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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마가 있는 고품격 뉴스, 세상을 더 크고 여유로운 시선으로 들여다보는 CBS <김현정의 뉴스쇼=""> ''기자수첩 시즌2''에서는 정의롭지 못한 것에 대한 날카로운 비판을 담았다. [편집자 주]김현정의>
박근혜 대통령이 이끄는 새 정부의 이름이 ''박근혜 정부''로 결정됐다. 우리 정부의 공식 이름은 ''대한민국 정부''이다. 미국도 U.S. 거버먼트(Goverment)라고 부른다. 정부(Goverment)는 국가를 통치하는 권력기관 전체를 통칭할 때 주로 쓰인다. 대통령이 이끄는 행정부를 일컫는 말은어드미니스트레이션(Administration)이다. 미국에서 정부 앞에 대통령 이름을 붙일 때는 오바마 행정부(Administration)이라고 쓴다.
언론이나 학술적 기록에 ''노무현 정부'', ''이명박 정부'', ''오바마 정부''라고 적는 것은 언론이나 학자들이 편의상 시기를 구분하려는 것이고 국민이 알아듣기에도 편해서이지 공식명칭이 아니다. 그러니 대통령직 인수위원회에서 ''앞으로 5년 간 우리 정부의 이름은 대통령님 이름을 그대로 붙여 ''박근혜 정부''라고 할 테니 그리들 부르라''고 선언하는 건 전혀 다른 문제이다.
''문민 정부'', ''국민의 정부'', ''참여 정부''처럼 정부 앞에 타이틀을 내거는 건 새로운 정부의 정체성과 표상, 비전을 나타내려 별칭을 만들어 붙이는 것이다. 박근혜 당선자가 강조한 화합의 정부, 대통합 정부 등 뭐든 붙이려면 붙여도 좋다. 그런데 문민정부, 참여정부 대신 공식명칭에 이름을 넣어 ''박근혜 정부''라 지으면 새 정부의 정체성과 비전이 박근혜 당선자라는 것인가? 통치자 띄우기인가? 소유의 이미지를 강조하려는 것인가? 모두 넌센스이다.
박근혜, 이명박, 김대중, 김영삼 등의 이름은 대통령 앞에 붙이는 것이지 정부가 정부 앞에 공식적으로 붙여 쓰는 것이 아니다. 대한민국 정부는 국가와 국민의 정부이지 어느 정권의 정부, 어느 권력자의 정부가 아니다. 당선자 주변에 통치철학과 국가 비전을 모색하는 노력은 없고 충성 경쟁만 차고 넘치는 것 아닌가 싶어 불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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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충성 경쟁에 눈 먼 이름 ''박근혜 정부''우리는 인수위원회의 황당한 정부 공식명칭 결정에서 프레임의 문제를 생각해 봐야 한다. 프레임은 생각하는 기준과 사고방식의 틀을 가리킨다. 여기서 수수께끼 하나. 어린이들은 다들 답을 아는 문제이다.
"이 사람이 우리 집에 왔다만 가면 아빠 엄마가 나를 마구 야단쳐요."
이 사람은 누굴까? 답은 ''손님''이다. 아이는 자기가 무례하거나 버릇없이 군 건 생각지 않고 손님만 왔다 가면 부모들이 신경질을 낸다고 여긴다. 부모도 마찬가지이다. 아이는 낯선 사람이 오면 자기 방식대로 반기고 때로는 어린 마음에 두려워 피하는 것인데 어른 기준으로 점잖고 의젓하게 대하길 기대한다. 이것이 자기중심의 프레임이다.
남편이 아내에게 자동차 운전을 가르치거나 엄마가 아이에게 산수나 과학을 가르칠 때 속이 터진다. "이렇게 당연하고 간단한 걸 왜 그렇게 못하는 것인지, 으이그...".
반대로 운전을 배우는 아내나 아이들은 내 남편. 내 부모는 학원 선생님보다 못 가르치면서 윽박지르고 화만 낸다고 원망한다. 이것 역시 자기중심의 프레임에 갇혀 있는 것이다. 우리는 자신의 설명이나 표현, 논리, 이해력이 상당히 우수하다고 여긴다. 그러나 그것은 내 자신의 프레임 속에서만 그런 것이지 남에겐 결코 그렇지 않다.
좋은 게 좋은 거 아니냐, 잘해 보자고 하는 건데 대충 넘어가자는 의견도 있다. 그러나 자기가 갇혀 있는 프레임의 문제를 이해 못하고, 다른 사람이 품을 수밖에 없는 프레임의 문제를 헤아리지 못하면 좋을 수도 없고 잘할 수도 없다. ''불우이웃돕기 한 달에 1만 원 씩만 기부하세요''. 커피 2잔 덜 마시면 된다. 하지만 이건 어떤가? ''1년 치 12만 원 내시죠''. 같지만 같다고 느끼지 못한다. 이것이 프레임이다. 불우이웃돕기 모금도 이럴진데 정부의 공식명칭을 정하고 국정을 운영하는데 프레임의 문제를 무시하는 건 위험하다.
사람들의 인식과 평가, 기대, 선택, 참여는 이름에 따라 달라진다. 오갈 데 없어 거리에서 숙식을 해결하는 사람을 노숙자라고 부르는 것과 걸인, 부랑인이라고 부르는 것은 정책 구상과 정책 시행과정을 다르게 만들 수밖에 없다. 특히 이름은 프레임을 좌우하는 결정적 요소 중 하나이다. 알카에다의 테러라고 부르는 것과 알카에다의 독립투쟁이라고 부르는 것이 다르다.
4대강 사업이라고 부르는 것과 4대강 살리기 정책이라고 부르는 것도 정책의 찬반을 물을 때 정책에 대한 국민의 지지도를 다르게 한다. CNN이 힐러리 클린턴에 대한 대중 선호도를 조사한 적이 있다. ''힐러리 클린턴''이라고 부를 때보다 ''힐리러 로햄 클린턴''이라고 미혼 시절의 이름을 넣어 부를 때 지지도가 뚜렷이 높았다.
◇ 개떡같이 말해도 찰떡같이 알아들어라? [BestNocut_R]문민 정부, 국민의 정부, 참여 정부 등 이 이름들이 갖는 프레임의 공통점이 무얼까? 그것은 "누구와..." 라는 프레임이다. 누구를 위해 누구와 함께 할까? 문민, 국민, 참여 정부가 갖는 이름의 프레임이다.
이명박 대통령 때 등장했다 사라진 실용 정부는 ''어떻게...''의 프레임이다. 비즈니스를 최우선 가치로 둔 것이다. 그렇다면 ''박근혜 정부''라는 이름이 갖는 프레임을 따져 보시라. 누구와, 집권자 박근혜와? 어떻게, 박근혜 식으로? 누구를 위해, 집권자 박근혜를 위해?
그 어느 것도 ''박근혜 정부''라는 이름으로는 민주주의를 살리는 이름이 못 된다. 이명박 정부 때에서 다시 한 걸음 퇴보하고 마는 것이다. 이 이름은 소유와 권력의 프레임이다. 그 이름을 공식명칭으로 쓰며 직무를 수행할 공무원들에게 물어 보라. ''나는 참여 정부의 공직자요''와 ''나는 박근혜 정부의 공직자요''가 아무 차이가 없는지. ''이름은 X떡같이 지어도 공무원들이 #떡같이 알아듣고 일할 수 있는지''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