 멈추지 않는다"고 경고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