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종민 기자이춘석 의원의 주식 차명거래 의혹을 겨냥한 수사가 본격화할 조짐이다. 이 의원은 "차명거래는 결코 없다"고 선을 그었지만, 정치권 안팎의 의심은 사그라들지 않고 있다. 야당에서는 특검 카드를 꺼내들며 연일 압박중이다. 이재명 대통령까지 나서 엄정 조치를 강조한 가운데 수사의 칼끝은 이 의원의 주식 매매 과정 전반으로 확대될 전망이다.
차명거래·미공개 정보 이용 두갈래 수사
9일 CBS노컷뉴스 취재 결과, 경찰은 이르면 내주 이춘석 의원을 상대로 한 강제수사에 착수할 방침이다. 앞서 경찰은 이 의원의 주식 차명거래 의혹이 불거진 지 하루 만에 사건을 서울경찰청 금융범죄수사대에 배당했다.
정치권뿐만 아니라 시민사회단체에서도 고발장을 잇따라 접수한 상태다. 경찰은 법리 검토와 동시에 고발인 조사를 진행하면서 압수수색영장 등 강제수사 준비에 속도를 내고 있다.
이 의원을 상대로 한 수사는 주식 차명거래 의혹과 미공개 정보 이용 여부 등 크게 두 갈래로 전개될 양상이다. 앞서 온라인 매체 '더팩트'는 이 의원이 지난 4일 국회 본회의장에서 휴대전화 증권 거래 애플리케이션(앱)으로 수차례 주식을 매매한 장면을 보도했다.
당시 촬영된 사진을 보면 이 의원이 사용한 증권 거래 앱은 이 의원이 아닌 타인 명의 계좌와 연결돼 있었다. 해당 계좌의 명의는 차모씨로, 이 의원의 보좌관이었다. 주식 차명거래 의혹이 불거진 지점이다.
이같은 차명거래 의혹은 사진으로 확인된 만큼 이 의원도 마냥 부인하기는 어려울 것이란 관측이 많다. 일각에서 나오는 말들처럼 휴대전화가 차씨 소유라 하더라도 마찬가지다. 타인의 휴대전화로, 타인의 주식을 거래한다는 건 일반적으로 쉽게 납득되지 않는 부분이기 때문이다.
그동안 이 의원이 신고한 공직자 재산 현황에서 본인은 물론 배우자 등 가족 보유의 주식이 전무했다는 점도 차명거래 의혹을 짙게 만든다. 금융실명제법에 따라 주식 차명거래는 5년 이하 징역 또는 5천만원 이하 벌금에 처해진다.
미공개 정보 이용 여부도 주요 수사 대상이다. 차씨의 계좌에 찍힌 보유 주식은 △네이버 150주 △LG CNS 420주 △카카오페이 537주 등이다. 그중 네이버와 LG CNS는 모두 인공지능(AI) 관련주로 꼽힌다.
연합뉴스이 의원의 주식 거래 장면이 포착된 당일 과학기술정보통신부는 '국가대표 AI' 기업 5곳을 발표했는데, 공교롭게도 여기에 네이버와 LG CNS가 포함됐다. 당시 네이버 주가는 '국가대표 AI' 선정 호재로 장중 전일 대비 6% 이상 급등했다. 이 의원은 정부 발표 20분쯤 이후 주식 매도에 나섰다.
미공개 정보 이용 의혹은 이 의원이 대통령 직속 국정기획위원회에서 AI 분야를 담당해온 대목과 맞닿아 있다. 국정기획위가 대통령실과 정부 부처 사이 가교 역할을 수행한다는 점에서 이 의원이 '국가대표 AI' 정보를 공식 발표 이전에 미리 알고 있던 게 아니냐는 의심이다. 이 의원은 지난달 25일 국정기획위와 과기정통부 등 부처가 참여하는 'AI 3대 강국 도약 토론회'에도 참석했다.
이춘석-보좌관 대화·자금 흐름에 초점
미공개 정보 이용 혐의를 입증하려면 해당 정보의 생성 시점과 취득 여부부터 이를 실제로 이용했는지 등을 따져봐야 한다. 이 의원이 '국가대표 AI' 선정이라는 정보 생성에 관여했는지, 해당 정보를 언제 취득했고 또 이를 주식 매매에 이용했는지 등 살펴볼 부분이 많다.
한 법조계 관계자는 "통상 미공개 정보는 내부자 간 의사 연락으로 전달된다"며 "이 의원의 휴대전화 통화·문자 내역 등을 들여다봐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그중에서도 이 의원이 거래한 주식 계좌의 명의자인 보좌관 차씨와 어떤 대화가 오갔는지가 중요하다"며 "정부의 발표 내용을 차씨와 사전에 공유했다면 미공개 정보 이용 혐의 단서가 될 수 있다"고 내다봤다.
자금 흐름도 수사로 확인할 부분이다. 차씨 명의 주식 계좌에서 입출금된 자금의 출처 혹은 종착지가 이 의원과 연결된다면 차명거래 혐의에서 자유롭기 어렵다는 게 중론이다. 초반 경찰 수사가 차씨와의 의사 연락·자금 흐름에 집중될 것이라고 분석하는 배경이다.
증권 범죄에서 미공개 정보 이용 행위와 차명거래는 보통 한 세트처럼 붙어 다닌다. 자본시장법상 미공개 정보 이용은 1년 이상 유기징역에 처해진다. 다만 이번 이 의원 의혹에서 거론되는 정부 발표가 특정 기업 내부에서 나온 정보는 아닐 수 있어 자본시장법 위반으로 보기엔 어렵다는 의견도 존재한다.
한 사정당국 관계자는 "자본시장법보다는 공직자 이해충돌 방지법 위반으로 봐야 할 여지도 있다"고 설명했다. 공직자 이해충돌 방지법은 공직자가 직무수행 도중 알게 된 비밀이나 미공개 정보를 이용해 재산상 이익을 취하면 안 된다고 규정하고 있다. 법 위반시 7년 이하 징역 또는 7천만원 이하 벌금에 처한다.
앞서 이 의원은 자신을 둘러싼 주식 차명거래 의혹에 "타인 명의로 주식계좌를 개설해 차명거래한 사실은 결코 없다"고 강하게 부인했다. 해명 이후에도 논란이 계속되자 더불어민주당을 탈당하고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위원장 자리에서도 물러났다.
이재명 대통령은 의혹이 불거지고 이튿날 "신속하게 진상을 파악하고 공평 무사하게 엄정 수사하라"고 지시했다. 국민의힘은 이 의원의 주식 차명거래 의혹을 '이춘석 게이트'로 명명하고, 특검법을 당론으로 발의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