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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계천에서 무거운 짐을 지고 구리박스를 들고 다니던 15살의 제 모습이 떠올랐다."
제69회 베니스국제영화제에서 영화 ''피에타''로 황금사자상을 수상한 김기덕 감독이 수상 당시 머릿속에 떠오른 사람은 바로 자신이었다고 말했다.
불우한 가정환경에 일찍부터 청계천, 구로공단 등에서 노동을 해야했던 그가 전세계 영화계가 인정한 거장의 반열에 올랐으니 감회가 남다를 수밖에 없을 것이다. 특히나 피에타의 무대가 바로 삶의 무게에 짓눌린 노동자들이 밀집해있는 청계천이 아니던가.
하지만 김 감독은 단상을 전했을 뿐 그보다는 한국관객과의 소통에 더 많은 관심을 표했다. 특히 그는 수상 이후 피에타의 스크린수가 늘었지만 여전히 교차상영이 이뤄지고 있는 현실에 안타까움을 표했다.
김 감독은 11일 서울 동대문 메가박스에서 열린 피에타 베니스국제영화제 황금사자상 수상 기념 기자회견에서 "이 상을 타오면 극장의 문이 낮아질 줄 알았다"며 "하지만 피에타가 상영되는 곳이 많지 않다. 스크린수는 늘었는데 퐁당퐁당(교차상영)이다보니 관수보다는 상영회차가 문제다"라고 지적했다.
이어 "저희 점유율이 45~65% 정도 되더라. 그 정도면 관을 늘리는 게 상도인 걸로 아는데 그렇지 않더라"라며 "일례로 ''도둑들''은 10%~15%인데도 기록을 위해 관을 안 빼고 있더라. 나는 그게 ''도둑들'' 아닌가 생각한다"고 꼬집었다.
"돈이 다가 아니지 않나. 1대1로 싸워서 지면 당당하게 지겠는데 그렇지 않지 않나. 무수한 편법과 독점, 마케팅 등 불리한 게임에서는 제가 아무리 착해도 화가 난다."
조민수와 이정진 두 배우도 교차상영에 내몰린 피에타의 현실을 지적했다. 조민수는 "보려고 해도 관이 없어서 못 봤다는 분들이 많다"며 "이 영화가 황금사자상을 왜 받았는지 영화를 봐야 평도 해줄텐데 그런 게 아쉽다"고 말했다.이정진 또한 "''피에타''가 큰일을 했는데 해외에서만 인기 있고 극장 수가 턱없이 부족한 걸로 알고 있다. 도와주셨으면 좋겠다"고 토로했다.
피에타는 이번 영화제에서 미국의 폴 토마스 앤더슨 감독의 ''더 마스터''와 치열한 경합을 펼쳤다. 이에 폐막식 이후 일부 미국 매체가 베니스영화제가 ''더 마스터''에게 더 많은 상을 주기 위해 피에타에게 황금사자상을 줬다고 보도했다. 황금사자상 수상작은 다른 부문 상을 받지 못한다는 영화제 규정 때문이다.
김 감독은 이에 "저희도 다른 부문에 후보가 있었다"며 "여우주연상뿐만 아니라 각본상의 유력후보였다"고 밝혔다. "폐막식 이후 파티에서 가장 먼저 거론한 게 여우주연상이었다. 모든 심사위원이 동의를 했는데 영화제 규정 때문에 줄 수가 없었다고 하더라. 심사위원장인 마이클 만 감독은 각본상 역시 주려고 했다고 했다."
조민수는 여우주연상 불발에 "섭섭하지 않다고 한다면 거짓말일 것"이라며 "한 방송사 특파원이 유력 후보라며 수상소감을 미리 따고 싶다고 했다. 하지만 경우가 아니라고 거절했는데 응했다가는 민망할 뻔했다. 하지만 무대에 내려와서 그들이 내게 보내준 따뜻한 눈빛, 작품이 훌륭해서 황금사자상을 줬다는 말에 다 잊혀졌다"고 심경을 전했다.
피에타는 1억 5000만원으로 제작됐다. 황금사자상을 수상한 작품의 제작비치고는 참으로 소박하다. 김 감독은 "배우와 메인 스태프들이 노개런티로 참여해준 덕분"이라고 공을 돌렸다. 그는 "생활이 매우 열악한 스태프들에게만 준다. 나머지는 수익나면 준다. 제작한 풍산개가 10억 수익났다. 5억은 스태프들 개런티로 줬다. 나머지로 피에타와 최근 촬영을 마친 ''신의 선물''을 제작했다"고 말했다.
상업영화를 찍을 생각이 없느냐는 질문에는 책임질 준비가 되면 만들 수도 있다고 답했다. "''봄 여름 가을 겨울 그리고 봄''이 전 세계 배급된 이후 중국의 거부들이 돈을 대겠다고 하더라. 하지만 전 그 돈을 책임질 수 없다면 하지 말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투자한 만큼 수익을 거둘 수 있다는) 책임을 질 수 있게 되면 큰 자본이 들어간 영화를 만들 것이다."
마지막으로 그는 다시 제로 상태로 돌아가 시나리오를 쓸 것이라고 말했다. "피에타는 맛있게 먹은 음식이고 소화가 돼서 이젠 배설된 똥이다. 그게 거름이 돼서 무엇이 되건 제 갈길을 갈것이다. 더 많은 관객이 보길 원하지만 만약 그렇게 되지 못하더라도 그건 ''피에타''의 운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