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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종은 왜 하필 '육지 속의 섬' 청령포에 유배됐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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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단종은 왜 하필 '육지 속의 섬' 청령포에 유배됐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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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편집자 주

    책보다 영상으로 역사를 배우는 시대라고들 말합니다. 사극 영향력이 날로 커지는 이유겠죠. 무려 1천만 관객을 넘긴 영화 '왕과 사는 남자'만 봐도 그래요. 물론 역사는 '과거'입니다. 그러나 '지금'을 비춥니다. 그리고 '미래'로 향하죠. 그래서 우리는 역사를 배웁니다. 우리 시대 사극의 길을 역사학자들에게 물었습니다.

    [사극에 바란다 ②] 역사학자들이 전하는 '단종 미스터리'

    영화 '왕과 사는 남자' 스틸컷. 쇼박스 제공영화 '왕과 사는 남자' 스틸컷. 쇼박스 제공
    ▶ 글 싣는 순서
    ① '왕과 사는 남자' 엄흥도는 사실 '촌장'이 아니었다?
    ② 단종은 왜 하필 '육지 속의 섬' 청령포에 유배됐을까
    (계속)

    말 그대로 미스터리다. 왕위를 빼앗기고 강원도 영월에 유배돼 열일곱 나이에 죽임을 당한 단종(1441-1457)의 행적이 그러하다.

    이상균 강릉원주대학교 사학과 교수는 "단종을 연구한 논문이 통틀어 10편 정도 밖에는 안 된다"며 "후대에 단종이 복권된 뒤 그에 대한 비사들이 전해지는데, 진위에 대한 고증마저 어려우니 설왕설래가 계속될 수밖에 없다"고 전했다.

    그는 "유배지인 영월 청령포에서 단종이 실제로 머문 기간도 짧은 탓에 관련 기록이 거의 남아 있지 않다"며 "단종이 오기 전에 청령포에 어소를 지었지만, 얼마 안 가 홍수가 나서 유배 장소를 영월부 관아의 관풍원으로 옮겼고 그곳에서 목숨을 잃는다"고 설명했다.

    김근하 서강대학교 HUSS포용사회사업단 연구교수 역시 "단종이 영월로 유배된 이유를 알 수 있는 사료는 없다"며 "어떤 말을 해도 정설이 될 수 없는, 모두 추정에 의지하는 셈"이라고 말했다.

    결국 '왕과 사는 남자'에 나오는 단종의 말과 행동은 절대적으로 영화적 상상력에 바탕을 둔 결과물이다. 극중 펼쳐지는, 유배지로 선택받으려는 마을간 유치 경쟁 역시 이와 비슷한 맥락이다.

    이상균 교수는 "영화에서는 지역에 유배인이 오면 중앙과 연결고리가 생겨 그 마을이 흥하는 것으로 표현됐다"며 "그러나 주민들 입장에서는 고관대작이 유배를 오면 일이 굉장히 많아지기 때문에 꺼리는 게 일반적이었다"고 전했다.

    다른 의견도 있다. 영화 속 유배지 유치전이 어느 정도 가능한 설정이라는 이야기다.

    김근하 교수는 "계유정난 이후 이를 부정하는 사람들이 계속 나오는데, 이들이 지방으로 줄줄이 유배를 갔다"며 "그들이 유배지에서 수많은 제자를 양성하고, 훗날 그 제자들이 중앙 정계로 진출하면서 해당 지역 위치를 격상시켰다"고 설명했다.

    이어 "그렇게 사림파가 탄생하는 것인데, 이러한 일을 '왕과 사는 남자'에서는 유치전 형태로 변주시킨 측면이 있어 보인다"며 "더욱이 극중 배우 유해진이 연기한 촌장 엄흥도가 유배지 유치에 적극 나서도록 만든 이웃 마을 사례는 실제 역사"라고 부연했다.

    영화 '왕과 사는 남자' 스틸컷. 쇼박스 제공영화 '왕과 사는 남자' 스틸컷. 쇼박스 제공

    '육지 속의 섬' 영월 청령포…"딱 들어맞는 표현"


    조선시대에 유배를 간다는 것은 어떤 의미였을까.

    권기중 한성대학교 역사문화큐레이션트랙 교수는 "죄가 중할수록 더 멀리 보내는 유배가 있는 반면에, 어떤 경우에는 유배인이 보호받고 살 수 있도록 친인척이 있는 곳으로 보내기도 했다"며 "그래서 고려시대에는 유배를 '고향으로 보낸다'는 의미로서 '귀향'(歸鄕)으로 표현하기도 했다"고 설명했다.

