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 박성훈은 '오징어 게임' 시즌2에서 성소수자이자 특전사 출신의 조현주(왼쪽) 역을 맡았다. 넷플릭스 제공누구보다 빛났을 그였다. 본인이 더 아쉬움으로 남을 터였다. 어처구니없는 실수로 눈물의 인터뷰를 해야 했고 결국 차기작에서도 하차를 했다.
넷플릭스 시리즈 '오징어 게임' 시즌2는 배우 박성훈의 50번째 작품이었다.
익히 알려졌듯이 그의 인생은 순탄치만은 않았다. 학창 시절에는 햄버거를 살 돈조차 없어 눈물을 삼켜야 했고, 군 복무 중 꿈같은 휴가를 앞두고 줄 돈이 없어 나오지 말아 달라는 어머니의 전화를 받은 사연도 유명하다.
그는 7년 동안 반지하 생활을 전전하며 연극 무대를 통해 연기 경력을 차곡차곡 쌓았다.
시즌2는 그런 밑바닥부터 일궈온 결실과도 같았다. 무엇보다 이미 대학로 무대에서 성소수자 역할을 해본 경험도 있었다.
'오징어 게임' 시즌2. 넷플릭스 제공최근 서울 종로구 한 카페에서 진행된 인터뷰에서 박성훈은 "당시 제 그릇이 작아 편협한 생각을 하고 있었는데 연극 '두결한장'을 통해 제 사고를 180도 바꾸게 됐다"며 "그래도 일반분들보다는 (성소수자에 대해) 조금 알고 있는 상태였다"고 떠올렸다.
그는 "감독님의 섭외 제안을 받았다. 그동안 실제 성소수자 배우 분들과 미팅을 해보셨지만, 적임자를 찾지 못했다고 하시더라"며 "KBS 단막극 '희수'를 보시고 현주를 떠올리셨다고 했다"고 말했다.
이어 "제 안에 많은 여성성이 있는데, (감독님이) 그걸 꿰뚫어 보신 그런 느낌이었다"며 "놀랍기도 하고 신기하기도 했다"고 덧붙였다.
박성훈은 이후 실제 성소수자들을 만나 자문했다고 한다. 그는 "감독님도 저도 현주가 절대 희화화돼서는 안 된다고 공감했다"며 "그래서 과도한 목소리 변조나 과장된 제스처는 삼가려고 했다. 개인적으로 연구를 더 하고 학습한 상태에서 촬영에 들어갔다"고 강조했다.
"현주는 부드러움 속 카리스마…차별받는 소수자분들께 힘 되길"
배우 박성훈은 작품 속 조현주로 분장할 때 황동혁 감독은 좀 더 긴 머리를 원했고, 분장팀에선 짧은 머리를 원했다고 한다. 박성훈은 앞머리를 내달라고 말했단다. 넷플릭스 제공박성훈이 맡은 조현주는 이타적이면서도 리더십을 갖춘 인물로 등장한다.
그는 "감독님이 현주의 리더십을 부드러움 속의 카리스마라고 말씀해 주셨다"며 "유치원 교사처럼 해줬으면 좋겠다는 디렉팅을 받았다"고 떠올렸다. 다만, 게임 도중 용궁 선녀(채국희)의 뺨을 때리는 장면에 대해선 "특수한 상황에서 벌어진 일"이라고 덧붙였다.
이어 "현주의 배려심과 의로운 면모를 살리고 싶었다"며 "아직도 이 순간 어디선가 핍박받고 차별받으며 비난받는 소수자분들께 조금이나마 힘이 되는 인물이 됐으면 좋겠다는 마음으로 촬영에 임했다"고 강조했다.
또 "현주는 제 안에 있는 여성성을 확장해서 만든 인물이긴 하지만 저보다 굉장히 용기 있고 결단력 있다"며 "저는 겁도 굉장히 많고 두려움도 많이 갖고 있는 그런 불안정한 인물인데 현주라는 인물을 만나서 저한테 많은 가르침을 준 것 같다"고 덧붙였다.
'오징어 게임' 시즌2. 넷플릭스 제공참여한 게임에 대한 이야기도 전했다. 특히 5인 6각 게임을 촬영하면서 팀 간 유대감이 크게 형성됐다고 한다. 박성훈은 "자연스럽게 팀원끼리 같이 밥을 먹는 시간도 늘었고 끝나고 가볍게 술 한잔하는 시간도 가졌다"며 "팀별로 뭉쳐서 다녔다"고 말했다.
