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합뉴스"5월 9일 종료되는 다주택자 양도세 중과 유예 조치의 연장은 전혀 고려하지 않고 있습니다."
지난 1월 23일 새벽, 이재명 대통령이 엑스(X)에 남긴 한 문장은 부동산 시장을 단숨에 흔들었다. 불과 이틀 전 신년 기자회견에서 "세금을 동원하는 것은 마지막 수단"이라고 했던 발언에 안도했던 다주택자들은 당혹감을 감추지 못했다.
이틀 뒤 '팔지 않고 버틸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자 대통령은 다시 글을 올렸다. "팔면서 내는 세금보다 들고 버티는 세금이 더 비싸게 느껴질 것." 양도세 중과 유예 종료에 이어 보유세 부담까지 시사한 발언이었다.
양도세 중과 유예 종료…대통령 발언이 촉발한 계산의 시작
대통령이 3일 연속 엑스를 통해 메시지를 쏟아내자 다주택자들은 즉각 계산에 들어갔고, 계산 결과는 곧바로 시장에 반영됐다.
2월이 시작되자 서울 전체 매물은 전달보다 평균 6% 늘었다(부동산 플랫폼 아실 집계). 송파·성동 등은 20% 가까이 늘었다. 반면 거래량은 25% 급감했다. 가격 인하 매물이 속출했지만 매수자들은 대출 규제 속에서 가격 흐름을 관망하는 분위기다.
경기도 핵심지역도 함께 움직였다. 성남 분당은 지난 7일 기준 매물 2423건으로 1월 1일(1956건) 대비 23.9% 급증했다. 용인 수지와 수원 영통 역시 3천건대 매물을 유지하고 있다.
설 연휴를 앞둔 12일 정부는 '팔고 싶어도 팔 수 없다'는 다주택자들에게 일정 부분 숨통을 틔워줬다. 5월 9일 이전 계약만 체결하면 등기까지 4~6개월 유예를 주고, 임대 중인 주택의 실거주 의무도 유예하기로 했다.
매물 증가·거래 급감…정책 전 시장이 먼저 움직였다
정책은 아직 시행되지 않았다. 그러나 시장은 이미 움직였다. 이 같은 매물 증가는 정책의 실제 효과라기보다, 시장의 '선반영' 메커니즘이 작동한 결과다.
한문도 명지대 대학원 실무투자분석학과 교수는 "다주택 자산가들은 정치권의 정책 신호에 대한 민감도가 1주택자나 무주택자보다 훨씬 높다"며 "대통령의 발언은 사실상 확정 정책으로 받아들여진다"고 말했다.
한 교수는 이어 "특히 대통령이 양도세 중과뿐 아니라 보유세까지 언급했기 때문에 머리가 아픈 자산가들이 많다"며 "정부 정책을 이길 수 없다는 대통령의 메시지가 강해지면서 차익 실현에 나설 자산가가 많아질 것으로 보인다"고 분석했다.
고종완 한국자산관리연구원장 역시 "보유세에 대한 대통령의 메시지만으로도 다주택자들의 매물을 상당히 불러내고 있다"며 "시간이 갈수록 매물은 더 늘어날 가능성이 높다"고 예측했다.
그는 "현재 우리나라의 다주택자 비율이 13.9% 수준인데, 시간이 갈수록 그 비중만큼 매물이 시장에 나올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고 덧붙였다.
이 같은 '선반영'은 낯선 장면이 아니다. 문재인 정부 때인 2018년 4월 1일 다주택자 양도세 중과를 앞두고 3월 서울 아파트 거래량은 1만3813건으로 급증했다. 그러나 시행 직후인 4월 거래량은 6214건으로 반토막이 났고 5월에는 5431건까지 떨어지며 '거래 절벽' 현상이 나타났다.
