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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경리 100주년, 미공개 시 47편 첫 공개…'산다는 슬픔' 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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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학술

    박경리 100주년, 미공개 시 47편 첫 공개…'산다는 슬픔' 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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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토지' 작가의 마지막 언어…인간 박경리의 내면 기록

    다산북스 제공다산북스 제공
    창가에 앉아
    해 지는 것을 보며 문득
    먹물 같은 안개가
    내 속에 스며드는 것을 느낀다
    아득한 날들이
    소리 죽이며 다가온다
    그리고
    내 옆을 스쳐 지나간다
    한없이 지나간다

    -'어둠을 기다리며' 중에서

    한국 문학을 대표하는 거장 박경리의 미공개 유고 시를 담은 시집 '산다는 슬픔'이 출간됐다.

    이번 시집은 박경리 탄생 100주년을 기념해 토지문화재단이 소장해온 자료 가운데 미발표 시 47편을 선별해 처음 공개한 작품이다. 대하소설 '토지'로 널리 알려진 작가의 또 다른 문학 세계, '시인 박경리'를 조명한다는 점에서 의미를 더한다.

    박경리는 소설가로서의 명성에 가려져 있지만, 생애 동안 약 200편에 가까운 시를 남긴 시인이기도 하다. 실제로 그의 첫 발표작은 1954년 발표한 시 '바다와 하늘'로, 문학의 시작과 끝이 모두 '시'였다는 점에서 이번 시집은 그의 문학 세계를 이해하는 중요한 단서로 평가된다.

    '산다는 슬픔'에 수록된 시편들은 원주에서 '토지' 5부를 집필하던 시기에 작성된 것으로, 문단의 평가나 독자의 시선을 의식하지 않은 사적인 기록에 가깝다. 시대와 역사, 가족, 고통과 생명에 대한 성찰이 담담하면서도 밀도 있게 담겨 있다.

    시집은 거대한 서사를 구축해온 작가의 언어가 개인의 삶으로 수렴되는 과정을 보여준다. 삶을 돌아보며 토해내듯 기록한 고백과 일상의 단상, 시대를 향한 분노와 체념, 그리고 스쳐간 기억들이 시편 곳곳에 스며 있다.

    대표적으로 '발걸음'에서는 "내 청춘이 걸어가고 있다"는 문장을 통해 지나간 시간에 대한 응시를, '어둠을 기다리며'에서는 "먹물 같은 안개가 내 속에 스며든다"는 표현으로 내면의 고요한 침잠을 드러낸다. '문학'에서는 삶과 예술을 관통하는 사유를 압축적으로 보여준다.

    이번 시집에는 일부 육필 원고도 함께 수록됐다. 작가 특유의 향토어와 구어체, 문장의 호흡을 그대로 확인할 수 있어 집필 당시의 감정과 리듬을 보다 생생하게 전달한다.

    토지문화재단 김세희 이사장은 "할머니가 오로지 자신을 위해 써 내려간 글들을 보며 그가 감당해온 슬픔과 고통의 깊이를 느꼈다"고 밝혔다.

    '산다는 슬픔'은 '위대한 작가'가 아닌 한 인간으로서의 박경리를 마주하게 하는 기록이다. 오랜 시간 축적된 삶의 무게와 감정이 응축된 이 시집은, 그의 문학 세계를 다시 읽게 하는 또 하나의 창으로 기능한다.

    박경리 지음 | 다산책방 | 10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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