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동작구 한국금거래소 동작점에 골드바와 실버바가 진열되어 있다. 류영주 기자금 한 돈(3.75g)짜리 돌반지가 60만원이 넘는 시대입니다. 골드바를 사고 싶어도 없어서 못 사는 상황까지 한때 벌어졌습니다.
국제 금 가격은 지난해 초 트로이온스당 2천달러선에서 1년 만에 2600달러대까지 30%나 올랐고, 올해 들어선 2900달러대로 11.5%나 더 상승했습니다. 최근에는 연인 신고가 랠리를 펼치며 어느덧 3천달러 돌파가 임박했죠.
같은 기간 한국거래소(KRX) 금 현물 가격은 국제 가격보다 20% 더 올라 '김치 프리미엄'이라는 말까지 붙었습니다. 국내 가상자산 거래소의 비트코인 가격이 국제 가격보다 더 비싼 현상에서 나온 용어인데요. '디지털 금'을 표방하는 비트코인으로 생긴 용어가 '진짜 금' 시장으로 넘어온 셈입니다.
NH투자증권 황병진 연구원은 김치 프리미엄이 발생한 이유에 대해 "단기적으로 KRX 금 현물 가격에 누적된 프리미엄은 국내 조폐공사의 골드바 생산 중단, 영국 금 차임 금리 급등세 등과 맞물린 '금 실물 품귀 현상'에 기인한다"고 설명했습니다.
서울 종로구 한국금거래소 건물에 골드바 사진이 걸려 있다. 류영주 기자절대적인 가격도 올랐지만, '체감' 가격도 사상 최고치입니다.
미국 소비자물가지수로 조정된 금 가격이 지난 19일 기준 924달러를 기록하면서 1980년 1월 기록을 경신했습니다. 당시 금 가격은 리처드 닉슨 전 미국 대통령이 1971년 달러를 금과 바꿔주는 '금태환제'를 폐지하면서 35달러에서 600달러로 치솟았습니다.
이처럼 전 세계적으로 금값이 오르는 원인은 금 ETF(상장지수펀드) 인기 상승과 함께 각국 중앙은행의 보유량 확대에 있습니다.
iM증권에 따르면, 최근 중앙은행의 연간 금 수요량은 1천톤으로 2010년부터 2023년까지 평균인 550톤의 2배에 육박합니다. 지난해 4분기에는 수요 증가율이 전년 동기보다 54%나 늘었고요. 2008년 이후 과도하게 풀린 달러 유동성에 대한 우려와 미중 갈등 확산 등이 달러 대신 금에 대한 수요를 자극한 것으로 추정됩니다.
특히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취임 이후 관세 정책 등에 따른 불확실성이 커지면서 안전자산인 금에 대한 수요를 더 자극한 것으로 분석됩니다. 관세 정책이 미국뿐만 아니라 전 세계 경제에 악영향을 미칠 수 있기 때문이죠.
트럼프 대통령이 관세 정책을 펼치는 여러 이유 중 하나로 미국 재정적자 축소가 있습니다.
미국의 재정적자는 지난해 10월부터 올해 1월까지 4분기 동안 8400억달러(약 1220조원)이 늘었습니다. 이자 비용만 3920억달러(약 563조원)에 달합니다. 우리나라 2025년 예산이 677조원이니 얼마나 큰 규모인지 짐작할 수 있습니다.
즉 트럼프 대통령은 재정적자를 줄이기 위해 관세 카드를 꺼냈지만, 오히려 물가 상승과 경기 둔화를 유발하며 불확실성이 커졌고 '안전자산'인 금에 대한 수요가 점점 커지는 셈입니다.
iM증권 박상현 연구원은 "미국 재정수지 적자 및 부채 확대로 대변되는 재정리스크가 금 가격에 큰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판단된다"면서 "2000년 이후 미국 재정수지 적자가 금융위기, 코로나19 등으로 급격히 확대했고 금 가격도 재정수지 적자 추이에 따라 등락 중"이라고 설명했다.
박 연구원은 이어 "관세 정책이 미국 경제는 물론 글로벌 경제에 큰 악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점에서 안전자산으로써 금 수요를 자극하고 있다"고 덧붙였습니다.
여기에 더해 금값 상승의 이유가 하나 더 있습니다. 이번에도 미국인데요.
스콧 베센트 미국 재무부 장관이 최근 국부펀드 조성과 관련해 "연방 정부가 보유한 자산으로 '재원을 마련하겠다(monetize)'"고 말했습니다. 시장은 연방 정부가 보유한 금의 가치를 재평가하겠다는 의미로 해석했습니다.
미국 정부는 트로이온스당 42.22달러로 평가한 금 110억달러 규모를 보유하고 있습니다. 이를 현재 시세인 2900달러로 계산하면 8천억달러로 자산이 70배나 불어납니다.
이 아이디어가 현실화하려면 넘어야 할 산이 많지만, 트럼프 대통령이기 때문에 어떤 예상도 쉽게 할 수 없습니다. 다만 현실이 된다면 자산시장의 지각변동이 불가피할 전망입니다.
DB금융투자 문홍철 연구원은 "금 재평가와 국부펀드 활용은 대규모 양적완화이자 미국의 이익을 지킬 수 있다"면서 "특히 관세 부과로 가해질 강달러를 상쇄시킬 카드로 쓰기에 안성맞춤"이라고 강조했습니다.
문 연구원은 "이 자금으로 단순히 국채를 바이백(buyback‧조기상환)해 부채 우려를 불식시킬 수도 있다"며 "금 재평가는 채권, 달러, 비트코인, 금 가격에 지대한 영향을 미칠 것이며 부드럽게 추진되지 않을 경우 자산 시장은 상당한 변동성을 겪을 것"이라고 내다봤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