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율의 뉴노멀: "목발 짚는 게 익숙해져 버렸다"
오건영 단장은 지난 3일 '경제적본능'에서 지금의 고환율을 '목발'에 비유했다. 그는 "과거 10년(2010~2020년) 동안 평균 환율은 1,170원이었다. 그때는 1,200원만 넘어도 나라가 망할 것처럼 난리가 났지만, 지금은 1,300원대도 '정상'처럼 느껴진다"고 말했다.
마치 다리를 다쳐 목발을 오래 짚다 보면, 나중엔 목발 없이 걷는 게 더 어색해지는 것처럼 우리 경제가 고환율이라는 환경에 적응해 버렸다는 것이다. 오 단장은 "우리가 생각하는 '정상 환율'의 기준이 높아진 것, 이것이 바로 환율의 '뉴노멀(새로운 표준)'"이라고 진단했다.
달러가 없는 이유 : "중국한테 돈 못 벌고, 미국에 돈 쓰기 바쁘다"
환율이 오른다는 건 한국 돈(원화)의 인기는 떨어지고 미국 돈(달러)의 인기가 높아졌다는 뜻이다. 왜 달러가 귀해졌을까?
첫째,
달러를 벌어오던 '파이프'가 막혔다. 과거 우리나라는 중국에 물건을 팔아 달러를 엄청나게 벌어왔다. 하지만 오 단장은 "이제 중국이 기술력과 가격 경쟁력을 모두 갖추면서 우리가 중국 상대로 돈을 벌기가 힘들어졌다"며 "들어오는 달러가 줄어드니 환율이 오를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둘째,
돈 쓸 곳(해외 투자)은 너무 많아졌다.- 개인(서학개미): 국내 주식보다 수익률 좋고 환율 차익까지 얻을 수 있는 미국 주식(달러 자산)을 산다.
- 기업: 관세 폭탄을 피하기 위해 미국 땅에 공장을 짓는다. (달러가 필요함)
- 정부: 미국 정부와의 협력 프로젝트에 돈을 투자한다.
오 단장은 "가계, 기업, 정부라는 경제 3주체가 모두 달러를 들고 밖으로 나가고 있다"며 "버는 달러는 없는데 쓰는 달러만 많으니 환율이 뛸 수밖에 없는 구조"라고 분석했다.
위기설 팩트체크: "환율 1,500원 = 국가 부도? 옛날얘기다"

그렇다면 환율이 1,500원을 넘으면 과거 IMF 때처럼 나라가 망할까? 오 단장은 "그때와 지금은 체질이 완전히 다르다"고 선을 그었다.
과거 우리나라는 달러 빚이 많은 '채무국'이었다. 환율이 오르면 갚아야 할 빚이 눈덩이처럼 불어나 망할 위기에 처했다. 하지만 지금은 외국에서 받을 돈이 더 많은 '순채권국(순자산국)'이다.
오 단장은 "지금 국민연금이나 서학개미들이 가진 해외 자산(미국 주식, 채권 등)이 어마어마하다"며 "환율이 오르면 내가 가진 미국 주식의 가치도 같이 오르기 때문에, 오히려 미소 짓는 사람들도 많다. 단순히 환율 숫자만 보고 '국가 위기'라고 공포를 가질 필요는 없다"고 했다.
다만, "환율이 너무 급격하게 오르면 수입 물가가 폭등하고 기업들이 대비할 시간이 없어지기 때문에, 속도 조절은 반드시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정부의 방어: "한 번에 갚지 않고 '할부'로 낸다"

최근 정부가 미국에 대규모 투자를 약속하면서 "달러가 몽땅 빠져나가는 것 아니냐"는 우려도 있었다. 이에 대해 오 단장은 "정부가 협상을 잘했다"고 평가했다.
3,500억 달러를 한 번에 보내는 대신, 2,000억 달러로 줄이고 그마저도 10년에 걸쳐 나눠서 투자하기로 했다는 것이다. 오 단장은 "마치 월급 통장에 돈이 들어오자마자 카드값으로 빠져나가는 것처럼 아쉽긴 하지만, 한 번에 큰돈이 나가 환율이 요동치는 최악의 상황은 막았다"고 설명했다.
오 단장은 끝으로 "지금 중요한 건 환율 숫자 그 자체가 아니라, 우리 경제가 달러를 잘 벌어들이는 '기초 체력'을 회복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 오건영 단장의 환율 전망과 자세한 분석은 유튜브 CBS 경제연구실 <경제적본능>에서 확인하실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