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솔로 데뷔 20주년을 맞은 싱어송라이터 강허달림. 본인 제공서울재즈아카데미를 보컬 전공으로 수료하고 '마고'와 '풀 문'이라는 밴드를 거쳐 2000년부터 2004년까지 신촌블루스 보컬로 활동했다. 스스로 지은 강허달림이라는 이름으로 솔로 활동을 시작한 건 2005년. 싱글 '독백'을 낸 후 독립 레이블 '런뮤직'을 설립했고 2008년 정규 1집 '기다림, 설레임'을 시작으로 2011년 정규 2집 '넌 나의 바다', 2023년 정규 3집 '러브'(LOVE)를 냈다.
정규 2집 이후 정규 3집이 나오기까지 12년이 걸리긴 했지만, 그 사이 결혼해 아이 낳고 터전을 제주로 옮기는 등 삶에 큰 변화가 왔음에도 꾸준히 음악 활동을 해 왔다. 커버 앨범 '비욘드 더 블루스 강허달림'(2015), 미니앨범 '바다 영혼'(2016)을 냈고 2018년에는 데뷔 20주년 기념 공연도 했다.
CBS노컷뉴스는 지난 25일 오후, 서울 양천구 CBS노컷뉴스 사옥에서 솔로 데뷔 20주년을 맞아 지난해 12월 기념 앨범 '강허달림 20th'를 발매한 강허달림을 만났다. 인터뷰 두 번째 편에서는 편곡, 프로듀싱, 악기 연주 등 앨범 전반에 관한 이야기를 살펴본다.
'강허달림 20th'는 2025년 12월 17일에 발매됐다. "연도에 맞추느라고 (그 과정이) 막! 어마무시했다. 작업에 변수가 많아서… 이 짓을 맨날 왜 하는지 모르겠다"라며 웃은 강허달림은 정규 3집이 나오자마자 이번 앨범을 준비했다고 털어놨다.
정규 2집과 3집 사이에도 앨범을 냈다. 하지만 사람들의 시선을 조금 달랐다. 강허달림은 "'비욘드 더 블루스'도 10곡이나 들었는데 그건 정규앨범이라고 생각하지 않더라. 순수하게 제가 창작곡을 써서 어느 정도 분량을 갖춘 앨범이어야 (정규라고) 하는 것 같다"라며 "끊임없이 음반 생각"을 했고 "이를 갈면서" 준비했다고도 전했다.
'강허달림 20th' 디지팩 앨범 속지. 본인 제공"왜냐하면 그게 전부잖아요. 음악을 하는 행위의 시작이 음반이기 때문이에요. 음반을 만들고, 그거로 인해서 (다른 활동이) 파생되는 거기 때문에. 음악 작업은 그런 거 같아요. 창작이라는 게, 예를 들어 멜로디가 '나와라 뿅!' 하고 금방 나오는 게 아니라서 평생 달고 다니는 숙제 같죠. 살아남기 위한 도구로 음반을 만드는 거예요."서울재즈아카데미에 시절 처음 알게 된 콘트라베이스 연주자 이원술을 '강허달림 20th'의 프로듀서로 모셨다. 강허달림은 "저는 완~전 바닥이었고, (이원술은) 클래스에서 항상 칭송받는, 멀리서 봐도 카리스마 있는, 레벨이 다른 연주자셨다"라고 기억했다.
평소 좋아하던 가수 남예지가 재작년에 낸 정규앨범 '오래된 노래, 틈'을 참 좋게 들었는데, 프로듀서가 이원술이었다. 연주 음반 외에 보컬 음반 프로듀싱도 많이 많았단 걸 알게 됐고, 또 "그 선배가 편곡해서 진행하는 부분이 좋았다. 그분이 가진 음악 스타일이나 결과물이 이번 앨범과 잘 맞겠다 싶어서" 프로듀서로 함께하게 됐다.
