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 기초자치단체 부활 도민여론·제도개선에 달렸다
▶ 글 싣는 순서 ①기초단체도 특별함도 없는 '제주특별자치도' 3년뒤 바뀔까
②숙의토론부터 주민투표까지…갈길 먼 제주 행정체제 개편
③제주 기초자치단체 부활 도민여론·제도개선에 달렸다
제주특별자치도 출범 후 17년간 행정체제 개편 요구가 끊임없이 제기됐는데도 번번이 좌절된 건 역시 도민여론이 쉽게 모아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행정체제를 바꿔야 할지부터 행정체제를 바꾼다면 어떤 방식이 좋을지에 대한 목소리도 다양하다.
실제로 도민 경청회와 전문가 토론회 과정에선 현행 행정체제의 장단점을 명확히 분석하고 도민에게 알린 뒤 개편을 추진해야 한다거나 제주특별자치도 출범 당시 상당한 갈등을 겪으며 많은 시간과 경비가 투입됐는데 또 같은 갈등을 반복해야 하느냐는 문제제기도 있었다.
또 4개 시군 시절 각종 공공요금이나 정부 교부금이 다른 점을 들어 기초자치단체를 부활한다고 해서 도민의 삶이 나아지지 않는다며 행정체제 개편에 반대하는 목소리가 나왔다.
기초자치단체 폐지로 행정의 민주성과 참여민주주의, 풀뿌리 민주주의가 후퇴했다며 현행 행정체제의 문제점을 지적하는 의견도 나왔다.
단순한 기초자치단체 부활을 넘어 읍면동 자치가 중심이 된 대동체 개념의 풀뿌리 자치 모델을 검토하자는 제안이 나온 반면, 과거 4개 시군 시절 기초의원들의 수준 미달 의정활동을 지적하며 기초의회 부활을 부정적으로 바라보는 시각도 있었다.
다만 행정시장을 도지사가 임명하는 현행 단층제 구조는 제주도청으로 권한이 집중되고 공무원도 몰리는 제왕적 도지사 체제를 불러왔다는 점에서 그만큼 도민 여론은 부정적이다.
실제로 제주도와 행정시 공무원 비율은 17년간 많은 변화가 있었다. 제주특별자치도 출범 직전인 2006년 6월 말 제주도와 4개 시군 공무원은 4895명으로, 제주도 소속 공무원이 1734명이었고 제주시(1087명)와 서귀포시(699명). 북제주군(734명), 남제주군(641명) 등 4개 시군 공무원은 3161명이었다. 제주도와 4개 시군 공무원 비율이 35% 대 65%로 기초자치단체 소속 공무원이 압도적으로 많았다.
그러나 특별자치도가 출범하며 4개 시군이 폐지되고 시장을 도지사가 임명하는 2개 행정시 체제로 바뀌면서 제주도 공무원과 행정시 공무원 비율은 58% 대 42%로 역전됐다. 2006년 7월 1일 공무원 정원 5169명 중 제주도 공무원이 2991명, 제주시(1283명)와 서귀포시(895명) 공무원은 2178명으로 제주도 공무원 숫자가 더 많아진 것이다.
17년이 지난 올해 7월 24일 기준 제주도와 행정시 공무원 비율 역시 55% 대 45%로 제주도 공무원이 더 많다. 6519명 가운데 제주도가 3566명, 행정시(제주시 1735명, 서귀포시 1218명)가 2953명이다.
특히 기초자치단체가 사라지며 예산과 조직결정권, 조례제정권 등 주요 권한은 제주도로 집중됐다.
행정시에 조례제정권이 없고 제주도를 통해 조례를 제정하게 되면서 행정력 낭비는 물론 행정시 특성에 맞는 조례 제정에 한계를 보이고 있다.
집행적 성격의 사무를 조례로 위임해 행정시장이 수행할 수는 있으나 행정시장은 법인격이 없어 직접 협약체결이나 기부금 모금 주체가 될 수 없다는 점도 문제다. 행정시장 명의의 협약 체결을 할 수 없고 고향사랑기부금도 행정시가 모금할 수 없다.
