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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민감해야 민주주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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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시론/칼럼

    [칼럼]민감해야 민주주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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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비상계엄 선포 당시 경찰이 국회 출입문을 통제하고 있다. 연합뉴스비상계엄 선포 당시 경찰이 국회 출입문을 통제하고 있다. 연합뉴스
    '민감성'은 교육학과 정치학 등에서 널리 쓰이는 개념이다. 변화를 인식하고 평가해 이에 걸맞게 대응하는 인지적 능력이라고 볼 수 있다. 교육학에서는 '교사'나 '부모'의 민감성이 중요하게 다뤄진다. 학생이나 자녀에게 어떤 변화가 일어나고 있는지 이들이 알아채지 못하면, 즉 민감성이 낮으면 올바른 교육과 양육을 할 수 없다. 정치학에서는 정부나 정치인들이 국민들의 요구나 외부 변화를 제때 인식해 이에 걸맞게 제도를 바꾸어 내면 민감성 내지 반응성이 높다고 말한다.
     
    2024년 12월 3일 밤 대한민국에 민주주의 민감성은 있었는가?
     
    있기는 있었다. 수많은 국민들은 매우 높은 민주주의 민감성을 갖고 있었다. 윤석열의 비상계엄이 반민주적임을 한눈에 인식하고 계엄 저지를 위해 국회 앞으로 모였다. 우리 국민들은 윤석열의 비상계엄이 법 조문에 맞는지를 따져 보고 행동에 나선 것이 아니었다. 윤의 계엄이 시대착오적이고 반민주적임을 본능적으로 인식하고 있었다. 무엇이 민주적이고 반민주적인지를 한눈에 알아볼 수 있는 높은 민주주의 민감성을 갖고 있었다. 현장에 출동한 일부 군인들과 경찰도 이런 민주주의 민감성을 발현해 '소극적 대응'으로 유혈 참사를 막았다.
     
    반면 일부 정치인들과 고위 관료는 그날 밤 우왕좌왕했다. 당시 여당인 국민의힘은 계엄을 막아야 하는지  막지 말아야 하는지 헷갈려 했다. 추경호 당시 원내대표는 의원들 집결 장소를 세 번씩이나 바꿔가며 오락가락했다. 계엄 해제 결의안 국회 표결에도 나서지 않았다. 소속 의원 108명 가운데 불과 18명만이 표결에 개별적으로 참여했을 뿐이다. 개혁신당 등 다른 정당들이 적극적으로 표결에 나선 것과는 대조적이었다. 국민의힘은 '표결을 방해하려 했던 사실은 없다'는 입장이지만 그렇다고 표결을 적극 독려하지도 않았다. 그날 밤 국민의힘의 민주주의 민감성은 낮았다.
     
    류영주 기자류영주 기자
    윤석열의 고위 공직자들도 민주주의 민감성이 낮았다. 대표적 인사가 박성재 당시 법무부장관이다. 그는 자신의 내란 관련 재판에서 시종일관 '계엄령 선포 당시에는 위헌위법인지 몰랐다'고 주장했다. 법무부로 돌아와 법 조문 등을 찾아보고 나서야 계엄의 위법성을 알았다며 '법률가 출신들도 계엄 관련 헌법 조항을 매일 들여다 보지는 않기 때문'이라고 변명했다. 법 조문을 봐야만 윤석열의 계엄이 옳고 그른지를 알 수 있었다는 말이다. 국회 앞 시민들만도 못한 처참한 수준의 민주주의 민감성이다. 당시 권력 서열 2위인 한덕수 전 총리 수준도 더하면 더햇지 덜하지는 않을게다.
     
    계엄 1년 반이 지난 현재 국민의힘의 민주주의 민감성은 높아졌나? 여전히 낮은 수준이다. 6월 지방선거 공천자들의 면면을 보면 알 수 있다. 윤석열 탄핵 국면에서 '대통령은 반드시 돌아온다'며 '윤 어게인'을 주장했던 인사들이 공천을 받았다. 용산 대통령실로 몰려가 세배를 했던 인사도 공천명단에 들었다. 윤석열 계엄은 내란이 아니라며 사실상 내란을 옹호했던 인사들 역시 이번 선거에 나선다.
     
    국민의힘의 낮은 민주주의 민감성은 최근의 개헌 논의에서 다시 한번 드러나고 있다. 국민의힘을 제외한 여야 6당이 발의한 '계엄 요건 강화 개헌안' 표결을 국민의힘은 집요하게 반대했다. 대통령이 계엄을 선포하더라도 국회의 승인을 받아야 하고 승인을 받지 못하거나 48시간 안에 국회 표결이 없으면 계엄 효력을 잃게 하는 내용이다. 윤의 계엄 선포 이후 국회의 해제 표결과 정부의 해제 발표 사이 온 국민이 가슴을 졸이며 '제2의 계엄' 우려에 뜬눈으로 밤을 샜던 기억을 간직하고 있다면 당연히 찬성표를 던질 개헌안이다. 그럼에도 국민의힘은 7일에는 표결에 불참했고 8일에는 필리버스터 위협으로 개헌안 상정을 무산시켰다.
     
    국민의힘은 개헌을 하려면 권력구조 개편 문제도 다뤄야 한다고 말한다. 하지만 권력구조 개편 문제는 당리당략과 직결되는 주제여서 결론을 내리지 못할 가능성이 크다. 합의를 한다고 해도 수 년이 걸린다. 그 사이 윤석열 같은 괴물이 또 나와 반민주적이고 시대착오적인 계엄을 다시 하지 않으리라는 보장이 없다. 12월 3일 그날 밤에도 계엄령이 떨어질 것이라고 누가 생각이나 했는가? 그날 이후 국민들에게는 계엄 공포가 크게 자리잡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개헌을 반대하는 것은 결과적으로 계엄을 옹호하는 행위다. 더구나 국민의힘 일각에서는 '국회 해산권' 등 국회 견제 장치도 논의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번 내란 계엄 과정에서 우리 국민들은 국회라는 존재가 민주주의 유지 발전에 얼마나 소중한지를 몸소 경험했다. 그런 국회를 1987년 이전의 상황으로 되돌리려 한다는 것은 그 자체로 반민주적이다.

    본회의 퇴장하는 국민의힘. 연합뉴스본회의 퇴장하는 국민의힘. 연합뉴스
    민주 대의제에서 국민을 대리하는 정치인들이 국민들보다 항상 민주주의에 민감하지는 않다. 일부 지지세력에만 의지하거나 당리당략에 얽매이게 되면 오히려 일반 국민만도 못한 민주주의 민감성을 갖게 된다. 민주 대의제의 구조적 결함이다. 그럼에도 우리가 민주 대의제를 채택하는 이유는 견제와 감시가 제도적으로 보장되기 때문이다. 민주주의 민감성이 낮은 정치세력들을 부단히 걸러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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