남들에게 '완벽주의자'란 소리를 많이 들었다는 강허달림은 뚜렷한 기준으로 음반을 만든다. 그는 "다 정확하게 곡의 폼(형태)을 만들어서, 처음부터 끝까지 완벽하게 기승전결을 마무리해야 넘어간다. 걸리는 거 없이 흘러서 내 귀에 좋아야 한다. 작곡을 정식으로 공부하지 않은 사람이라서 가질 수 있는 부분이 있다. 그냥 제 본능과 감각을 믿는데, 해야 하니까 저도 모르게 이런 감각이 체화된 것 같다"라고 돌아봤다.
일방통행하진 않는다. 직접 가사와 멜로디를 쓰지만 타인의 전문성을 존중하며 작업해 나간다. 특히 편곡은 전적으로 의지한다. 그는 "(멜로디에) 기타, 피아노 두 가지 다 입혀보고 전체적인 곡 진행에 문제가 없다면 편곡은 어떻게 해도 무방하다고 생각한다. 그런 의미로 '아무것도 없는 상태'에서 편곡 프로듀싱을 하게 한다. 저는 전체적인 분위기 아이디어 정도만 준다. 영역이 다르고, (프로듀서에게) 제가 모르는 아이디어가 더 많을 수 있으니 절대적으로 의지하는 편"이라고 밝혔다.
왼쪽부터 강허달림, 이원술 프로듀서, 윤정오 사운드 엔지니어, 황병준 마스터 엔지니어. 강허달림 제공제일 좋은 편곡은 "멜로디를 다 잘 어우르는 것"이라는 생각으로 프로듀서를 구했고, 이번에도 마찬가지였다. 강허달림은 "멜로디를 잘 살아나게 하는 걸 잘 아시는 분들과 음반을 만드는 거다. 멜로디가 강해지면 어떤 연주자를 선택할지도 중요한데, 연주자는 전적으로 프로듀서의 안목과 능력으로 구하는 거라 프로듀서 섭외에 더 신중해야만 했다"라고 말했다.
이어 "저는 제작자고, 많지는 않지만 한두 푼 들어가는 게 아닌 적지 않은 비용으로 최대한의 능력치를 발휘할 프로듀서가 누구일까 많이 고민했다. 작업했던 음반 색깔과 완성도가 제게 많이 와닿아서 결국 이원술 선배와 같이했다"라고 부연했다. "들어보시면 알겠지만 AI(인공지능) 시대에도 살아남을 수 있는 음반이라고 할 수 있어요."
사운드 엔지니어는 프로듀서보다도 먼저 정했다. 재즈 음반을 듣다가 믹싱이 너무 잘돼 있어서 누구인지를 확인했고, 본인 공연에서 가끔 오퍼레이터를 맡아준 윤정오였다. 긴가민가해서 전화해 확인하니 본인이 아는 그 윤정오가 맞았다.
강허달림은 "원래 스튜디오 엔지니어라고 하시더라. 되게 작업 많이 하는데도 이름을 잘 드러내는 분은 아니다"라며 "김민기, 시인과 촌장, 함춘호 선생님과도 작업했고 유키 구라모토의 어쿠스틱 공연 엔지니어도 하셨다. 녹음·믹싱 엔지니어도 하신대서 '그럼 저 20주년 앨범 만들 건데 해 주세요!' 했다"라고 섭외 배경을 전했다.
하루는 음 처리가 불안정한 부분이 있어서 수정을 요구한 적이 있었다. 이원술 프로듀서도, 윤정오 사운드 엔지니어도 반대했다. 강허달림은 "저는 거슬리니까 바꿔 달라고 했는데, 두 분이서 '전체적인 음악에는 전혀 문제가 없다. 잡음까지도 음악 안에서 같은 호흡으로 가고 있는데 특정 부분을 잘라내는 건 아닌 것 같다'고 하셨다. '이건 분명히 필요한 거니까 양보 못 한다'라며 저를 집요하게 설득했다"라고 말했다.
