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의힘 한동훈 전 대표(왼쪽), 장동혁 대표. 윤창원 기자국민의힘 한동훈 전 대표가 원외당협위원장 모임인 '이오회'에 참석해 김문수 전 고용노동부 장관을 만난 것을 두고, 당 일각에서는 "징계 국면에서 스스로 조급함을 드러낸 행보"라는 평가가 나온다. 이오회는 보수 성향이 강한 모임으로 친한계가 거의 발길을 주지 않던 곳이다.
장동혁 지도부가 한 전 대표는 물론 친한계를 겨냥한 당무감사·징계 절차에 속도를 내면서 한 전 대표가 불리한 당내 지형을 돌파하기 위해 '강경 보수 지대'로까지 발을 넓히고 있다는 해석이다.
여기에다 장동혁 대표가 "계엄의 결과에 책임지겠다. 이제는 변화할 시점"이라며 노선 변경까지 예고하면서 친한계의 셈법이 복잡해질 것으로 보인다.
"친한은 원래 안 오던 모임"…이오회까지 간 한동훈
21일 CBS노컷뉴스 취재를 종합하면, 이오회는 국민의힘 수도권 전·현직 당협위원장들의 친목 모임이지만, 당내에서는 강성 보수 인사들이 다수 참여하는 곳으로 인식돼 왔다. 소위 '태극기 성향' 모임에 가깝다고 한다.
이오회에 참여하고 있는 한 당 관계자는 CBS노컷뉴스와의 통화에서 "이오회에는 한동훈 전 대표에게 (공천 과정에서) 잘린 사람들이 많다"며 "원래 친한계가 오거나 하는 모임은 아니고, '태극기 성향'에 더 가깝다"고 설명했다. 그는 "행사 자리에 김문수 전 장관은 가끔 왔었다"며 "한 전 대표가 온다고 하니 오지 말라고 하기가 좀 그랬다"고 덧붙였다.
이오회 모임을 이끄는 한 국민의힘 인사는 CBS노컷뉴스와의 통화에서 "이오회가 한 전 대표를 초대한 건 아니다. 소위 친한계로 불리는 회원분이 한번 모시고 오고 싶다고 한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김문수 전 장관은 평소에도 이오회에 가끔 나오던 분"이라며 "두 사람이 사전에 약속하고 온 자리는 아니었고, 현장에서 우연히 만난 것으로 느꼈다"고 당시 상황을 설명했다. 다만 "한 전 대표가 마음 먹고 온 느낌은 있었다"며 "평소 잘 나오지 않던 한동훈계로 분류되는 위원장 몇 명도 왔다"고 덧붙였다.
유튜브 캡처김 전 장관과 '러브샷'을 한 한 전 대표를 두고서 당내에선 지난 전당대회 때를 떠올리는 이들이 많다. 당시엔 장동혁 대표와 양자 대결을 벌이던 김 전 장관이 한 전 대표의 지지를 구하는 모양새였다면, 이번에는 한 전 대표가 도움을 구하는 듯한 인상을 남겼다는 것이다.
이러한 한 전 대표의 행보를 당무감사 국면과 분리해 보기 어렵다는 시각이 적지 않다. 한 전 대표 입장에선 자신이 연루된 의혹을 받는 '당원게시판 의혹'에 대한 당무감사 속도가 빨라질수록 당내 입지가 좁아질 수밖에 없다. 결국 김 전 장관과의 접촉을 통해 정치적 존재감을 키우려는 것 아니냐는 해석이다.
사정을 잘 아는 당 관계자는 CBS노컷뉴스에 "한 전 대표가 (공개 행보를 통해) 자기 세를 보여주고 싶은 것 같다"며 "한 전 대표 혼자는 당을 접수할 수 없다는 한계도 분명히 알고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그런 자신의 약점을 만회하기 위해 김 전 장관 쪽과 접촉한 게 아닌가 싶다"고 덧붙였다.
다른 국민의힘 관계자도 "당원 게시판 문제가 최종 발표되고 '(한 전 대표) 가족들이 했구나'라고 인식이 굳어지면, 당원 신뢰가 깨질 수 있다"며 "본인 입장에서는 아킬레스건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김 전 장관이 한 전 대표를 향해 '우리 당의 보배'라고 칭찬했다고 해서 이를 둘의 정치적 연대로 해석하는 것도 무리라는 입장이다. "김문수 전 장관은 이제 은퇴한 우리 당의 고문이다. 빅텐트는 너무 과한 해석"이라는 이유에서다.
"한동훈 영향력 제한적"…'변화 예고까지' 장동혁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 황진환 기자실제로 당내에서도 한동훈·김문수 회동이 이목은 끌었지만, 구조적으로 '판을 바꿀 카드'는 아니라는 평가가 우세하다.
여기에다 장 대표가 국민의힘의 변화, 자신의 노선 변화를 선언하면서 한 전 대표와 친한계의 셈법이 더 복잡해졌다는 분석도 나온다. 그동안 친한계가 장 대표의 극우적 행보를 비판해왔는데, 장 대표가 변화를 줄 경우 타격 지점이 애매해질 수 있다는 것이다.
장 대표는 지난 19일 충북도당 당원 교육 자리에서 "계엄과 탄핵이 가져온 결과에 대해서는 책임을 져야 한다고 생각한다"며 "결과에 책임질 줄 아는 것, 그것이 보수정치"라고 말했다. 계엄과 탄핵을 둘러싼 기존 강경 기조에서 한발 물러나, 중도층을 의식한 메시지로 읽힐 수 있는 대목이다.
장 대표는 또 "이기기 위해서 변해야 한다", "이제 저들보다 먼저 국민 속으로 들어가고, 국민 목소리에 반응하는 국민의힘으로 변화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특히 장 대표는 "이기기 위한 변화"라며 당원들의 응원을 부탁했는데, 집토끼(당원)를 지키면서 동시에 외연 확장으로의 전환에 나선 셈이다.
한 국민의힘 관계자는 "장 대표가 나름의 타임스케줄에 맞춰 움직이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며 "집토끼를 잡아 내실을 다진 뒤, 내년 1~2월쯤 윤석열 전 대통령 1심 재판 결과 이후를 당의 변화 시점으로 보고 있는 분위기"라고 전했다.
이 관계자는 한 전 대표의 영향력은 더 줄어들 것으로 봤다. 그는 "(징계를 통해) 이번 국회의원 보궐선거에서 한 전 대표의 원내 진입만 막으면 원외 인사인 한 전 대표의 영향력은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고 했다.
이어 "연말·연초는 의원들이 국회에 모이기 쉽지 않은 시기"라며 "각 지역마다 신년회 등 모임이 많기 때문이다. 한 전 대표에 대한 징계 결정이 나오더라도 반발과 후폭풍은 제한적일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