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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

    용산상가, 동대문상가… 그 때가 좋았지

    [변상욱의 기자수첩] 용산 전자상가의 탄생과 몰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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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테마가 있는 고품격 뉴스, 세상을 더 크고 여유로운 시선으로 들여다보는 CBS <김현정의 뉴스쇼=""> ''기자수첩 시즌2''에서는 정의롭지 못한 것에 대한 날카로운 비판을 담았다. [편집자 주]

    25년 전인 1987년 7월1일, 서울 용산전자상가가 문을 열었다. 지금은 6개 전자전문상가에 6천여 개 점포들이 자리 잡고 있다. 한때 잘 나가던 이곳 상가들은 권리금이 몇 억 원 씩 붙어 거래되었지만 지금은 권리금이 없다.

    대한민국 전자산업을 대표하던 용산전자상가에는 문 닫는 점포들, 임대문의 안내 쪽지만 늘어가고 있다. 2000년쯤만 해도 연 매출 10조원에 이르는 아시아 최대 규모의 IT전문상가로 한국 IT산업의 발원지, 한국의 실리콘밸리로 불리던 곳인데 말이다.

    ◇조립 PC에서 게임방 열풍까지... 그 때가 좋았지

    1987년 7월에 청계천 세운상가에 몰려 있던 전자제품 점포들이 정부 시책에 따라 집단 이주하면서 문을 연 용산전자상가는 나진상가, 터미널 상가, 전자랜드, 전자타운 상가 등이 뒤를 이어 들어와 전자 유통밸리가 형성됐다.

    주력상품은 일본 대만에서 부품을 가져 와 조립한 뒤 값싸게 파는 PC. 삼성과 LG가 자리를 잡기 이전에 용산상가의 조립 PC로 우리나라 IT 시대가 열렸다. 1988년 인구 100명 당 1.12대 이던 PC가 1998년에 18대가 되었으니 용산상가가 대박을 터뜨릴 수밖에 없었다.

    값싼 PC가 있고 PC나 게임기, 프로그램에 대한 정보들이 몰려 있어 용산전자상가는 정보교류센터이자 실험실이자 젊은 IT 세대의 실습훈련장이었다. 소비자 입장에서도 빼곡히 들어찬 점포들을 돌며 싸고 마음에 드는 제품을 고를 수 있어 원스톱 서비스가 가능했다.

    그렇게 1990년 초부터 전성기를 누리다 2000년대 들어와 인터넷 쇼핑몰이 생겨 용산 원스톱 서비스는 안방에서 인터넷으로 대체되었다. 용산전자상가에 온 소비자가 인터넷에서 출력한 가격비교표를 내보이며 이만큼 싸야 한다고 할 때부터 쇠락의 조짐이 보이기 시작했다. 소비자는 냉정했다. 비싸고 불편하다는 것이다.

    용산 전자 상가 입장에서는 매장 임대료, 인테리어비, 인건비를 포함시켜 가격을 매길 수밖에 없지만 소비자는 비싼 게 비싼 것이다. 물론 용산 점포들도 인터넷 판매를 도입했다. 그러나 수많은 인터넷 쇼핑몰과 가격경쟁을 하다 보니 수익성은 좋지 않았다. 용산 퇴락은 그 후 대형 IT업체들이 시장을 장악하고, 인터넷 쇼핑몰로 손님이 몰리면서 본격화된다.

    대형 업체들이 기술도 있고 판매망도 갖고 있으니 따라 잡을 방법이 없었다. 거기에 정찰제가 없어 신뢰가 높아지지 않고 에프터 서비스의 미흡, 불법복제, 호객행위 등 여러 가지요인이 쇠락을 부채질했다. 물론 덤터기 씌우거나 호객하고 강매 분위기로 몰고 가는 이른바 ''용팔이''의 추억도 한 요인이 되었다. 시대가 바뀌고 소비자와 트렌드가 바뀌는데 쫓아가지 못하고 무너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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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또 IT 붐이 포화 상태에 이르면서 더 이상 PC 시장이 커지지 않은 것도 결정적 배경이다. 스마트 폰, 테블릿 PC는 시장이 커지고 용산상가가 주로 팔던 카메라, MP3, 노트북, 네비게이션 시장규모는 줄고 있어 회복할 동력도 부족했다. 마지막 호황은 전국에 PC방 창업 붐이 일면서 값싼 조립 PC가 대량 팔려 나가던 시절이었다.