강허달림 20주년 기념 앨범 '강허달림 20th' 표지. 본인 제공마스터링 엔지니어인 황병준의 생각도 같았다. 앞선 두 사람이 말했던 걸 똑같이 언급해서 놀랐다고. 강허달림은 "'에너지가 살아있는 음반에 한 음이 덜컥거린다고 해서 그걸 수정하면 전체적인 에너지에 어떤 영향을 줄지 모른다. 아주 좋은 연주와 진행인데 왜 손을 대느냐'라고 하셨다"라며 "그래서 이 음반이 다른 음반과 다르게 좋은 음반이라고 본다"라고 전했다.
결국 동조할 수밖에 없었다. 그는 "20~30년 동안 음악하시는 분들이 똑같은 논조로 흔들림 없이 얘기하시니까, 저는 만족스럽지 못해도 이 정도의 양보와 조율은 할 수 있겠다 싶어서 오케이(OK) 했다. 저는 창작자, 작업자로서 가진 요동치는 감정이 있는데 그런 건 되도록 맞춰주려고 하셨다. 프로듀서로 고집을 갖고 있지만 최대한 창작자의 원 색깔을 존중하면서 중심을 잡아가니까, 정말 베테랑"이라고 감탄했다.
'내 안의 완벽주의'가 언제나 정답은 아니라는 것도 깨달았다. 강허달림은 "진행자로서, 제작자로서, 스태프들을 아우르는 사람으로서 멀찍이 바라보는 순간이 꽤나 있다. 어쨌든 결과물을 내야 하고, 그 책임은 제작자가 져야 하지만 내 안의 완벽이 절대적인 완벽이 아닐뿐더러 늘 옳다고 할 수도 없다"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그걸 항상 깨뜨려야 하는 게 제 숙제다. 그래야 폭이 넓어질 수 있다"라며 "2집 때 제가 프로듀싱해서 제가 좋아하는 톤으로 했는데 잘 안 나왔다. 그 한계를 너무 극명하게 맛봐서 여러 사람과 협업할 때 나오는 긍정적인 부분을 잘 수용하려고 한다"라고 덧붙였다.
대화를 많이 나누며 완성한 음반이었다. 강허달림과 이원술 프로듀서, 윤정오 엔지니어는 작업실에서 세세한 악기 배분부터 믹싱까지 셋이 같이했다.
2025년 익산 공연 당시 모습. 본인 제공"정말 그 과정이 재밌더라고요. 조율할 때도 감이 다 비슷해서, '여기 좀 올려야 할 거 같은데?' 하면 '맞아! 거기 올려야지' 했어요. 믹싱도 너무 재미나게 했고, 제가 마스터링에 궁금증이 되게 많았는데 스스럼없이 대화를 주고받을 만큼 후반 작업도 너무 재밌었어요. 모두가 즐기면서 하는 작업이랄까요? 황병준 감독님도 너무 좋아하셨죠. '간만에 이런 살아 있는 음반 작업할 수 있어서 좋았다'라고."인터뷰 중 가장 의외의 대답이 나온 순간은, 강허달림이 자기 목소리를 싫어한다고 했을 때였다. 시간이 흐르면 본인 목소리를 조금이라도 더 좋아하게 될까. "왜 목소리가 저럴까 한다. 별로 호감도가 없다"라고 웃은 강허달림은 "예전에는 음향이 안 좋은 상황에서도 항상 음정, 고음 처리를 생각했고 제가 원하는 지점에 도달하지 못하면 많이 힘들어했다"라고 고백했다.