정부는 거래 억제를 통해 가격 안정을 꾀했으나, 시장은 오히려 '매물 잠금'으로 응수했다. 특히 다주택자들은 집을 파는 대신 자녀에게 물려주는 '증여'를 택했고, 매물이 사라지자 서울 아파트값은 그해 8% 넘게 급등했다. 결과적으로 2018년 규제는 거래 위축과 가격 상승이라는 심각한 부작용을 낳았다.
2018년과 달라진 구조…증여·우회 비용의 변화
연합뉴스일각에서는 4년 만에 다주택자 양도세 중과가 재개되면서 2018년과 유사한 '매물 잠김' 현상이 재연되는 것 아닌지 우려한다. 다만 구조는 달라졌다.
2018년 당시 증여 취득세율은 지역 불문 3.5%에 불과했다. 양도세 중과(최대 62%)를 피하기 위해 증여를 선택하는 것이 압도적으로 유리했다.
지금은 조정대상지역 내 다주택자의 증여 취득세율이 12%다. 여기에 2023년부터 도입된 '시가인정액(실거래가 기준)' 과세 체계까지 더해져 실제 세 부담은 4배 이상 치솟았다.
박원갑 국민은행 부동산 수석전문위원은 "조정대상지역 주택은 공시가격 3억원 이하이거나, 비조정대상지역 집을 증여해야 세금폭탄을 맞지 않기 때문에 다주택자들의 고민이 크다"며 "안 팔리면 자식에게 부담부증여하는 것도 쉽지 않은 현실이다"고 말했다.
양도세 중과 카드에 이어 이 대통령은 또 하나의 신호를 보냈다. 주택 임대사업자에 대한 양도세 중과 배제 특례가 과도하다는 취지였다. 엑스를 통해 수차례 의견을 내면서 임대사업자를 정조준했다.
전문가들은 일반 다주택자에 이어 임대사업자 물량까지 더해져 적잖은 매물이 시장에 풀릴 수 있다고 내다봤다.
채상욱 커넥티드그라운드 대표는 "주택 임대사업자에 대한 양도세 장기보유특별공제를 그대로 두면 최대 차익 시점까지 팔지 않을 유인이 계속 존재한다"며 "기한을 설정해 혜택을 폐지하는 것이 주택 시장 안정 측면에서 타당하다"고 말했다.
고 원장은 "임대사업자 보유 아파트까지 시장에 나온다면 단기적으로 서울 집값 안정에 기여하는 효과가 있을 것"이라면서도 "기존 제도에 따라 부여된 혜택을 갑자기 없애는 것은 정책 신뢰를 훼손할 수 있고, 임대물량 감소라는 부작용도 있다"고 지적했다.
임대사업자 특례 논란…공급과 신뢰 사이의 선택
임대사업자 특례 폐지에 대한 시장의 '선반응'은 아직 크지 않다. 다만 정부의 제도 개선 움직임이 본격화될 경우 또 한 차례 매물이 풀릴 가능성은 남아 있다. 서울에 남아 있는 등록임대 아파트 물량만 4만여 세대에 이르는 만큼, 제도 변경의 방향에 따라 시장 심리는 다시 요동칠 수 있다.
2018년에도 비슷한 장면은 있었다. 정책 시행을 앞두고 거래가 몰렸다가 급격히 얼어붙는 흐름이 반복됐다. 다만 지금은 증여와 우회 경로의 비용이 크게 높아진 만큼, 당시와 똑같은 방식으로 대응하기는 쉽지 않다.
결국 시장을 움직이는 것은 확정된 세율이 아니라, 달라질 수 있다는 신호다. 대통령의 한 문장이 던진 메시지는 매물 증가라는 숫자로 먼저 나타났다. 거래는 줄었고, 가격은 관망 속에 놓였다.
5월 9일은 단지 양도세 중과가 재개되는 시점만은 아니다. 팔 것인가, 버틸 것인가 계산이 마감되는 날이기도 하다. 선택은 각자의 몫이지만, 비용은 피할 수 없다. 지금 시장을 흔드는 것은 세금이 아니라 신호다. 그리고 신호가 멈춘 뒤에야, 진짜 비용의 시간이 시작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