    ◇살리고 살리고 살리고

    일본 도쿄 아키하바라의 예를 흔히 든다. 용산 전자상가보다 15년 쯤 먼저 대형전자상가로 앞서 나갔고 용산전자상가도 모델로 삼고 쫓아갔던 시장. 역시 시대 트렌드가 변하면서 무너지나 싶더니 각종 음악이나 코스프레 이벤트, 카페, 마니아 문화 등을 접목시켜 살아났다. 전자제품을 사러 가는 게 아니라 그냥 구경들 간다. 용산구청도 용산전자상가를 살려 보려 4월말부터 한 달 동안 매주 토요일 뮤직 콘서트를 열고 있다. 체질개선과 서비스 확대, 젊은 문화와의 접목 등이 남아 있는 방법일 것이다.

    시대에 적응 못하고 앞서가지 못하면 어떤 분야든 이제는 마찬가지. 지역의 중소 서점은 물론 대형 서점들까지 전국 규모 대형서점에 떠밀려 문을 닫는 것도 마찬가지이고 신문사가 조선·중앙·동아까지 앞이 안보여 울며 겨자 먹기로 방송에 진출해 종편채널을 만들었다가 엄청난 적자로 몰락만 재촉하고 있는 것도 같은 양상이다.

    국가적으로 시급한 쪽은 동대문 의류시장이다. 1980~1990년대 전성기를 지내고 이제 쇠락의 길로 접어들려 하고 있다. 15년 전 동대문 시장의 전성기 때 시장 전체 매출은 50조원에 이르렀지만 지금은 그 절반 수준. 한 두 평 짜리 작은 가게의 권리금이 10억 원 까지 올라갔다 최근엔 권리금이 없다. 빈 점포가 20%를 훨씬 넘기고 있다는 소식이다.

    소매시장은 몰락하고 있고 도매시장은 겨우 현상 유지를 하는 중이다. 이곳도 용산과 비슷하다. 대형 유통업체들이 시장을 장악해가며 전통 재래시장에 도매로 의류를 대던 동대문 시장도 타격을 받고 있다. 저가경쟁력을 갖춘 중국산 제품들도 밀려 들어왔다. 가장 타격을 입힌 건 2005년부터 번진 SPA 의류산업이다.

    SPA는 ''Specialty store retailer of Private label Apparel''의 약자이다. 과거에는 옷을 기획하는 업체, 만드는 업체, 유통시키는 업체, 판매점이 따로따로 였다. 그런데 SPA는 옷을 만든 회사가 자기네 상품을 유통판매까지 다 해버리는 방식이다. 기획부터 판매까지 효율적으로 처리하고, 대량생산으로 제조원가도 낮춰 수익성을 높이고, 유통 단계를 축소시켜 값도 가격경쟁력을 갖고, 유행을 앞서가며 빠르게 제품을 개발한다.

    ZARA, GAP, MANGO, MIXXO, SPAO, Uniqlo, H&M 등이 대표적 기업. 또한 동대문 특성상 카드 결제를 꺼리고 교환과 환불이 쉽지 않은 점도 소비자들이 꺼리는 이유이다. 동대문 의류시장의 회복이 급한 이유는 시장 쇠락과 함께 전문 인력도 사라지기 때문이다.

    기술자가 사라지면 다시 일으켜 세우기 어렵다. 아직은 최고의 기술력을 갖고 있으니 부활 가능성은 크다. 공동브랜드 육성과 정책지원에 정부가 적극 나서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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