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방부 장관 후보자로 지명된 더불어민주당 안규백 의원이 23일 서울 여의도 국회 의원회관 의원실을 나서고 있다. 윤창원 기자이재명 대통령이 단행한 첫 장관급 인사에서 가장 눈에 띄는 부분은 대한민국 관례 상 드물게 문민 국방부장관 후보자를 내세운 일이다. 과거 정권에서도 문민 국방장관에 대한 논의가 없었던 건 아니지만 군장성 출신 일변도의 장관 인선 관행은 지금껏 바뀌지 않았다.
그렇다 보니 국방장관 자리는 군 장성 출신이 아니고서는 가기 힘든 자리로 인식됐고 역대 대통령들도 군내부의 오랜 관행에 갑작스러운 변화를 주는 걸 꺼렸는 지도 모른다.
장관후보자를 물색할 때 우선 고려사항도 군이 수용할 수 있을까? 군내 엘리트코스인 사관학교를 졸업했는 지, 군종이 육군인 지 공군인 지 해군인 지에 초점을 맞춰온 것이 사실이다. 상명하복, 다양성보다는 획일성이 요구되는 독특한 병영문화, 남북 대치상황에서 군령권 행사에 최적화된 경험과 판단력의 소유자를 군내부가 아니고서는 찾기 어렵다는 관성이 지속돼 온 것으로 볼 수 있다.
이재명 대통령이 안규백 민주당 의원을 국방장관 후보자로 발탁한 건 이런 점에서 파격이다. 군내부는 물론 국민들에게도 초미의 관심거리가 된 건 분명해 보인다. 장성 출신이 줄곧 장관을 맡아오던 관행 때문인 지 이번 인사를 접한 군 일각에서 반발 기류가 없지는 않았다고 한다.
현역도 아닌 단기사병 출신으로 최종 계급은 일병 제대여서 장성 출신 장관에 익숙한 군조직이 선뜻 받아들이지 못했을 수 있지만, 군은 인사에 나타난 표피적인 내용보다는 인사가 담고 있는 인사권자의 메시지에 관심을 기울일 필요가 있다.
이재명정부는 전임 윤석열정부가 비상계엄을 통해 헌정질서를 중단시키고자 한 시도와 이에대한 국민적 심판의 결과로 탄생한 정부다. 거대 야당의 한계를 계엄으로 돌파하고자 했던 윤 전 대통령은 12.3계엄조치를 통해 병영에 머물러야 할 군대를 국회로 동원, 총부리를 국회와 국민 쪽으로 겨누면서 반란을 꾀한 혐의로 재판을 받고 있다.
특정고교 인맥을 중심으로 군내 요직에 포진하고 있던 지휘관들은 상부의 부당한 지시에 군을 움직이고 국회 침탈의 강제력을 뒷받침해 준 원죄를 가지고 있음을 국민 누구나 안다.
장관후보자에 지명된 안규백 의원은 23일 "지난해 발생한 내란 사태 이후 국민의 군대를 재건하라는 의미가 (이번 인사에)담겨있다"는 장관 발탁에 대한 소회를 조심스럽게 밝혔다. 이 대통령이 별을 단 장군들을 배제하고 극적으로 대비되는 경력을 가진 일병 출신의 안 의원을 장관후보자로 발탁한 건 군에 대한 대대적인 개혁의 신호탄으로 해석된다.
안 후보자는 지난해 12월 내란혐의 진상규명 국조특위 위원장을 맡아 내란사태 수습에서 이재명 당시 대표와 호흡을 맞췄고 국회에서는 국방위원과 국방위원장을 거치면서 군 내부사정에 정통한 전문가로서 경력을 갖추고 있다. 안 의원 발탁 배경에는 전문성 외에도 '군의 조직논리로부터 자유롭다'는 점이 작용한 것으로 알려졌다.
문민장관 발탁을 기점으로 대대적인 군개혁작업이 시작될 것이란 전망이 군 안팎에서 솔솔 나오고 있다.
내란과 탄핵 이후 시작된 군 수뇌부에 대한 조사에 이어 새정부에서는 외환죄를 저지른 의혹과 혐의에 대한 조사가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 '전 정권이 휴전선 부근의 긴장을 고조시켜 내부의 위기를 돌파할 목적으로 북한에 무인기까지 침투시켰다'는 의혹을 포함해 지난 정권 말기 추진된 남북간 긴장 조성 행위 역시 개혁의 칼날을 피해가기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군 내부에서는 내란종식과 명확한 책임소재 규명, 이에 상응한 조치, 그리고 외환죄 의혹에 대한 진상규명과 이를 통한 9.19남북군사합의의 조기 복원 등이 군이 가장 시급히 추진해야할 과제로 분류되고 있다.
역사상 첫 문민장관을 맞이하게 된 군이 군대 재건에 가까운 변화를 앞두고 긴장하는 분위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