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종민 이사장 직무성과계약서. 4·3평화재단 제공현재 정부 차원의 4·3추가진상조사가 진행되고 있습니다. 첫 진상조사 때 부족했던 부분을 보완하는 중요한 조사입니다. 정부는 지난해까지 조사를 끝내기로 했지만, 약속은 지켜지지 못했습니다. 조사를 담당한 4·3평화재단이 밀실조사 논란에 이어 조사 일정을 제대로 지키지 않으면서 결국 해를 넘기게 된 겁니다. 제주도는 "정부 사업"이라며 방관해왔는데, 과연 책임이 없을까요? 따져봤습니다.
'책임경영' 강조하며 이사장 직접 임명
제주도는 2024년 1월 관련 조례 개정을 통해 출자·출연기관인 4·3평화재단 이사장 선출 방식을 제주지사 임명제로 변경했다. 이전까지는 재단 이사회에서 이사장을 추천하면 도지사가 승인만 하는 방식이었다. 오영훈 지사는 "재단 운영이 불투명하다. 책임경영이 필요하다"며 이같이 바꿨다.
당시 고희범 전 이사장이 "4·3을 정치화하려 한다"고 반발하며 자진 사퇴하는 등 내홍을 겪었다. 결국 오영훈 지사는 관련 조례 개정을 강행하고 같은 해 3월 현 김종민 이사장을 임명했다.
오영훈 지사는 김종민 이사장을 임명하며 재작년과 지난해 '도민과의 약속'이라는 제목의 직무성과계약을 맺었다. CBS노컷뉴스가 확보한 지난해 직무성과계약서를 보면 '4·3진상규명과 명예회복에 앞장서겠습니다' '책임경영을 실현하겠습니다' 등의 다짐과 함께 구체적인 성과목표가 나온다.
지난해 7월 파행으로 끝난 분과위원회의. 김종민 이사장이 회의장을 나오고 있다. 고상현 기자성과목표는 100점 만점에 정부 차원의 추가진상조사가 25점으로 가장 비중이 크고, 이어 희생자 유해발굴·신원확인(20점), 4·3교육 활성화(20점), 4·3국내외 연대 강화(20점), 조직역량 제고(15점) 순이다. 제주도가 이사장 업무 평가를 할 때 추가진상조사 사업을 비중 있게 보겠다는 의미다.
고희범 전 이사장은 "4·3추가진상조사는 4·3평화재단이 해야 하는 업무 중에서 가장 중요한 일이다. 그런데 4·3추가진상조사 진행 과정을 보면 문제가 심각하다. 제주도에서 그동안 무얼 했는지 모르겠다. 책임경영을 감독하겠다고 자처해놓고 그걸 내팽개치는 건 무책임하다"라고 비판했다.
'도민과의 약속' 어기며 추가 혈세 투입
직무성과계약서에 나온 구체적인 성과목표에는 조사 기한인
지난해 6월까지 △4·3 당시 미군정의 역할 △재일제주인 피해실태 △연좌제 피해실태 △지역별 피해실태 △군경 토벌대와 무장대 활동 등이 담긴 추가진상보고서를 작성하고 국무총리 산하 4·3중앙위원회에 제출하도록 명시했다.
4·3중앙위에 보고서를 제출한다는 것은 4·3중앙위 추가진상조사 분과위 사전심의를 모두 마친 보고서를 보낸다는 뜻이다. 하지만 재단은 2023년 12월 분과위 회의를 끝으로 1년7개월간 어떠한 보고도 하지 않은 채 조사기한 마지막 날인 지난해 6월 30일 정부에만 보고서 초안을 제출했다.
이런 탓에 현재까지 분과위에 추가진상조사 결과보고만 겨우 이뤄진 상태다. 4·3특별법 시행령상 분과위에서 사전심의토록 한 보고서 작성 발간 안건에 대해선 아직 다뤄지지도 않았다.
김종민 이사장 직무성과계약서 성과목표. 4·3평화재단 제공김종민 이사장이 성과목표를 통해 도민에게 약속한 것처럼 지난해 6월까지 보고서 안에 대해 사전심의를 마치고 4·3중앙위에 제출했다면 지난해까지 조사를 끝내겠다는 정부 약속도 지켜질 수 있었다. 4·3중앙위 심의·의결을 거친 후 국회에 보고만 하면 추가진상조사 보고서가 확정돼서다.
하지만 그 약속은 지켜지지 않았고, 올해도 추가진상조사가 진행되면서 정부 예산이 추가로 투입된다. 조사가 시작된 2022년부터 지난해까지 4년간 모두 28억 원이 투입된 데 이어 올해 4억7천만 원 추가돼 예산은 모두 32억7천만 원으로 늘어났다. 대부분 조사연구원 인건비 예산이다.
"제주도, 재단 업무 지도·감독 의무"
오영훈 지사가 재단의 책임경영을 강조하며 직접 임명한 김종민 이사장이 도민과의 약속을 제대로 지키지 않았는데도, 제주도는 "정부 사업"이라며 사실상 손을 놨다. 조사 기간에 속한 2024년과 지난해 6월까지 충분히 추가진상조사 사업 추진 상황에 대해 살펴볼 수 있었지만 방관했다.
특히 '재단법인 제주4·3평화재단 설립 및 운영에 관한 조례'를 보면 도지사는 재단의 운영과 관련해 업무와 회계, 재산 등 운영상황에 관한 자료 제출을 요구하고 필요한 경우 지도·감독할 수 있다. 지도·감독 결과 위법·부당한 사항이 있으면 시정을 요구하거나 필요한 조치를 할 수 있다.
정부 차원의 4·3추가진상조사를 가능케 한 4·3특별법 개정안도 오 지사가 2021년 국회의원 시절 "4·3의 완전한 해결을 위해 필요하다"며 대표 발의했다. 2022년 제주지사 선거 후보 당시 4·3 관련 핵심공약으로 '추가 진상규명을 통한 정명(正名)과 미국의 책임 규명'을 약속하기도 했다.
오영훈 지사. 제주도 제공익명을 요구한 한 4·3평화재단 관계자는 "제주도는 재단 업무를 지도·감독해야 할 의무가 있다. 4·3추가진상조사가 정부 사업이라며 손을 놓고 있는데, 4·3기록물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이나 유해 발굴 사업 모두 국비로 하는 건데 잘 된 것은 왜 자기들이 한 것처럼 나서느냐"고 꼬집었다.
제주도 관계자는 "4·3추가진상조사가 정부 사업이라 제주도 역할이 제한적이다. 도의원들도 제주도가 좀 더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는 주문이 있었다. 그 이후 재단에 그렇게 하고 있다. 재단 이사장 직무성과 평과 결과 일정 기준을 충족하지 못하면 연임할 수 없다는 조건이 있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