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물연대 파업 끝났지만…갈등 씨앗 드러낸 勞政 '동상이몽'[노동:판]
어쩌면 애초 일어나지 않을 수도 있었다. 비록 일어났더라도 더 일찍 끝날 수도 있었다. 이제는 끝났지만, 다시 일어날 것 같아 걱정이다. 화물연대 총파업에 대한 이야기다.
파업 위험 뻔히 알면서 국회 보고 미룬 국토부…'물류대란' 책임은 누구에게 돌아가야 하나
화물연대는 지난 7일부터 14일까지 △안전운임 일몰제 폐지 △안전운임 전차종·전품목 확대 △운송료 인상 △지입제 폐지 △노동기본권 확대 등 5개 요구사항을 걸어 총파업을 진행했다.
올해 연말 일몰기한을 앞둔 안전운임제를 지키기 위해 화물연대가 벌인 파업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지난해에도 6월과 10월, 11월에 종료 날짜를 정한 한시적 경고 파업을 진행했다. 더 나아가 대선 기간 보수 정권으로의 교체가 예고되면서 새 정부가 맞이할 첫 전국 단위 대규모 파업으로 올 여름 화물연대가 총파업에 나설 것이라는 사실은 익히 경고됐던 터다.
'울고 싶은 아이 뺨 때린다'는 속담처럼, 이런 가운데 화물연대의 총파업에 명분을 안겨준 곳은 다름 아닌 주무부처인 국토교통부다.
지난해 1월 더불어민주당 조오섭 의원이 안전운임제를 계속 운영하는 관련 법 개정안을 내놓자 당시 국회 국토교통위원회는 전문위원 검토를 통해 "일몰 1년 전 국토부 장관이 안전운임제 시행결과를 분석하여 연장 필요성 또는 제도 보완사항 등을 국회에 보고하도록" 했다.
한국교통연구원이 국토교통부에게 연구용역을 받아 3년 동안 실시된 안전운임제에 대한 평가를 마친 때가 지난해 12월, 국토부가 관련 보고서를 받아든 때도 올해 2월이었지만 국토부는 명확한 이유 없이 국회 보고를 미뤘다.
국토부는 국회가 하반기 상임위원회 구성을 마치지 않아 보고가 늦어졌을 뿐이라고 해명했다. 하지만 이 해명으로는 올 상반기 내내 보고를 미뤘던 국토부의 행태를 설명할 수 없다. 그보다 정권 교체 가능성이 커지자 안전운임제에 반대했던 국민의힘 심기를 거스리지 않으려 보고를 늦춘 것 아니냐는 지적이 좀 더 설득력이 있어 보인다.
산업통상자원부는 이번 화물연대 파업의 '피해액'을 1조 6천억 원으로 집계했다. 이 수치의 신뢰도는 차치하더라도, 뻔히 화물연대의 파업이 예상됐던 상황에서 만약 국토부가 정치적 목적으로 국회 보고를 늦췄다면 이 '피해액'의 책임에서 국토부의 몫은 어느 정도로 계산해야 할까.
현실 동떨어진 발언 내놓은 尹, 존재감 사라진 元, 책임 회피 바빴던 당정
이후 정부가 보인 대응 과정에서도 컨트롤타워가 제 역할을 하지 못하면서 곳곳에서 미숙한 모습을 보였다.
윤석열 대통령은 파업 첫날인 지난 7일과 3일째인 9일 연이어 '법과 원칙'을 강조했다. 하지만 정부의 예상과 달리 파업이 길어지고, 결국 화물연대의 대화가 시작된 10일에는 윤 대통령은 정부의 '과도한 개입'을 피해야 한다고 강조하며 교섭 범위의 선을 그었다
그런데 윤 대통령은 "정부가 법과 원칙, 그 다음에 중립성을 가져야만 노사가 자율적으로 자기의 문제를 풀어나갈 수 있는 역량이 축적돼 나간다"며 "정부가 늘 개입해서, 여론을 따라가서 너무 노사 문제에 깊이 개입하게 되면 노사 간 원만하게 이 문제를 풀어나갈 수 있는 역량과 환경이 전혀 축적되지 않기 때문에 그간 정부의 입장이라든가 개입이 결국은 노사 관계와 그 문화를 형성하는데 과연 바람직하였는지 의문이 많다"고 말했다.
정부는 화물차 운전기사들은 노동자가 아닌 특수고용노동자(특수형태근로종사자, 일명 특고)로 임금노동자가 아니라고 본다. 따라서 화물연대도 '노조'가 아니고, '파업'이 아닌 '집단운송거부'이며, 정부와의 협상도 '교섭'이 아니라고 강조해왔다.
화물업계는 옮겨야 하는 짐을 가진 화주, 화물차와 화주를 연결하는 화물주선·운송사, 개인사업자로 취급받는 화물차 기사들이 복잡하게 얽혀 있다. 또 차 소유를 놓고 차 명의를 가진 운수회사와 실제 운전하는 기사가 대립하는 지입제 문제도 있다.
