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청원홈페이지 캡처"선생님들이 안심하고 학생들을 인솔할 수 있어야 학생들도 더 안전하고 의미 있는 체험학습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지난 2일 국민청원 게시판에 이른바 '선생님보호법'을 제정해달라는 청원이 등장했다. 청원자는 스스로를 학
생이라고 소개했다.
그는 "저는 학생으로서 학교에서 진행되는 수학여행과 현장체험학습을 매우 중요하고 의미 있는 교육 활동이라고 생각한다"며 "친구들과 함께 새로운 장소를 경험하고 배우는 과정은 교실 수업과는 다른 큰 배움이 된다"고 적었다.
이어 "하지만 최근에는 이런 현장체험학습을 인솔하는 선생님들이 사고 발생 시 과도한 책임을 지게 된다는 이야기를 접하면서 걱정이 커졌다"며 "학생들의 안전을 위해 최선을 다하더라도, 작은 사고까지 교사 개인의 법적 책임으로 이어질 수 있다면 앞으로 학교에서 이런 활동이 줄어들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결국 피해를 보는 것은 학생들"이라며 "학생들의 배움의 기회를 지키기 위해 제도 개선을 요청한다. 명확하게 선생님의 책임이 없으신 경우 선생님을 보호하고 선생님께 피해가 가지 않도록 하는 제도 개선이 이뤄질 것을 부탁한다"고 호소했다.
학생들 "추억 지켜주세요"…학부모·교사는 '글쎄'
AI 생성 이미지수도권의 한 초등학교에 재학 중인 A(13)양은 "수학여행이 너무 가고 싶은데 선생님들이 힘들어져 못 가게 될까봐 무섭다"며 "꼭 친구들이랑 수학여행에 가서 좋은 추억을 쌓고 싶다"고 말했다. 또 서울의 한 중학교에 재학 중인 B(15)군도 "초등학교 때도 수학여행을 못 갔는데 중학교 때도 못 가면 너무 아쉬울 것 같다"며"학창시절의 추억을 지켜달라"고 말했다.
반면 학부모와 교사들의 반응은 사뭇 달랐다. 수학여행을 원하는 학생들과 달리 학부모들은 안전 문제 등을 고려하면 수학여행을 가지 않아도 큰 문제가 없다는 입장인 반면, 교사들은 인솔과 안전관리 부담을 호소했다.
초등학생 자녀를 둔 김모(45)씨는 "어차피 수학여행을 가지 않더라도 부모 입장에서 큰 차이는 없다"며 "안전 문제를 생각하면 안 가는 게 나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또 중학생 자녀를 둔 이모(43)씨도 "아이들 입장에서는 아쉬울 수 있지만, 따로 친구들과 여행을 보내줄 수도 있고 여러 방법이 있기 때문에 수학여행을 안 가는 것에 대해 크게 반대하지는 않는다"고 말했다.
서울의 한 중학교 교사 A씨는 "아이들에게 교육 활동이 중요한 건 인지하고 있지만 교사 개인 입장에서는 교육활동보다 리스크 관리가 더 무섭다"며 "실질적인 대책이 마련됐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초등학교 교사 B씨는 "학생이 개인적으로 돌발행동을 해도 결국 인솔교사 책임으로 귀결되는 분위기"라며 "대책이 마련된다 해도 의미 있는 보호가 될지는 의문"이라고 했다.
전국교직원노동조합(전교조), 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 교사노동조합연맹 등 교원단체들은 학교안전법 개정을 통해 교사의 고의나 중과실이 없는 경우 형사처벌을 면제하거나 감경할 수 있는 근거를 마련해야 한다고 촉구하고 있다. 또 사고 발생 시 소송 대상을 교사 개인이 아닌 국가나 교육청으로 일원화해야 한다고 요구하고 있다.
지난 8일 교육부 주관으로 열린 '안전한 현장체험학습을 위한 교육공동체 간담회'에서는 한 초등학교 교사가 체험학습 때마다 민원을 받는다며 "현장체험학습을 강제하지 말아달라. 우리가 스스로 갈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달라"고 호소하기도 했다.
"수학여행, AI 시대에 가장 중요한 경험 중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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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교조가 지난달 21일 발표한 2026 현장체험학슴 실태조사(교사 789명 설문)에 따르면, 수학여행과 수련회와 같은 숙박형 체험학습이 전체의 53.4% 정도만 이뤄졌다. 해당 설문에 참여한 인원 중 80%가 넘는 교사들이 "교사 개인이 형사책임까지 질 수 있다는 불안감을 느끼고 있다", "체험학습 운영을 위한 행정 업무가 지나치게 과중하다"는 문항에 동의했다.
다만 전문가들은 수학여행이 학생들에게 갖는 교육적 의미가 여느 때보다 중요한 시기라고 강조했다. 광주교대 교육학과 박남기 명예교수는 "AI 시대에 학생들에게 현장체험학습은 가장 중요한 활동 중 하나"라며 "SNS 등 가상 현실에서 살고 있는 아이들이 현실에서 대화하고 소통하면서 생기는 갈등을 해결하고, 현실에서 어려움에 닥쳤을 때 그걸 이겨내는 등 전반적인 소통 능력을 기를 흔치 않은 기회"라고 말했다.
또 현장체험학습이 사라질 경우 가정 간 경제 수준에 따른 경험 격차가 더 커질 수 있다고 우려했다. 박 교수는 "앞서 말한 것들을 할 수 있는 가장 좋은 활동이 집단 스포츠나 단체 활동 등이다"라면서 "여유가 있는 학부모들은 주말에 따로 학원을 다니게 하는 등 할 수 있지만, 학교가 안 해주면 그걸 감당하기 어려운 가정의 아이들은 경험에 있어 격차가 생기게 된다"고 설명했다.
숙명여대 교육학부 송기창 명예교수는 "학생들에게는 보통 교실에서 한 활동보다 수학여행에서 한 활동이 나중에 더 기억에 남고 자양분이 될 가능성이 높다"면서 "교실에서 배우기 어려운 것들을 가서 보고 배울 뿐 아니라 향후 살아가는 데 너무나 큰 교육적 의미를 가진다"고 설명했다.
고려대 교육학과 교육학과 홍후조 교수는 "자연 속에서 배울 수 있는 게 굉장히 많은데 현장체험학습을 보내질 않고 있으니 점점 교실이 사육을 하는 양식장이 되고 있다"면서 "안전 사고로 인해 발생하는 교사에 대한 책임을 줄여주는 등 보완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