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쓰레기 없는 거리, 정시에 도착하는 지하철, 조용하고 단정한 공공장소. 우리는 인류 역사상 가장 안전하고 질서 정연한, 이른바 '쾌적한 사회'에 살고 있다. 그런데 그 쾌적함이 누군가를 밀어내는 힘으로 작동하고 있다면 어떨까.
일본의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구마시로 도루가 쓴 신간 '쾌적한 사회의 불쾌함'은 바로 이 질문에서 출발한다.
노키즈존과 노시니어존의 확산, 불편을 참지 않겠다는 태도, 늘어나는 정신과 진단명과 건강 강박. 저자는 우리가 추구해온 질서와 청결, 효율과 균질화가 어떻게 배제와 낙인, 통제의 동력으로 변했는지를 짚는다.
이 책은 2021년 일본 '기노쿠니야 인문대상'을 수상하며 주목받았다. 사회학자 오찬호와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하지현도 추천을 보탰다.
저자는 현대 도시 시스템이 과거의 불편함을 상당 부분 제거했지만, 그 대가로 개인에게 '능숙하고 결함 없는 인간'이 되라는 압박을 가하고 있다고 말한다.
겉으로는 다양성을 말하지만 실제 경쟁의 장에서는 일률적인 기준으로 사람을 선별하는 현실, 업무 속도와 소통 능력을 기본값처럼 요구하는 직장 문화, 그 기준에 미치지 못할 경우 쉽게 '문제적 존재'로 분류되는 풍경을 비판한다.
특히 ADHD(주의력결핍 과잉행동장애)와 ASD(자폐스펙트럼장애) 진단의 증가를 개인의 결함만으로 보지 않는다. IT화와 서비스 산업 중심의 사회 구조 속에서, 속도와 의사소통 능력을 따라가지 못하는 사람들이 '질병'의 이름으로 설명되고 있다는 것이다. 과거라면 개성으로 받아들여졌을 특성들이 오늘날에는 교정의 대상이 되는 셈이다.
건강을 둘러싼 강박도 주요 분석 대상이다. 운동과 저속노화 식단, 체형 관리와 피부 관리에 대한 집착은 이제 선택이 아니라 의무처럼 여겨진다.
건강은 자연과학적 가치이자 동시에 경제적 효율성과 결합된 사회적 규범이 됐다. 질병과 죽음은 일상에서 분리되고, '건강한 몸'이 우월함의 기준이 되는 분위기 속에서 병든 몸은 점점 보이지 않는 곳으로 밀려난다.
저자는 저출생 문제 역시 같은 맥락에서 읽는다. 질서와 효율을 극단까지 밀어붙인 사회에서 아이는 통제하기 어려운 존재다.
육아는 '축복'이 아니라 위험 관리의 영역이 되고, 부모는 아이가 시스템의 부적응자로 낙인찍히지 않도록 관리해야 한다. 일본 도쿄의 합계출생률이 1명 아래로 떨어진 현실을 사례로 들며, 저출생은 개인의 선택을 넘어 '쾌적함에 중독된 사회'의 구조적 결과일 수 있다고 지적한다.
생각지도 제공
그렇다고 저자가 청결과 질서를 전면 부정하는 것은 아니다. 문제는 '청결한 질서가 옳으냐 그르냐'가 아니라, 그 질서 속에서 어떻게 배제와 소외를 줄일 것인가다. 청결을 실천하는 능력에 개인차가 있다는 점, 그 안에 계급과 문화자본의 격차가 스며 있다는 점을 함께 고민해야 한다는 것이다.
책의 말미에서 저자는 현대 사회의 통념을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이지 말 것을 주문한다. 법과 제도를 지키며 사는 것과, 아무 생각 없이 맹종하는 것은 다르다. 지금의 질서에 반감을 품은 채 살아갈 자유, 질서를 비판해도 괜찮은 사회가 필요하다는 메시지다.
구마시로 도루 지음 | 이정미 옮김 | 생각지도 | 336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