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세훈 서울시장이 19일 정부서울청사에서 주택시장 안정화 방안을 발표하고 있다. 박종민 기자'과감한 규제 완화'로 시민 재산권을 보호하겠다며 '잠삼대청'(잠실·삼성·대치·청담동) 아파트를 대거 토지거래허가구역(토허제)에서 해제했던 오세훈 서울시장이 '대대적 규제 강화'로 표변했다. 지난달 12일 잠삼대청 아파트 305곳 중 291곳에 대한 토허제 지정을 즉시 해제한다고 발표한 지 불과 한 달여 만인 19일 강남·서초·송파·용산구 아파트 전체를 토허제에 묶은 것이다.
잠삼대청 토허제 해제 이후 해당 지역이 속한 강남·송파뿐 아니라 서초구까지 아파트값이 치솟고 마용성(마포·용산·성동구) 등지로도 가격 상승세 확산 조짐이 나타난 데 따른 조치다. 이날 오세훈 시장은 토허제를 '시장 기능을 왜곡할 수 있는 극약 처방'으로 표현했는데 이전보다 오히려 훨씬 강화된 극약 처방이 '강남 3구'를 중심으로 한 최근의 집값 상승세를 잡을 수는 있을까?
부동산R114 윤지해 리서치팀장은 "이번 충격 요법이 가수요를 차단해 거래량을 다소 줄이고 추가 가격 상승을 어느 정도 제어하겠지만, 상승 흐름을 근본적으로 바꾸지는 못할 것"이라고 말했다. 특히 윤지해 팀장은 강남 등 선호 지역 집값 상승을 억제하는 데 있어 토허제 효용성 자체에 의문을 제기했다.
토허제 지역에서도 신고가 속출…집값 억제 효용성 의문
서울 송파구의 한 부동산중개업소에 잠실 아파트단지 매물이 걸려있다. 류영주 기자윤지해 팀장은 "잠삼대청과 달리 토허제에 계속 묶여 있는 압구정동과 여의도동 등에서도 아파트값이 천장을 뚫고 있다"고 지적했다. 윤 팀장은 "토허제 해제가 잠삼대청 아파트값 상승 폭을 키운 건 사실이지만, 최근 강남 등 급등세는 금리 인하와 대출 규제 완화, 계절적 성수기 등과 맞물린 결과"라고 강조했다. 지난달 서울 아파트 매매 거래량(19일 기준 5506건)이 지난해 8월(6537건) 이후 6개월 만에 5천 건을 넘었는데, 이는 강남 토허제 해제 효과로만 볼 수 있는 수준이 아니라는 설명이다.
김인만 부동산경제연구소 김인만 소장도 "강남 등 선호 지역 집값이 크게 오른 까닭은 다주택자 규제로 인한 '똘똘한 한 채' 선호 심화와 지방 소멸 우려에 따른 지방 자금 유입, 서울 부동산 불패 인식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했기 때문인데 다른 주요 원인을 놔둔 채 토허제를 다시 강화한다고 가격이 떨어지지는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불붙은 라이터를 떨어뜨렸더니 바닥에 낙엽이 쌓여 있고 건조한 데다가 바람도 강해 산불이 크게 번졌는데 라이터만 끈다고 산불이 잡히겠느냐는 것이다. 김인만 소장은 "토허제 해제 이후 강남 집값이 단기간에 급등한 만큼 조정 국면이 예상되는 마당이었는데 당국이 그새를 못 참고 효과가 불분명한 토허제를 다시 강화하면서 정책 신뢰성만 훼손하는 최악의 수를 뒀다"고 비판했다.
인접 비규제 지역으로 투자 수요 이동 '풍선효과' 가능성
19일 서울 송파구 한 부동산에 주택시장 안정화 방안 발표 관련 내용이 붙어 있다. 연합뉴스이번 토허제 강화 조치가 실수요자들의 서울 내 집 마련을 더욱 어렵게 만드는 부작용을 초래할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됐다. 신한투자증권 자산관리컨설팅부 양지영 수석은 "강남 3구와 용산구에서 토허제 탓에 거래가 어려워지면 투자 수요가 인접 비규제 지역인 강동구와 마포구, 성동구 등으로 이동하는 '풍선효과'가 나타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양지영 수석은 "지금까지는 서울 핵심 지역만 가격 상승이 일어나는 양극화 현상이 나타났다면 토허제 범위 대폭 확대는 토허제 바깥 인근 지역으로 투자 수요를 분산시키며 인근 지역 집값 상승까지 부추길 수 있다"고 전망했다. 양 수석은 또 "토허제 지정 지역은 2년 실거주 의무 조건이 따르는 만큼 해당 지역 전세 매물 품귀 현상으로 전셋값 폭등도 유발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