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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

    102년 전 그날의 계엄령[기자수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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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간토대학살 102년 만에 '진상규명 특별법' 국회 통과

    "일본 심판이 아니라 국가폭력 차원에서 접근해야"

    1923년 9월 1일 간토 대지진 당시 일본 도쿄에서 화재가 발생해 연기가 피어오르고 있다. 연합뉴스1923년 9월 1일 간토 대지진 당시 일본 도쿄에서 화재가 발생해 연기가 피어오르고 있다. 연합뉴스
    1923년 9월 1일 오전 11시 58분 일본 간토 지역에 발생한 규모 7.8의 대지진. 지진에 화마가 겹치며 사상자가 걷잡을 수 없이 늘었다. 마침 점심시간 대부분 가구가 불을 피웠던 탓이다. 사망자만 10만여명으로 추산되는 간토대지진은 일본 역사상 최악의 지진 참사로 남았다.
     
    불황의 늪에서 덮친 지진에 민심은 동요했고 군부에 대한 불만은 하늘을 찔렀다. 지진 다음날인 2일에는 일본 새 총리의 취임이 예정돼 있었다. 혼란스러운 정국을 통제할 수 없던 일본 내각이 계엄령을 선포했다.
     
    계엄엔 명분이 필요했다. "조선인이 방화를 하고 폭동을 일으킨다", "우물에 독약을 넣었다"는 가짜뉴스가 조직적으로 유포됐다. 조선인들이 '내란을 획책'했다는 결론은 제노사이드를 정당화했다. 칼과 죽창, 엽총을 든 자경단이 닥치는 대로 조선인을 학살했다. 희생된 조선인 규모에 대한 공식 통계는 없지만 문헌에 따라 6천명을 넘어선다.
     
    간토대학살로 희생된 조선인의 시신. 연합뉴스 간토대학살로 희생된 조선인의 시신. 연합뉴스 
    무참한 희생이 100여년간 외면당했다. 일본뿐 아니라 한국에서도 제대로 된 실태조사가 이뤄지지 않았다. 국내서조차 무관심이 이어지는 동안 일본 극우세력은 급기야 학살의 실체를 부정하고 나섰다. 현지 조선인 추도식에서는 일본 극우단체가 맞불 집회를 열고 헤이트스피치를 서슴지 않았다.
     
    진상규명을 위한 노력도 번번이 좌절됐다. 19대, 21대 국회에서 발의된 특별법이 국회 문턱을 넘지 못했다. 외교관계에 대한 부담, 사회적 관심 부족 등으로 정치권 우선순위에서 밀린 탓이다.
     
    "'일본에 민족적 감정으로 떼를 쓰는 것 아닌가', '100년이 지난 일인데 조사한다고 뭐가 나오나' 이런 생각으로 국가폭력을 현대적 의미로 해석하지 못했기 때문이죠."
    '기억과 평화를 위한 1923역사관' 김종수 관장이 본 간토대학살에 대한 정치권과 언론의 무관심 이유다.
     
    간토대지진 당시 조선인 학살. 연합뉴스간토대지진 당시 조선인 학살. 연합뉴스
    하지만 간토대학살은 102년 전 일에 머무르지 않는다. 정권 유지를 위해 계엄령을 선포하고 그 명분으로 조선인의 내란을 '기획'한 일본 내각은 지난해 한국의 모습을 떠올리게 한다. 전 세계적으로 자국 우선주의가 팽배하면서 이주민들이 설 자리가 줄어드는 현실과도 맞닿아 있다.
     
    지난 12월 2일 '간토대학살 진상규명 및 피해자 명예회복에 관한 특별법'이 국회를 통과했다. 정부는 국무총리 소속의 위원회를 신설해 진상조사와 책임규명, 피해자 및 유족의 심사 등을 전면 조사한다. 이재명 대통령이 지난 8월 재일동포 간담회에서 "100년 전 아라카와 강변에서 벌어진 끔찍한 역사, 그리고 여전히 고향 땅에 돌아가지 못한 채 일본 각지에 흩어져 있는 유골들의 넋을 결코 잊지 않겠다"는 의지를 보인 뒤다.
     
    시민사회의 역할이 컸다. 한일 시민단체는 꾸준히 상설전시를 운영하고 학살증언을 수집하고 진상규명을 촉구해왔다. 충남 천안에 있는 기억과 평화를 위한 1923역사관은 간토대지진이 자행된 1923년의 역사를 잊지 않기 위한 연구·전시공간이다. 김 관장이 강조하는 앞으로의 과제가 우리에게 시사점을 준다.
     
    "이 사건은 일본에게 심판을 가한다는 시각으로 접근하면 안 돼요. 제노사이드가 왜 일어나는가, 혐오가 왜 일어나는가, 정치인들은 혐오를 어떻게 이용하는가를 분명하게 드러내야 하고 그것으로서 국가폭력이 재현되지 않아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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