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때 사회적 편견 속에서 '천덕꾸러기' 취급을 받았던 만화방이 이제는 전국 곳곳에서 '만화도서관'으로 변신하고 있다. 과거에는 만화가 단순한 오락거리로 인식되었지만, 현재는 웹툰과 애니메이션 산업이 글로벌 시장에서 주목받으며 중요한 문화 콘텐츠로 자리 잡으면서다.
이에 발맞춰 전국 지자체와 공공도서관에서도 만화·웹툰을 특화한 도서관을 개관하고 있으며, 단순한 열람 공간을 넘어 창작과 체험이 가능한 문화 허브로 진화하고 있다.
최근 전국적으로 만화·웹툰 특화 도서관이 속속 개관하면서 문화 향유의 장이 확대되고 있다.
만화특화도서관인 경북 '상주시립도서관'은 개관 7개월 만에 이용객 10만 명을 돌파하며 지역 내 대표적인 문화공간으로 자리 잡았다. 이곳은 다양한 만화책을 제공하는 것을 넘어 창작 교육과 애니메이션 감상, 독서 프로그램 등을 운영하고 있다.
부산 '연제만화도서관'은 부산 최초의 공공 만화특화도서관으로 오는 5월 개관을 앞두고 있다. 여제구와 부산경남만화가연대는 이를 위해 만화 자료 수집 공모전을 비롯해 지역 내 만화 문화 보존과 연구 기반을 마련하고 있다.
상주시립도서관의 만화·웹툰 '정년이' 서이레 작가와의 만남 행사. 상주시 제공경기도 연천군 '청산작은도서관'은 이색특화(만화) 도서관으로 약 5000여 권의 만화책과 웹툰 단행본을 보유하고 청소년과 성인 모두가 즐길 수 있도록 다양한 콘텐츠를 마련하고 있다.
김해시 만화특화 도서관인 '안동문화의집 작은도서관'은 171㎡ 규모의 공간에 4000권 이상의 만화·일반 도서를 보유해 디지털 자료실과 함께 창작 활동을 지원하는 프로그램도 운영하고 있다.
공주시는 오는 6월 충남지역 최초 만화 특화 도서관인 '공주 만화 작은도서관'을 개관한다. 분야, 장르, 이용 계층 등을 고려해 전 연령대의 선호도가 높은 만화·웹툰 도서 3천여권이 비치될 예정이다.
서울에서도 만화·웹툰 특화 도서관이 점차 증가하는 추세다.
성북구립도서관은 청소년 특화 도서관을 통해 1만 여 권의 만화·웹툰과 애니메이션 및 문학 관련 서적을 중심으로 청소년들에게 큰 호응을 얻고 있다. 은평구 녹번만화도서관은 만화·웹툰의 이해를 돕는 다양한 창작 프로그램이 인기다.
서울시와 지자체, 서울시교육청 산하 공공도서관들도 일반 도서관 내 '만화책 코너'를 점진적으로 확대하며 이용자들의 접근성을 높이고 있다.
네이버웹툰과거의 만화방이 단순히 만화책을 빌려보는 공간이었다면, 현대의 만화도서관은 창작과 체험이 가능한 복합 문화공간으로 자리 잡고 있다.
일부 도서관에서는 웹툰 창작을 위한 태블릿과 전자펜 대여, 3D 애니메이션 제작 체험, 캐릭터 디자인 워크숍 등을 제공하며 이용자들의 창작 활동을 적극 지원하고 있다. 또한, 웹툰 작가 초청 강연, 만화책 원화 전시, 애니메이션 상영회 등의 프로그램도 운영되어 지역 주민들에게 다양한 문화 체험의 기회를 제공하고 있다.
국립중앙도서관은 웹툰을 중요한 문화 자원으로 인식하고 이를 보존하기 위한 체계를 구축 중이다.
2022년 6월 '수집대상 온라인 자료의 종류, 형태에 관한 고시'를 개정해 웹툰을 주요 수집 대상으로 명시했으며, 이를 통해 국내 웹툰이 역사적 기록으로 남을 수 있도록 관리하고 있다.
이 같은 만화도서관은 세대 간 문화 격차를 줄이는 역할도 하고 있다. 과거에는 만화를 '어린이들이나 보는 콘텐츠'로 여기는 경향이 강했지만, 최근에는 30~50대 중장년층도 향수를 느끼며 만화책을 찾는 경우가 많아졌다. '드래곤볼', '슬램덩크', '북두의 권' 등의 과거 명작부터 최근 인기 웹툰까지 다양한 작품이 비치되면서 가족 단위 방문객도 증가하고 있다.
만화도서관의 활성화에는 학습만화의 인기도 중요한 요인으로 작용했다. 최근 학습만화들은 단순한 교육 도서를 넘어 스토리텔링을 강화하고 흥미를 유도하는 방식으로 발전하고 있다.
대표적으로 '그리스 로마 신화' 시리즈, '살아남기' 시리즈, 'WHY? 과학만화' 등은 어린이와 청소년들에게 큰 인기를 끌며 학습 효과와 흥미를 동시에 충족하고 있다. 이는 만화가 단순한 오락물이 아니라, 학습 도구로서도 충분한 가치가 있음을 증명하고 있다.
김해 '만화·애니메이션 축제'에서 만화책을 보고 있는 관람객들. 연합뉴스한편, 웹툰의 글로벌 성공도 만화도서관의 확산에 영향을 미쳤다. 네이버웹툰과 카카오엔터테인먼트는 미국, 일본, 유럽 시장에서 주목을 받으며 K-웹툰이 세계적인 문화 콘텐츠로 자리 잡는데 적지 않은 역할을 했다. 이에 따라 공공기관에서도 만화를 단순한 서브컬처가 아닌, 중요한 문화산업의 한 축으로 바라보며 적극적으로 지원하는 분위기가 형성되고 있다.
한 만화·웹툰 업계 관계자는 "과거에는 만화방이 사회적으로 부정적인 시선을 받았지만, 이제는 만화가 주요 문화 콘텐츠로 인정받고 있다"며 "공공기관이 만화도서관을 운영하면서 한국 만화·웹툰 산업이 더욱 성장할 수 있는 발판이 마련되고 있다"고 평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