    그렇다면 단종은 왜 강원도 영월에 유배됐을까.

    이상균 교수는 "고려 마지막 왕인 공양왕도 강원도로 유배를 오는데, 이곳이 오지이다 보니 주요 죄인들 유배지로 선정되는 경우가 굉장히 많았다"며 "이러한 맥락에서 단종 역시 영월로 온 것으로 보인다. 뚜렷한 이유는 알 수 없지만, 오래 전부터 강원도가 주요 유배지였던 것은 분명하다"고 전했다.

    김근하 교수는 "답사 목적으로 영월 청령포를 여러 차례 다녀왔다"며 "영화 속 청령포와 같은 스펙터클은 없더라도 지금도 배를 타고 들어가는 등 영화에 나오는 대사처럼 '육지 속의 섬'이라는 표현에 딱 들어맞는 곳"이라고 봤다.

    이어 "영화에서는 공간적으로 봤을 때 단종을 세상과 완벽하게 단절시켜야 했을 것"이라며 "단종의 고립감을 극대화하는 장치로서 극중 청령포 풍경은 효과적인 설정"이라고 덧붙였다.

    다만 이상균 교수는 '왕과 사는 남자'에서 단종이 유배된 청령포 풍경이 현실의 그것과 많이 다르게 표현된 데 아쉬움을 나타내기도 했다.

    결국 공간이 지닌 상징성을 영화적으로 부각시키려다 보니, 의도치 않게 실제와 상당한 괴리를 만들어낸 셈이다.

    이 교수는 "조금 전 영월군 관계자를 만나고 오는 길인데, 관광객들이 굉장히 많이 늘었다고 하더라"며 "그런데 실제로 청령포를 방문하는 사람들에게 '영화와는 많이 다르네'라는, 그다지 좋지 않은 이미지를 주는 데 대한 우려도 있다"고 짚었다.

    영화 '왕과 사는 남자' 스틸컷. 쇼박스 제공영화 '왕과 사는 남자' 스틸컷. 쇼박스 제공

    "영월, 단종 받든 엄흥도 덕에 '충절'의 고장으로"


    권기중 교수는 "역사학자로서 단종과 엄흥도처럼 베일에 가려졌던 인물이 영화를 통해 부각되는 것은 상당히 고무적인 일"이라고 했다.

    같은 맥락에서 김근하 교수 역시 "기존 관련 콘텐츠에서 단종은 유약하게, 한명회는 나쁘고 권력지향적으로, 주변 백성들은 조명 안 되는 경향이 있었다"며 "영화 '왕과 사는 남자'에서는 유약했던 단종이 각성하고, 백성들 역시 자기 입장을 적극 어필하는 쪽으로 그리는 등 각 인물들이 처한 상황을 합리적으로 잘 설정한 것 같다"고 평했다.

    이상균 교수는 "영화와 달리 단종이 사약으로 목숨을 잃었다고 기록한 야사에는 그 사약을 가져온 금부도사 왕방연이 등장한다"며 "그가 단종의 죽음을 확인하고 돌아가는 길에 모든 구멍에서 피를 토하고 죽었다는 기록이 있다"고 말했다.

    이어 "이 역시 사실과 부합하지는 않는데, 단종의 애달픈 삶을 강조하려다 보니 야사에서나마 단죄를 한 것으로 보인다"며 "단종에 얽힌 이야기가 워낙 슬퍼서 이렇게 극적으로 변주돼 전해지는 경우가 많다"고 덧붙였다.

    그는 "영화 '왕과 사는 남자' 역시 보다 사실에 부합하는 기록을 찾아서 가미했다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이 있다"면서도 "그럼에도 영화 등으로 흥미를 유발하고 역사를 보다 깊이 들여다보도록 돕는 상호보완적인 관계가 될 수 있다는 점에서 긍정적"이라고 강조했다.

    그렇다면 실제 영월 지역에서 단종과 엄흥도의 입지는 어떨까.

    이 교수는 "영월에서는 단종보다 엄흥도의 입지가 더 탄탄하다"며 "단종릉이 이곳에 있기는 하지만, 익히 영월을 '충절의 고장'이라고 불러온 데는 호장 엄흥도의 역할이 컸다"고 전했다.

    그는 "비운의 왕 단종이 영월에 유배된 것은 그 '애사'(哀史, 슬픈 역사)의 종결점에 해당한다"며 "지역민들 입장에서 보면 그러한 임금을 충(忠)으로 받든 엄흥도가 자부심을 보다 키울 수 있는 인물이니 상대적으로 더욱 부각되는 것"이라고 진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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