극 중 김영미를 연기한 김시은과의 호흡도 언급했다. 박성훈은 "대기 시간이 좀 긴 편이어서 자연스럽게 밥도 먹고 얘기도 나누면서 자연스럽게 많이 가까워졌다"며 "장면 별로 여기서는 아이 컨택을 한 번 더 해볼지 여기서는 팔짱을 껴볼지 이런 것들도 논의했다"고 밝혔다.
그는 "영미와 짧은 시간 안에 두툼한 애정이 생겼던 것 같다"며 "'언니도 너무 예뻐요'라는 말하는 영미가 현주를 마음속 깊이 이해하고 있다는 걸 느꼈다. 영미와 눈빛만 봐도 교감이 쌓여갔다"고 강조했다.
또, 핑크가드와 총격전을 벌이는 장면에 대해선 "다들 한 때 군인이어서 그런지 모두 총기를 잘 다뤄 놀랐다"며 "총기를 다루는 법을 설명할 때 더 전문적으로 보이기 위해 마지막에 '아시겠습니까'라는 말을 추가했다"고 말했다.
"촬영 슬레이트보고 20년 동안 고생한 순간들 스쳐 지나가기도"
배우 박성훈은 촬영 도중 강애심에게 "키 큰 미어캣을 닮았다"는 말을 들었다. 당시 산전수전 다 겪은 강애심이 NG를 낼 정도로 웃었다고 한다. 해당 장면은 영미가 현주에게 다가가 팀을 제안하는 신으로, 당시 현주가 양손을 모은 채 두리번거리고 있었다. 넷플릭스 제공박성훈은 '둥글게 둥글게' 게임 세트장을 보고 특히 감탄했다고 전했다. 그는 "문 하나하나 열어봐도 안에 다 세팅이 돼 있었다"며 "어디는 빈방이고 어디는 대충 만들어 놓은 게 아니라 공을 들여 다 만들어 놓으셨더라. 채경선 미술감독님께 감탄했다"고 떠올렸다.
황동혁 감독과의 호흡도 전했다. 박성훈은 "괜히 이 자리에 계신 분이 아니구나 이런 생각을 진짜 계속했다"며 "감독님이 감독님이자 작가님이시기 때문에 촬영하다가 조금이라도 모순적인 상황이 나오면 즉시 상의하고 고쳐서 찍었다"고 떠올렸다.
이어 "촬영은 거의 철저하게 콘티대로 진행됐다. 매일 아침 8시 반에 모여서 오후 5시나 6시면 촬영이 정확하게 끝났는데, 우스갯소리로 '우리 오징어 공무원이다'라고 얘기할 정도였다"며 "매회 촬영이 순조롭게 진행됐다"고 말했다.
박성훈은 시즌2에서 자신의 얼굴이 포스터에 등장한 소감을 전하기도 했다.
그는 "연기를 시작하며 가장 꿈꿔왔던 것 중 하나가 영화관에 제 얼굴이 담긴 포스터가 걸리는 거였다"며 "영화관은 아니지만, 감사하게도 오징어 게임 포스터에 제 얼굴이 들어가 여러 곳에 걸린 모습을 보면서 꿈에 좀 가까워지고 있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배우 박성훈이 지난 12월 9일 서울 동대문디자인플라자에서 열린 넷플릭스 '오징어게임2' 제작발표회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박종민 기자또, 5인 6각 게임을 촬영하면서 떠오른 특별한 기억도 전했다.
"막 소리를 지르다가 컷하고 슬레이트가 들어왔어요. 몇 시 몇 회차라고 기록된 것을 보니 거기에 23년 10월 며칠이라고 쓰여 있었어요. 제가 03학번이거든요. 연극영화과에 입학한 지 20년 만에 오징어 게임이라는 세계적으로 가장 주목받는 작품에 들어와 있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 순간 20년 동안 고생하고 즐거웠던 순간들이 한순간에 주마등처럼 스쳐 가는 경험을 했습니다."
한편, 지난달 26일 공개된 시즌2는 연신 흥행 기록을 쓰며 △오징어 게임 시즌1 △웬즈데이에 이어 넷플릭스 역대 세 번째로 가장 많이 시청된 작품에 올랐다. 여기에 시즌1까지 역주행을 불러일으키며 큰 관심을 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