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창용 한국은행 총재. 사진공동취재단미국 연방준비제도(연준·Fed)가 기준금리를 3연속 인하한 뒤 네 차례만에 동결하면서 한국은행도 2월 이후 통화 완화 속도를 조절할 가능성이 높아졌다.
한은 금융통화위원회(이하 금통위)가 다음 달 25일 통화정책방향회의에서 내수 부진과 계엄 사태에 따른 경기 위축 상황을 고려해 금리를 내리더라도 연준의 금리 동결로 2월 이후 연속적인 인하 결정을 하기는 더 어려운 여건이 조성됐다는 의미다.
연준은 지난달 28~29일(현지 시각)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 정례회의를 열어 정책금리(기준금리) 목표 범위를 연 4.25~4.50%로 유지했다.지난해 9월,11월,12월 3연속 금리 인하 이후 네 차례 만의 동결이다.
제롬 파월 연준 의장은 이날 "현 연준의 통화정책 기조는 기존보다 현저히 덜 제한적이고 경제는 강한 상황"이라면서 "통화정책 기조 변화를 서두를 필요가 없다"고 말했다.
연준의 이번 금리 동결로 한국(3.00%)과 미국(4.25~4.50%)의 기준금리 차이는 1.50%p로 유지됐다.
한은 금통위는 지난해 10월과 11월 기준금리를 연속 인하한 뒤 지난달 16일 동결을 결정했다. 고환율 지속과 대내외 불확실성 등이 동결 근거다.
이창용 한은 총재는 지난달 금통위 직후 기자설명회에서 "계엄 등 정치적 이유로 원/달러 환율이 30원 정도 펀더멘털(경제 기초체력)에 비해 더 오른 것으로 분석된다"면서 "두 차례 금리 인하 효과도 지켜볼 겸 숨 고르기를 하면서 정세에 따라 (금리 인하 여부를) 판단하는 게 더 신중하고 바람직하다"고 동결 배경을 설명했다.
그러나 2월까지 금리를 동결하기에는 국내 경기 상황이 너무 좋지 않다.
지난해 연간 실질 국내총생산(GDP) 성장률은 내수 부진에 비상계엄 이후 정치 불안까지 겹치면서 기존 전망치인 2.2%보다 0.2%p 낮은 2.0%에 그쳤다.
지난해 4분기 GDP 성장률도 계엄 사태에 따른 경제 심리 위축과 건설투자(-3.2%) 부진 등의 영향으로 11월 전망치(0.5%)보다 0.4%p나 낮은 0.1%로 추락했다.
이에 따라 한국 경제를 바라보는 국내외 기관들의 전망치도 계속 낮아지고 있다.
한국은행은 지난달 기준금리를 동결하면서 올해 실질 국내총생산(GDP) 성장률 전망치가 기존의 1.9%에서 1.6~1.7%로 하향 조정될 것으로 판단했다.
또 글로벌 투자은행(IB) JP모건은 1.3%에서 1.2%로, 씨티는 1.5%에서 1.4%로 성장률 전망치를 각각 하향 조정했다.
고공 행진하던 원/달러 환율도 새해 들어 비교적 안정된 흐름을 보이는 만큼 특별한 상황이 발생하지 않는 한 한은은 다음 달 기준금리를 0.25%p 인하할 것으로 예상된다.
이창용 한은 총재도 지난달 금통위 직후 기자설명회에서 "3개월 금리 전망을 통해 인하가 계속될 것을 얘기했다"면서 "인하 사이클이 당분간 지속되는 가운데 조정 시기를 조절하고 있는 것"이라고 말한 바 있다.
그러나 연준이 통화완화 속도 조절에 나서면서 한은도 2월 이후에는 연내 인하 횟수를 한 차례로 제한할 것이라는 관측이 힘을 얻고 있다.
미국이 기준 금리를 시장 기대만큼 낮추지 않는 상황에서 한은만 빠르게 내릴 경우 원화 가치 하락과 함께 환율 급등과 외국인 자금 유출 등을 부채질할 수 있기 때문이다.
조영무 LG경영연구원 연구위원은 "2월에는 트럼프 대통령 취임 후 정책과 연준의 통화정책 기조, 국내 정치 상황 진전에 따른 원/달러 환율 진정 여부 등을 확인할 수 있다"며 "한은은 2월을 포함해 상반기 두 차례 인하로 기준금리가 총 0.50%p 떨어질 것"이라고 전망했다.
주원 현대경제연구원 경제연구실장은 "연준의 점도표를 고려할 때 연준이나 한은 모두 올해 많아야 두 차례 인하에 그칠 가능성이 크다"고 예측했다.
조용구 신영증권 연구원은 "한은이 2월 기준 금리를 낮출 것으로 예상하지만, 미국의 금리 인하 폭이 축소되면서 이후 인하 속도도 늦춰질 것"이라고 내다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