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진환 기자성과급 지급 방식을 둘러싸고 평행선을 그려왔던 삼성전자 노사가 노동조합이 예고한 파업일을 열흘 앞두고 11일부터 이틀 간 정부 권유로 마련된 테이블에 앉아 막판 접점 찾기에 돌입한다.
인공지능(AI) 확산으로 한국 경제의 주요 성장 축인 메모리 반도체 산업이 삼성전자를 중심으로 전례 없는 기회를 맞이한 가운데, 파업으로 인한 생산 차질이 최대 위기 요인으로 부각된 터라 이번 협상에 국민적 관심이 쏠리고 있다.
정부 테이블서 파업 앞두고 막판 협의
삼성전자 노사는 이날부터 이틀 간 중앙노동위원회(중노위) 공익위원 참석 하에 협의 테이블에 앉는다. 해당 1차 사후조정회의는 세종시 중노위 제1조정회의실에서 오전 10시부터 진행된다. 이번 사안이 중대하다고 판단한 정부가 사후조정을 권유하고, 노사가 이에 응한 데 따른 것이다. 사후조정이란 이미 조정이 종료된 사안과 관련해 중노위가 재조정을 실시하는 절차다.
현안인 성과급 지급 문제는 중노위 차원에서 지난 3월에 이미 '조정 중지' 결론이 난 사안이지만, 노사가 사후조정에 동의하면서 이번에 어렵게 협상 테이블이 다시 마련됐다. 고용노동부 장관 소속 기관인 중노위의 위원이 양측의 의견을 청취해 접점을 찾게 되며, 필요 시 권고안 성격의 조정안을 낼 수 있다.
노사간 협의 시도는 작년 11월부터 이어져왔지만, 반년째 답을 찾지 못할 정도로 간극이 크다. 메모리 반도체 경쟁사인 SK하이닉스가 영업이익의 10%를 성과급으로 상한 없이 지급하기로 고정하자 삼성전자의 반도체 담당인 DS부문 조합원이 다수를 점하고 있는 최대 노조 초기업노조도 영업이익의 15%를 상한 없이 지급하는 걸 제도화하라고 요구 중이다. 올해 예상 영업이익 300조 원에 해당 요구를 적용하면 사실상 45조 원을 성과급으로 달라는 주장이다.
이에 사측은 공격적인 시설·연구개발(R&D) 투자가 곧 경쟁력인 반도체 사업 특성과 고비용 구조 고착화 우려 등을 들어 제도화에 난색을 표했다. 대신 SK하이닉스 수준의 지급률 약속 등을 포함한 DS부문 특별포상안 등을 제시했지만, 노조는 이를 거부하며 오는 21일부터 6월 7일까지 총파업을 진행하겠다고 예고해왔다. 초기업노조는 사후조정에 임하면서도 "조합원이 만족할 만한 결과가 나오지 않는다면 망설임 없이 총파업에 나설 것"이라고 밝혔다.
韓 메모리 반도체 산업 순항 지속 여부 좌우
파업이 임박한 시점에서 가까스로 재개된 이번 막판 협상은 AI 시대를 맞아 글로벌 수요가 한꺼번에 쏠리고 있는 한국 메모리 반도체 산업의 순항 여부를 좌우할 수 있다는 점에서 주목도가 높다. 앞서 삼성전자는 연결 기준 올해 1분기 매출 133조 9천억 원, 영업이익 57조 2천억 원이라는 한국 기업 역사상 역대 최대 분기 실적을 달성했다. DS부문의 영업이익만 53조 7천억 원으로, 반도체 사업의 영업이익이 전체의 94%를 차지했다. 작년 국가 본예산(673.3조 원)의 약 8%에 달하는 천문학적 액수다.
시장에서는 AI 메모리 반도체 품귀 현상 속에서 삼성전자의 내년 연간 영업이익이 500조 원에 육박하며 글로벌 영업이익 1위 기업으로 도약할 것이라는 장밋빛 전망도 나오고 있다. 이처럼 세계적 시선이 쏠린 상황에서 '반도체 파업'이 현실화되면 그 후폭풍도 상당할 것이라는 시각이 많다.
당장 노조도 파업 시 반도체 생산 차질로 최대 30조 원의 손실이 발생할 것이라는 '반도체 타격론'을 앞세운 가운데, 업계에서는 그 파장이 더 클 것으로 보고 있다. 한 전문가는 "생산 차질로 인한 손실은 당연한 것이고, 글로벌 업계에서 삼성전자에 대한 신뢰도도 저하될 수밖에 없다. 장기적인 매출에도 영향을 받게 된다는 것"이라고 짚었다. 협력사들과 지역 경제에 미칠 타격도 막대할 것이라는 우려의 목소리도 있다. 삼성전자의 1차 협력회사는 1천개사가 넘고, 2.3차 협력사는 700개사에 육박하는 것으로 파악됐다.
연합뉴스정부가 협상 테이블 마련을 위해 직접 나선 배경에도 국가 경제적 타격 우려가 깔려 있다는 분석이다. 김정관 산업통상부 장관은 지난 달 "삼성전자 파업은 상상조차 힘든 일"이라고 했고, 김영훈 고용노동부 장관도 지난 7일 "삼성전자의 임금 교섭 과정에서 많은 국민들께서 걱정 어린 시선을 보내고 있다"고 언급했다. 노동자의 '책임'을 강조한 이재명 대통령의 최근 메시지도 사실상 삼성전자 노조를 향한 견제구로 풀이됐다.
이번 사후조정 과정에서는 노조 내부의 이견도 변수로 꼽힌다. 노조가 꾸린 공동투쟁본부는 당초 초기업노조 삼성전자 지부, 전국삼성전자노동조합(전삼노), 삼성전자노조동행(동행노조) 등 3개 주체로 구성됐는데, 완성품 담당인 DX부문 구성원이 과반인 동행노조는 현재 공동 교섭단에서 이탈한 상태다. 최대 노조인 초기업노조가 DS부문 중심의 성과급 요구를 하면서 DX부문은 상대적으로 소외되고 있다는 판단에 따른 이탈이다.
이후 동행노조는 영업이익의 최소 1% 이상을 공동재원으로 활용해 부문별 차등없이 배분하는 방안을 초기업노조에 공식 요구했지만, 초기업노조는 "현 상황에서 안건을 추가하는 건 사측에 불성실 교섭의 빌미를 제공할 수 있다"고 사실상 선을 그었다. 초기업노조는 대신 "2027년 임금교섭에서 전사 차원의 이익 분배에 대해 심도 있는 의견 수렴을 진행할 예정"이라고 설득 메시지를 내놨지만, 동행노조 뿐 아니라 전삼노에서도 안건 추가 요구가 나왔던 만큼 이견이 진화될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한편 사측은 파업 시 돌이킬 수 없는 손실이 발생할 수 있다고 보고 법원에 '위법 쟁의행위 금지 가처분'도 앞서 신청한 상태다. 법원은 가처분 신청의 인용 여부를 13일 2차 심문기일을 거쳐 오는 20일까지는 내놓을 예정이다. 재판부가 삼성 반도체 생산 주요 시설을 공익상 중요한 시설이자 안전보호시설로 볼 것인지에 따라 판단이 갈릴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