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8일 전주시 서신동 주민센터에서 고유가지원금을 신청한 주민이 선불카드를 받고 있다. 기사와 직접적인 관계 없음. 심동훈 기자"뭘 신청하라는 말인지 언제 어디로 가야 하는지 몰라 어려웠어요."
'고유가 피해지원금 신청대상자입니다'라는 알림을 받은 박모(30대·서울 거주)씨는 패닉에 빠졌다. 발달장애인인 자신이 무엇을, 어떻게, 어디서 신청해야 하는지를 전혀 알 수 없었기 때문이다.
중동전쟁의 여파로 고유가 등 고충을 겪는 국민에게 10~60만 원을 지급하는 고유가 피해지원금 신청이 이어지는 가운데, 발달장애인들은 비장애인 중심의 신청 구조 속에서 원활한 지원급 수령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것으로 파악됐다.
발달장애인의 지원금 신청…가장 먼저 마주하는 '용어'의 벽
A은행이 모바일 메신저로 보낸 고유가 피해지원금 신청 안내. 발달장애인들은 안내만 보고서는 고유가 피해지원금이 무엇인지, 어떻게 어디로 가서 신청해야 하는지 알 수 없다. 심동훈 기자박씨는 지난 21일 CBS노컷뉴스와의 인터뷰에서 "이번에 고유가 지원금 신청하라는 알림이 왔는데 어떤 내용인지 전혀 이해할 수 없었다"며 "쉬운 말로 안내해주지도 않아 주변의 도움 없이는 (지원금을) 못 받았을 것이다"고 말했다.
"쉬운 안내가 없었다"는 박씨의 말은 인지 기능이 낮은 발달장애인에게 '용어'란 벽이 얼마나 높은지를 의미한다.
비장애인은 '고유가 피해지원금'이란 용어를 '높은 기름값으로 인해 고충을 겪는 국민에게 국가가 지급하는 현금성 지원금'이라고 유추하지만, 발달장애인에게는 쉽지 않은 일이다.
박씨는 "고유가 피해지원금이란 게 무슨 뜻인지, 대상자라는 단어가 누굴 말하는 건지 이해하기 어려웠다"며 "발달장애인인 내가 뭘 해야 하는지, 어디서 어떻게 신청해야 하는지 전혀 알 수 없었다"며 당시의 감정을 묘사했다.
그가 겪은 어려움을 두고 정윤화 전주대학교 작업치료학과 교수는 "발달장애인의 입장에서 '고유가 피해지원금 신청 대상입니다'는 문장은 '고유가' '피해' '지원금' 등 여러 개념을 한 번에 이해해야 하는 매우 추상적인 문장이다"라며 "현행 안내 문구는 발달장애인에겐 문장의 의미 자체가 전달되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발달장애인에게는 구체적이고 직접적인 표현과 짧은 문장, 그림 등 시각적 단서의 도움이 필요한데 현재의 행정 안내는 스스로 추론하도록 요구하는 방식이다"며 "발달장애인에게 필요한 것은 단순한 정보 제공보다 실제로 이해할 수 있는지 여부가 중요하다"고 밝혔다.
'신청·사용·잔액 확인' 도움 없인 무리…"촘촘한 제도 갖춰야"
행정안전부가 안내하는 고유가 피해지원금 제도 개요. 발달장애인들은 이해하기 어려운 용어가 가득하다. 행정안전부 홈페이지 갈무리간신히 '용어'란 벽을 넘은 발달장애인을 기다리는 건 '신청 방법'과 '불친절한 안내'라는 장애물이다.
온라인 웹사이트나 모바일 앱을 통한 비대면 신청이 어려워 선불카드가 지급되는 주민센터를 찾아야 하는 발달장애인들은 현행 제도에선 자신이 언제, 어디로 가야 하는지를 알 수 없어 반드시 보호자나 조력자의 도움이 필요하다.
박씨는 "출생연도 뒷자리가 홀수인지 짝수인지에 따라 찾아오라는데 그게 무슨 말인지 몰랐고, 활동을 지원해주는 보호자가 있어 겨우 신청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활동보조인이나 가족 등 조력자의 도움을 받아 신청을 하고 나서도 사용방법이나 잔액 확인 등에 어려움을 겪기도 한다.
박씨는 "주민센터에서도 카드 발급만 해주고 사용방법 등을 안내해주지 않아 주거 코디에 의지해 자세한 설명을 들었어야 했다"며 "주민센터에서 카드발급과 함께 발달장애인의 특성을 고려해 느리면서도 자세한 설명을 해줘야 한다"고 말했다.
잔액확인에 있어 겪는 어려움도 있다. 박씨는 "한 달 예산을 늘 신경쓰는 사람에겐 지원금을 얼마나 썼고, 얼마가 남았는지를 늘 확인해야 하는데 영수증으로만 확인하기엔 한계가 있다"며 "늘 비장애인에게 잔액을 확인해달라 요청해야 하는데 잔액을 문자로 바로 보내주는 시스템이 있으면 혼자서도 할 수 있을 것 같다"고 했다.
그러면서 "모든 발달장애인들이 24시간 활동지원가의 도움을 받을 수 있는 현실이 아닌데, 조력자도 없고 가족도 없는 발달장애인도 쉽게 지원받을 수 있도록 촘촘한 제도 설계가 필요하다"고 했다.
"발달장애인 특성 이해한 제도 설계" 전문가 한목소리
2차고유가지원금 첫 신청일인 지난 5월 18일, 효자5동 주민센터에서 한 시민이 고유가지원금을 신청하고 있다. 기사와 직접적인 관계 없음. 심동훈 기자
박씨의 사례를 접한 전문가들은 "모든 사람이 보장받아야 하는 당연한 권리에 있어 장애인도 함께할 수 있는 쪽으로 제도가 개선돼야 한다"고 말했다.
인천 연수구에서 뇌병변 장애를 가진 이들을 돕는 이경민 장애인 활동지원가는 "장애인 중엔 신체 장애인처럼 몸을 움직이기 힘들거나 발달장애인처럼 혼자서 신청이 어려운 사람 등 다양한 유형이 존재한다"며 "장애 등록이 된 장애인들의 유형에 따라 발달장애인에겐 그림이 그려진 쉬운 안내서를 지급하거나 신체장애인에겐 방문 설명을 하는 등 지급 대상이 가진 장애의 유형에 따라 신청 방식이 달라야 한다"고 설명했다.
김영웅 한국장애인식개선교육원 원장은 다양한 자료 제공과 더불어 담당 공무원의 인식 개선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김 원장은 "각 지자체에 복지제도에 있어 장애인들의 특성을 고려하라는 매뉴얼이 있는데 제도 설계 과정에서 매뉴얼을 고려하지 않는 것도 큰 문제다"며 "제도를 주관하는 공무원에게 장애인식개선 교육을 충실히 해 원칙을 제도 설계 과정에 반영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정윤화 교수도 "담당 공무원들이 발달장애인의 정보 이해 특성과 감각 특성, 의사소통 방식을 함께 이해할 필요가 있다"며 "발달장애인에 대한 충분한 이해를 배경으로 제도를 설계한다면 단순히 정보 제공을 반복하는 것을 떠나 발달장애인의 실질 서비스 접근성을 높일 수 있을 것이다"며 김 원장의 의견에 힘을 보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