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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어공화국''…희망까지 가난한 것인가

[김선경의 경제산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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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푸어(poor)'' 현상이 넘쳐나고 있다.

빈곤층을 의미하는 ''푸어''는 생애주기 단계별로 나타나고 있는데 취직 전에는 스펙푸어, 가까스로 일하기 시작하면 워킹푸어, 결혼할 때는 허니문푸어, 집이 있으면 하우스푸어, 집이 없으면 렌트푸어, 아이를 가지면 베이비푸어, 교육시킬 때는 에듀푸어, 의료비에 절절매는 메디푸어, 나이 들면 실버푸어로 분화되고 있다.

최근에는 은퇴 이후 퇴직금을 프랜차이즈 창업에 써버리고 가난해진다는 ''''프랜차이즈푸어''''라는 신조어까지 생겨났다.

따지고 보면 푸어가 아닌 사람들을 찾기 어려울 정도인데, 너도 푸어 나도 푸어 한마디로 모든 것이 푸어로 정의되는 푸어시대이다.

◈ 모두가 가난한 사회 ''푸어시대''

''푸어'' 현상이 처음 시작된 것은 ''하우스푸어''이다.

하우스 푸어는 부동산 가격 거품이 꺼지던 2010년 등장하면서 이때부터 각종 푸어가 나타나는 시발점이 됐다.

하우스푸어는 대출로 집을 사거나 늘린 뒤 집값 하락 속 이자 부담에 허덕이는 다수를 가리키는 말인데, 일반적으로 생활비의 30% 이상을 대출원리금을 갚는데 사용하는 가구를 지칭하나 기준을 넓히면 주택대출금이 얼마이든 생활에 부담을 느끼면 하우스푸어로 볼 수 있다.

김광수경제연구소 측은 지난 2010년 기준 하우스푸어의 수를 수도권에서만 95만 가구, 전국적으로 198만 가구로 추산하고 있다.

대부분이 2006년을 전후해 주택값이 정점으로 치달을 때 빚을 내어 집을 구입했던 사람이다.

하우스푸어는 다른 나라에서도 문제가 되고 있다. 상대적으로 심각한 미국의 경우를 보면 언더워터(Under water)라는 용어가 있는데 이는 주택의 가치가 주택을 사기위해 소요된 부채나 차입금에 못미치는 것을 의미한다.

2010년 기준으로 미국의 주택소유자 중 22%가 언더워터 상태에 놓여져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언더워터 상태일 경우 차압될 가능성이 높기 때문에 빚도 다 청산하지 못하고 집까지 잃을 가능성이 높다.

하우스푸어에 이어 ''렌트푸어''도 대거 발생하고 있다.

최근 집값은 떨어지면서 상대적으로 전셋값이 치솟고 있는데 렌트푸어는 전셋값 상승으로 주거 부담이 커진 전세자금 대출자들을 지칭하는 말이다.

지난 5월 말 기준 전세자금 대출금액은 22조 5천억 원으로 지난해 말보다 2조 3천억 원이나 증가한 상태다.

또 렌트푸어는 주거문제에만 국한되지 않고 소규모 자영업을 하는 사람들에까지 해당된다.

자그마한 점포에서 힘들여 일하지만 결국 소득의 상당수를 건물주에게 줘야하고 또 급격히 올라가기만 하는 임차비용을 감당하지 못해 가게마저 접어야 하는 경우도 많기 때문이다.

최근에는 ''에듀푸어''가 서민들의 공감을 사고 있다.

가계가 적자 상태이거나 부채가 있으면서도 평균 이상의 교육비를 지출하는 계층을 일컫는데, 현대경제연구원은 그 수가 82만 4천 가구에 이른다고 추산했다.

자녀교육만큼은 포기할 수 없다는 생각에 점점 부채의 늪으로 깊게 빠져들어가는 경우이다.

이러한 푸어 현상은 스펙푸어·베이비푸어·실버푸어 등으로 확산되고 있다. 낮은 스펙으로 취업에 어려움을 겪는 청년들, 출산 후 경제적 어려움에 처하는 젊은 부부, 퇴직 후 생계가 막막한 노인들을 각각 가리킨다.

따지고 보면 ''푸어''가 아닌 이들을 찾기 어려울 정도이다.

◈ 승자 독식과 양극화 심화가 낳은 필연?

푸어현상이 만연하는 원인은 결국 승자독식과 양극화 심화, 무한 경쟁으로만 치닫고 있는 우리사회의 병리현상 때문이다.

하우스푸어를 불러온 집에 대한 욕망을 나무랄 수는 없다. 가족과 함께 시간을 보낼 수 있는 내 집을 갖고 싶은 마음은 마찬가지일 것이다.

하지만 집에 대한 욕망 그 이면을 보면 남보다 뒤처지는 것 아닌가 하는 불안감과 혹시 집을 가지고 있으면 집값이 뛰지 않을까 하는 기대감이 뒤섞인 복잡한 감정이 있다.

또 취직하기 위해서는 빚을 내어 스펙을 쌓아야 하고 자녀들의 미래에 대한 희망을 포기할 수 없기 때문에 빚을 내어 사교육을 시켜야 하고 은퇴이후 재정자립을 위해 뭐든지 해야 하는데 그러다 보니 부작용이 발생하고 단계별로 푸어가 될 수밖에 없는 구조인 것이다.

최근 ''푸어공화국, 대한민국''이라는 평론을 쓴 정지은 씨의 얘기가 상당한 시사점을 준다.

정 씨는 "푸어현상을 처음에는 개별 현상들이라 생각했는데, 어느 순간 구조적 문제가 아닌가 생각됐다"며 "생애주기에 따라 거치는 관문마다 전락할 수 있는 위험이 상존하는 게 지금의 현실"이라고 밝혔다.

푸어현상을 해결하려다 보니 이른바 푸어계층들끼리의 충돌도 빚어지고 있다.

최근 금융권을 중심으로 하우스푸어 대책이 논의되고 있다. 시한폭탄과 같은 가계부채 문제의 핵심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같은 논의에 대해 렌트푸어들은 하우스푸어는 그나마 집이라도 가지고 있는 것 아니냐 우리 문제부터 해결해야 한다 이렇게 주장하고 있고 하우스 푸어는 하우스푸어대로 집을 통째로 넘겨봐야 빚도 청산하지 못하는데 무슨 소리냐 항변하고 있다.[BestNocut_R]

또 푸어현상 대책 마련하다 정작 지원이 시급한 빈곤층 대책은 소홀할 수 있는데 이는 어떻게 할거냐 하는 목소리도 높다.

각종 푸어 시리즈가 유행어처럼 번지는 것은 분명히 우리 사회가 잘못되고 있다는 심각한 경고이다.

현대경제연구원 조사에서 우리 국민 중 자신을 저소득층이라고 답한 비율이 50%에 이르고, 98%가 계층 상승이 어려울 것이란 비관적 답변을 했다는데 그리 놀랍지 않다.

너도나도 푸어를 외치는 ''푸어 열풍''이, 자칫 희망마저 저버리게 하는 ''희망푸어''의 양산으로 이어지지 않을까 심히 우려되는 시점이다.

현실을 살아가는 우리 마음만은 가난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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