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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벌 솜방망이 처벌 반복…"오너 리스크 크다"

법조

    재벌 솜방망이 처벌 반복…"오너 리스크 크다"

    • 2012-02-14 07:39
    횡령ㆍ배임을 비롯한 범죄를 저지른 재벌총수들에 대한 관대한 처벌은 한국 사회에서 `유전무죄 무전유죄''가 여전히 통용되고 있음을 분명하게 보여준다.

    법치주의 정착과 투명한 사회를 만들기 위해서는 재벌 범죄에 대한 엄정한 처벌이 이뤄져야 한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재벌 총수 `솜방망이 처벌'' 일상화

    대기업 총수들은 법원에서 검찰의 구형보다 대폭 낮아진 판결을 대체로 받는다.형량이 확정되지만 집행유예에 그치고 머지않아 사면되는 과정이 되풀이된다. 매번 `봐주기 판결''이라는 비판을 받지만 `경제 살리기''라는 명분으로 관대한 처벌이 반복됐다.

    1990년 이후 자산기준 10대 재벌 총수 중 현직 총수로서 형을 선고받은 7명 중 실형을 산 사람은 한 명도 없다. 그리고 한 차례의 예외 없이 사면받았다.

    법원은 경제사범에 대해서는 대체로 관대하다는 지적이 많다.

    경제개혁연대는 국내 법원이 기업인 범죄에 집행유예를 선고하는 비율이 일반사범보다 월등히 높다는 보고서를 발표한 바 있다. 2000년부터 2007년 상반기까지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상 횡령 및 배임 혐의로 재판받은 기업 지배주주와 임원 등에 대한 판결 중 언론에 보도된 피고인 150명을 조사한 결과다. 이 보고서에 따르면 횡령ㆍ배임 혐의로 기소된 사범 149명 가운데 71.1%인 106명이 1심에서 집행유예를 선고받았다.

    이 집행유예 비율은 상당히 높은 것이다. 2000∼2005년 대법원 사법연감 통계에따르면 강ㆍ절도 사범의 집행유예 선고비율은 47.6%였다.

    사면에서도 특혜 논란이 끊이지 않는다. 대기업 총수들에 대한 사면ㆍ복권은 형확정 후 몇 개월 안에 일사천리로 예외없이 진행됐다.

    2009년 말과 2010년 대통령 특별사면ㆍ복권 대상자에 포함된 대기업 관련자 15명 가운데 실제 수감생활을 한 사람은 3명에 불과했다. 나머지 12명은 하루도 복역하지 않았다.

    형이 확정된 날부터 사면까지 걸린 기간은 1년2개월에 불과했다. 15명 중 6명(40%)이 형 확정일로부터 1년 이내에 사면됐다.

    앞서 2008년 광복절 사면 당시 대기업 관련 사면대상자 40명의 1인당 평균 복역일수는 128일에 불과했다. 이들이 확정판결을 받고 사면되기까지 걸린 시간은 1인당평균 1년4개월여에 불과했다. 만 6개월 이내에 사면된 경우는 39.0%, 만 1년 이내는58.5%에 달했다. 경제개혁연대는 "이런 현상은 결국 `유전무죄 무전유죄''의 근거이자 사법불신의원인"이라고 비판했다.

    ◇후진적 기업지배구조…`오너 리스크'' 심각

    재벌 총수와 대기업 경영진에 대한 관용은 한국 사법부의 후진성을 보여주는 단면이다. 재벌 총수들의 배임ㆍ횡령 등 범법 행위는 `코리아 디스카운트''의 원인이자투자자들에게 손해를 끼칠 수 있는 위험 요인이기도 하다.

    영국의 경제 주간지 이코노미스트는 지난 11일 발간한 최근호에서 한국 증시가 저평가된 가장 큰 원인은 재벌의 후진적 지배구조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이코노미스트는 코스피의 주가수익비율(PER) 전망치가 10배를 밑돌아 아시아 주요 국가 중 가장 낮은 이유로 오너 일가 중심의 경영을 꼽았다. 한국 재벌은 불법적인 경영권 승계와 세금 탈루, 사업기회 유용 등으로 주주들의 이익을 훼손할 가능성이 크다고 이 잡지는 주장했다.

    이 잡지는 낙후된 기업 지배구조에도 불구하고 한국 재벌이 성공 가도를 달리고있어 오너 일가의 경영을 옹호하는 주장도 있다고 전했다. 그러나 소액주주들에게도지배구조에 따른 불안감을 느끼지 않을 권리가 있다고 지적했다.

    실제로 최근 김승연 한화 회장 등 임원들의 배임ㆍ횡령 혐의로 이 회사가 거래정지와 상장폐지 위기에 몰리자 투자자들을 불안에 떨어야 했다.

    좋은기업지배구조연구소 채이배 연구위원은 "재벌이 자기 이익을 위해 회사에 손실을 입힌다는 게 큰 문제다. 드러나지 않은 손실이 나올 수 있고 미래에도 같은 행위로 기업가치를 훼손할 가능성이 있다"고 분석했다.

    경원대 홍종학 교수는 "총수의 범죄 등으로 기업지배구조 자체가 바뀔 수 있는 상황이 되면 불확실성이 증폭될 것이다. 지금은 총수들이 죄를 저질러도 처벌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으니 시장이 크게 반응을 하지 않는데, 이는 한국의 기형적인 구조때문"이라고 지적했다.

    ◇엄격한 법 적용 절실ㆍ기관 역할 중요

    이런 문제를 해결하려면 법조계의 변화가 필요하다. 사법부가 관용적인 자세를 바꿔 더욱 엄격한 잣대를 들이대야 한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참여연대 사법감시센터 소장인 하태훈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재벌이 법과 불법의 경계에 서 있다. 경제 논리 등으로 불법 행위가 묵인되고 수사가 제대로 되지 않다 보니 재벌 범죄가 반복되고 있다. 지금부터라도 경제논리를 떠나 차별없이 처벌해야 한다"고 말했다.

    국민연금 등 기관투자자가 더 적극적으로 의결권을 행사하고 경영진의 범죄에 대한 주주대표소송도 활성화돼야 한다는 의견도 있다.

    채이배 연구위원은 "경영자가 불법행위로 취하는 이익과 적발시 감당해야 하는 책임을 저울질했을 때 기대 손실이 적으니 불법이 이뤄지는 것"이라며 "독립적인 이사회의 경영진 감시 등 내부 견제가 필요하다. 주주들은 문제있는 경영진을 해임시키는 등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우찬 KDI 국제정책대학원 교수는 "법원에서 재벌들의 범죄 문제가 해결되지 않으면 시장에서 역할을 해야 한다. 국민연금이 나서서 범법 행위자들의 등기이사 선임을 반대하는 등 의결권을 행사해야 한다. 여러 연기금과 자산운용사 등이 기관투자가 협의체를 만들어 가이드라인을 만들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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