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대통령이 20일 오후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에서 열린 탄핵심판 10차 변론에 출석해 있다. 사진공동취재단"(주요인사) 동향파악을 위해 위치확인을 했는데…정말 불필요한 일이고 잘못됐다고 생각한다."
12·3 비상계엄 당시 주요인사 10여명에 대한 체포 시도 정황이 여러 증인들의 입을 통해 중복으로 확인되는 가운데 윤석열 대통령이 처음으로 잘못을 시인하는 듯한 발언을 했다. 정작 '잘못'의 주체에서 본인은 빼고 김용현 전 국방장관과 여인형 전 방첩사령관의 미숙함으로 책임을 떠넘겼지만, 스스로 주요인사 위치추적에 대한 문제를 시인한 꼴이 됐다.
尹 "김·여 수사 개념 없어서"…위치추적 문제 시인
전날(20일) 헌법재판소에서 진행된 탄핵심판 10차 변론기일에 윤 대통령은 의견진술 기회를 얻어 의외의 고백을 했다. 이번 탄핵심판에서 유일하게 두 번째 증언대에 선 홍장원 전 국정원 1차장에 대한 증인신문이 끝나가는 시점이었다.
윤 대통령은 "12월 4일로 기억되는데 여인형 사령관이 조지호 경찰청장에게 위치확인, 체포 이런 것을 부탁했다는 기사를 보고 저도 김용현 국방장관에게 '어떻게 된거냐' 물어본 적이 있다"고 말했다.
이어 "그랬더니 두 사람 다 수사나 이런 것에 대해, 특히 여인형 사령관은 순 작전통이어서 수사 개념 체계가 없다보니
동향파악을 위해 위치확인을 했는데, 경찰에서 그것은 현재 사용하는 휴대폰을 알지 않는 한 어렵다고 딱 잘랐다고 이야기를 했다"며 "
저도 그런 부분에 대해서는 정말 불필요한 일이고 잘못됐다고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12·3 비상계엄 과정에서 벌어진 일련의 일들에 대해 윤 대통령 입에서 "불필요했다", "잘못했다"는 발언이 나온 건 10차 변론 중 이번이 처음이다. 이날 홍 전 차장의 증인신문을 비롯해 현재까지 탄핵심판 과정에서 이른바 '체포명단'의 존재가 한 두 사람이 아닌 여러 명의 직접 발언과 수사기관 진술을 통해 나오면서 미묘하게 입장을 바꾼 것으로 보인다.
이날도 국회 측은 김대우 방첩사 수사단장이 '(여인형) 사령관님이 저에게 구금시설이 어디 있냐면서 물어보았다'고 한 수사기관 진술 내용을 제시했다. 특히 윤 대통령이 발언하던 시점은 두 차례 증인신문에 불출석했던 조지호 전 경찰청장이 홍 전 차장에 이어 증언대에 설 준비를 하고 있던 때였다. 조 전 청장은 여 전 사령관으로부터 한동훈 전 국민의힘 대표를 포함한 정치인 등 16명의 체포를 위한 위치추적 요청을 받았다고 수사기관에서 진술한 바 있다.
윤석열 대통령이 20일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에서 열린 탄핵심판 10차 변론에 출석해 윤갑근 변호사와 대화하고 있다. 사진공동취재단'잘못'을 가리키는 손가락은 자신이 아닌 아랫선을 향했지만, 결과적으로 윤 대통령 스스로 주요인사에 대한 영장 없는 위치확인은 문제라는 점을 시인한 것이다. 윤 대통령이 꼬리 자르기를 시도하다 자기 꼬리를 밟은 상황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지난 13일 8차 변론기일에도 윤 대통령은 계엄 당일 저녁 7시20분 김 전 장관과 조지호·김봉식 전 청장이 함께한 '삼청동 안가 회동'에 대해 항변하다 당시 구체적 상황을 당사자 중 처음으로 밝혔다.
윤 대통령은 "(회동 당시) 제 기억에는 종이를 놓고 국방장관이 두 분 경찰청장하고 서울청장한테 '국회 외곽 어느 쪽에 경찰 병력을 배치 하는게 좋겠다'라고 그림을 그리는 걸 봤다"고 말했다. 경찰 배치는 단순 '질서유지' 차원이었으며 이마저도 자신이 아닌 '김용현 장관'이 했다고 주장하려던 것이지만, 계엄 선포를 앞두고 경찰 수뇌부를 불러 구체적인 배치를 논의했음을 고백한 꼴이 됐다.