"제 노래를 좋아하진 않지만, 지금은 어느 정도 신뢰가 있어요. 누가 듣고 '너 노래 이상해'라고 하지는 않겠다는 안도감으로 노래를 대해요. 오늘 좀 망치는 거 같다는 생각이 들어도 그 순간 저를 다독여요. 이건 연륜인 거 같아요. '괜찮아, 지금 잘하고 있으니까 여기서 너무 흔들리지 말고 지금 네 마음 잡아. 이 순간에도 사람들이 너 목소리 들으려고 기다리고 있으니 정신 차려!' 하는 여유?"20주년 기념 앨범 표지 사진은 평소 강허달림 음악을 즐겨듣는 청자이기도 한 이누엣 작가가 찍었다. 석지운 디자이너가 맡은 표지에는 강허달림의 뒷모습과 숫자 20이 나타나 있다. 석 디자이너는 '어떤 색보다 단단하고 매혹적인 화려함'을 지닌 검은색을 썼다. 20주년을 의미하는 숫자 2와 0 사이에 강허달림 뒷모습을 배치해, 20주년과 새로운 시작을 뜻하는 2.0 의미 둘 다를 겨냥했다.
노래 가사가 적힌 속지에는 강허달림 사진과 꽃이 담겼다. 활짝 핀 꽃은 시들지 않은 채 20년 동안 피어있는 강허달림을 의미한다. '나, 당신 믿으니까 알아서 다 해' 하고 맡겼는데, "군더더기 없이 잘 만든" 결과물이 나와 "너무 만족스럽다"라고 강허달림은 답했다. 4월 중 발매 예정인 LP도 표지는 아마 같은 디자인일 거라고.
싱어송라이터 강허달림. 본인 제공"저에게 음반 작업은 생존이에요. 저는 인디 쪽에서도 비주류예요. 이렇게 경계에 서 있으면 남들과는 어떻게 차별을 둬야 하는지 고민이 깊어질 수밖에 없죠. 살아남기 위한 도구로 음반을 만드는 거예요, 항상 절실하게. 이렇게 정성을 들여서 다 쏟아붓지 않으면 살아남을 수 있을까, 어떻게 이슈를 가져갈 수 있을까 생각해요. 평론가들이 좋아하는 음악도 아니고, 대중음악으로서 방송을 자주 탈 수 있는 음악도 아니고… 표현을 빌리자면 '고퀄리티'의 풀 렝스(정규) 앨범 정도로 만들지 않으면 제가 있을(존재할) 방법이 없다는 생각이에요. 처음에도 그랬고, 앞으로도 제가 음악하는 환경이 바뀌지 않는다면 이렇게 '자유롭게' 할 거고요." 강허달림은 "의도하진 않았지만 저의 고집으로 해 온 것이지 않나. 하고 싶은 대로, 내고 싶을 때. '이런 걸 누가 해?' 할 수 있지만 적어도 (앨범으로) 그 당시의 강허달림을 이야기할 수 있다. 나이를 먹으면서 변화한 부분도 음반에 그 흔적이 있으니, 크지는 않아도 나름의 서사가 있을 테니 반추해 볼 수 있겠다고 생각해 본 적이 있다"라고 운을 뗐다.
20주년 음반을 경청하고, 사려 깊은 감상을 전한 이들이 있다. "제작하면서 제가 만들어온 길에 뿌듯함을 느끼고 있긴 했지만, '그런 생각이 틀리지 않았다'라는 반응을 사람들이 보여주셔서 거기에 감사하다. 다음 거를 또 하고 싶다"라고 덧붙였다.
"'여전히 꿈을 꾸는가'에 대한 답은 아니겠지만 이렇게라도 잘 살아남고 싶은 책임감이 생겼어요. 음반이 나올 때마다, 저처럼 주류 음악이 아닌 자기 자리에서 음악하는 동료들이 '여전히 음악을 하고 있어서 너무 감사하다'라는 표현을 꼭 하더라고요. 그게 제 몫인 거 같아요. 음악하고자 하는 어떤 누군가나, 동료들에게는 저의 이런 진행이나, 제 존재가 서로 버틸 에너지가 될 수 있는 거 같아요. 잘 버티려는 책임과 의무가 본인의 꿈이 되었습니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