이처럼 화물업계가 복잡한 이해관계를 가진 탓에 화물연대는 대화 상대로 국토부를 호명할 수밖에 없다. 이런 와중에 '노사 자율'에 맡겨 문제를 풀고 정부가 너무 깊이 개입하지 말라는 윤 대통령의 주문은 화물업계의 현실을 제대로 파악한 발언이라고는 보기 어렵다.
국토부의 수장인 원희룡 장관은 윤 대통령보다도 화물연대 총파업에 대한 공식 발언이 늦었다. 파업 사흘째인 지난 9일에야 처음 내놓은 발언도 "최대한 이른 시간 안에 대화를 통해 원만하게 풀어나가겠다"는 원론적 수준에 그쳤다.
이후에도 화물연대 총파업 국면에서 원 장관의 모습은 찾기 어려웠다. 파업 기간 동안 서울 강남의 자율주행차 시승, 용산공원 개방 행사에는 모습을 드러내면서도 경기도 의왕 내륙컨테이너기지(ICD)는 교섭 타결 직전인 14일에 찾았다.
파업이 종료된 후 배경 설명에 나선 국토부를 상대로 기자들이 '긴박한 상황에서 원 장관이 직접 나서지 않은 이유가 무엇이냐', "파업 종료 직전에야 현장을 방문한 이유가 있느냐'고 질타한 것도 자연스러운 일이다.
물론 협상 전략에 따라 원 장관이 전면에 나서지 않을 수도 있다. 문제는 교섭 과정에서도 화물연대의 요구에 책임 있는 당정의 모습을 찾기 어려웠다는 점이다.
교섭 과정에서 국토부는 줄곧 '안전운임제는 국회에서 논의할 법 개정사항'이라며 책임을 피하려 했다.
반면 이준석 국민의힘 대표는 지난 13일 "저희 얘기가 왜 계속 나오는지 모르겠다"며 "일몰법이라 입법 사안이긴 하지만 국토교통부가 기본이 돼서 협상하는 것이지, 정당이 개입할 차원은 아니라고 본다"고 공을 떠넘겼다. 같은 날, 화물연대는 국민의힘이 반대해 합의문이 번복됐다며 교섭 결렬을 선언하기도 했다.
노정 합의 당일부터 '연장 등' 논란 불 지핀 정부…국회 입법 과정서 갈등 반복될 듯
우여곡절 끝에 국토부와 화물연대가 합의를 마치고 파업이 종료됐지만, 정작 핵심쟁점이었던 안전운임제의 향방에 대해서는 여전히 동상이몽 상태다.
정부와 국민의힘은 안전운임제 일몰기한을 단순 연장하는 방안을 강조하는 반면, 화물연대와 야당인 더불어민주당·정의당은 안전운임제를 영구화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더 나아가 국토부 어명소 2차관은 파업 종료 다음날인 15일 기자들과 만나 "(안전운임제) 일몰제 폐지는 받아들이기 어렵다"며 화물연대의 요구를 받지 않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합의 당일인 지난 14일 화물연대는 합의안을 설명하며 "화물자동차 안전운임제(컨테이너,시멘트)를 지속 추진"이라고 표현했지만, 국토부는 "현재 운영 중인 화물자동차 안전운임제(컨테이너, 시멘트)를 연장 등 지속 추진"이라고 밝혔다.
핵심은 국토부의 자료에만 담긴 '연장 등'이다. 당정과 화물연대가 안전운임제를 놓고 연장이냐, 영구화냐를 놓고 다퉜던 점을 감안하면 화물연대의 요구를 사실상 받지 않겠다는 얘기나 다름없다.
이에 대해 국토부는 부랴부랴 "화물연대가 요구한 '일몰제 폐지'는 입법과정에서 결정되어야 할 사항임을 언급한 것"이라며 "화물연대와 연장 등 '지속 추진'하는 것으로 협의를 하였고,앞으로 입법 논의 과정에서 연장을 포함한 여러 가지 가능성을 열어두고 검토해 나갈 것"이라고 해명했다.
하지만 화물연대는 "정부는 화물연대와 합의한 안전운임제의 '지속 추진'을 안전운임제의 '연장 등 지속추진'으로 왜곡하여 발표했다"며 "5차 교섭과정에서 '연장'과 관련된 논의는 전혀 진행된 바 없고 최종 합의안에 대해 양측 확인까지 마친 상태에서 국토부 보도자료를 통해 합의된 바 없는 문구를 삽입하여 발표한 것에 화물연대는 분노를 표한다"며 강하게 반발했다.
이처럼 합의 직후부터 노정이 파열음을 보이고 있다보니, 국회가 하반기 원 구성을 마치더라도 법 개정 논의를 진행하면 갈등이 다시 불거질 가능성은 매우 높아 보인다.
2022.06.16 04:5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