尹, 한덕수 피하고 홍장원·조지호엔 신빙성 공격
윤 대통령은 탄핵심판 시작 전 심판정에 들어왔다가 첫 순서인 한덕수 국무총리에 대한 증언이 시작되기 전 자리를 피했다. 윤 대통령 측 윤갑근 변호사가 추후 밝힌 사유는 "일국의 대통령과 총리가 같은 심판정에 앉아 있는 것이 국가 위상에 좋지 않다고 판단했다"는 것이다.
한 총리는 비상계엄 선포를 앞두고 용산 대통령실 대접견실에 모였던 다른 국무위원들과 마찬가지로
당시 국무회의가 통상적이지 않았고 형식적·실체적 흠결이 있었다는 입장을 재차 밝혔다.
윤 대통령 측은 "대통령이 (계엄 선포를 위해) 나가기 전까지 한 총리를 비롯한 국무위원들이 계엄에 대해 논의를 지속적으로 하고 있었던 것은 맞지 않냐"며 결과적으로 계엄에 대해 논의되는 등 국무회의가 실질적으로 이뤄졌다는 답변을 한 총리에게 끌어내려 했지만 실패했다.
한 총리는 "(국무위원들이) 걱정하고 우려한 것"이라며 "(논의를 위해 호출을 했다는 해석은) 판단을 개인이 하는 것은 맞지 않고 수사와 사법절차를 통해 판단해야 한다"고 말을 아꼈다. '국무회의라 볼 수 없다' '회의 자체가 없었다' 등 발언 수위는 조금씩 다르지만, 김 전 장관과 이상민 전 행안부 장관을 제외한 국무위원들이 공통되게 증언하는 내용이다.
윤 대통령은 홍 전 차장 증인신문부터는 다시 심판정에 착석했다. 홍 전 차장 증언의 핵심인 '체포명단'은 국무회의와는 달리 여러 사람이 목격하지 않은 증거다. 윤 대통령 측은 홍 전 차장의 체포명단 작성 시간, 장소, 재작성된 경위 등을 집요하게 따져 물으며 증거의 신빙성을 떨어뜨리려 했고, 윤 대통령은 변호인단에 직접 질문을 코치하며 적극적으로 개입했다.
국회 측 증인신문 과정에서 홍 전 차장은 "보좌관한테 정서 시킨 것이 천만다행이라고 생각한다"며 "만약 제가 혼자만 가지고 있었고, 혼자 썼다면 누가 제 말을 믿어줬겠느냐"고 말하기도 했다.
윤 대통령 측은 조 전 청장에 대해선 "검찰과 경찰에서 조사 받을 당시 (혈액암) 치료로 인해 섬망 증세가 있진 않았냐"며 진술 신빙성을 흔들었다. 조 전 청장은 "구속영장이 발부되고 갑자기 폐렴증상이 와서 그때부터 급속도로 (건강이) 나빠졌다"며 "그런데 섬망 증상이 있다든지 그 정도는 아니었다"고 선을 그었다.
조 전 청장은 대부분의 질문에 형사재판을 이유로 답변을 거부했다. 재판부는 조 전 청장 증인신문 말미에도 윤 대통령에게 의견진술 기회를 줬지만 윤 대통령은 "건강 빨리 회복하시기 바랍니다. (발언할 것) 없습니다"라고 말을 마쳤다.
재판부는 12·3 당일 밤 10시30분부터 12시까지 홍 전 차장의 국정원 입출입 기록과 1차장실 등 폐쇄회로(CC)TV 영상을 제출해달라는 윤 대통령 측 문서송부 촉탁 신청을 받아 국정원에 21일까지 회신을 요청했다.
또 오는 25일 양측 대리인들의 종합 변론과 당사자 최종진술을 듣기로 했다. 이날 변론을 종결하면 헌재는 3월 중순쯤 윤 대통령의 파면 여부를 결정할 선고를 할 것으로 전망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