또 페기물 등 환경기초시설과 관련한 민원도 제주도로 몰리며 행정시 민원 대응성은 낮아지고 제주도청 의존도는 심화됐다. 리와 통, 반의 조정 등 기초자치단체가 해야 할 업무까지 제주도가 계획하고 결정하면서 처리기간 지연에 따른 주민 불편도 많아졌다.
제주형 행정체제개편 공론화 과정에서는 행정구역 설정을 놓고도 3개 시로 개편할지, 과거처럼 4개 권역으로 운영할지를 놓고 다양한 의견들이 쏟아졌다.
좌광일 제주주민자치연대 사무처장은 제주시와 서귀포시민의 생각이 다르고 동지역과 읍면지역 주민들의 의견도 달라 인위적으로 지도에 선을 긋는 방식이 아닌 인구와 생활, 경제, 역사, 문화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하고 도민 갈등과 혼란을 최소화하는 방안을 찾아야 한다고 제언했다.
국회의원 선거구를 기준으로 나누자는 주장이 나왔고 제주시와 서귀포시에 더해 동제주시와 서제주시를 추가하자는 의견, 인구가 많은 동지역은 독립적인 시로 승격해야 한다는 주장, 산남과 산북으로 나누는 대신 동군과 서군으로 구분하자는 의견 등이 이어졌다.
행정체제 개편까지는 제도개선이라는 산도 넘어야 한다. 주민투표로 기초자치단체 설치 여부를 결정할 수 있게 한 '제주특별자치도 설치와 국제자유도시 조성을 위한 특별법(제주특별법)' 개정안이 국회를 통과해야 한다.
개정안은 기초자치단체인 시·군을 설치하려면 제주도지사가 도의회 동의를 받아 행정안전부장관에게 주민투표 실시를 요청할 수 있도록 했다.
또 지방의회와 집행기관의 구성을 달리하는 경우, 즉 기초자치단체의 형태도 주민투표로 결정할 수 있게 하는 내용이 포함됐다.
개정안이 통과하면 제주도 행정체제개편위원회가 기초자치단체 형태를 어떻게 할지, 행정구역은 몇 개로 할지 등을 단일안으로 제시하면 이를 주민투표에 부칠 수 있다. 또 주민투표에서는 현행 체제를 유지할지, 새로운 체제를 적용할지 등을 물을 수 있게 된다.
그러나 개정안은 지난 5월 국회 행정안전위원회를 통과한 이후 법제사법위원회에서 멈춰 있다. 법사위는 심도있는 논의가 필요하다는 이유로 4개월째 통과를 미루고 있다.
다만 기초자치단체 부활이나 행정시장 직선제 추진 과정에서 제주특별자치도 출범 취지와 맞지 않는다는 이유로 번번이 좌절된 과거와 사뭇 다른 상황이 전개되고 있는 점은 제주도에 유리하다.
광역단일계층으로 바꿔 행정의 효율성과 불필요한 갈등을 줄인다는 취지였으나 올해 6월 출범한 강원특별자치도와 내년 1월로 예정된 전북특별자치도는 기초자치단체를 유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정부와 국회를 설득하는 데 한계를 보였던 제주도 입장에서 강원과 전북의 사례는 더없이 좋은 모델이다. 이 때문에 오는 12월 9일까지 100일간 이어지는 올해 정기국회에서 주민투표로 기초자치단체 설치 여부를 결정할 수 있게 한 제주특별법 개정안이 통과될 것으로 제주도는 기대하고 있다.
하지만 개정안의 국회 심의과정에서 지역과 정당에 따라 이해관계가 얽혀 있는 의원들이 어떤 판단을 내릴지와 정부가 주민투표 요구안에 대해 어떤 입장 정리를 할지 등 돌출 상황에 대비해야 한다.
결국 이번에도 정부나 국회 설득 여부와 도민여론의 흐름은 무시하지 못할 변수가 되고 있다.
2023.09.13 08: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