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새벽 예정됐던 체육대회가 문교부 검열에 걸려 해산당하고 말았다. 신문보도가 안 되어 그렇지, 서울, 대전 등 대학가에 데모가 일고 있고, 학교에서는 학생들에 대한 감시가 시작됐으며, 대통령긴급조치 제9호 때문에 말도 못하고 있다.”
지난 75년, 충남대학교 3학년에 재학 중이던 이 모(59)씨가 지인에게 보냈던 편지 내용의 일부다. 이 편지는 이 씨의 인생을 송두리째 바꿔놓았다.
당시 검찰은 이 씨를 유언비어 전파 등 긴급조치 9호 위반 혐의로 기소했고 법원은 이 씨에게 징역 1년 집행유예 2년, 자격정지 2년을 선고했다.
38년이 흐른 지난 4월. 대법원이 ‘긴급조치 9호가 헌법에 위배된 무효’라고 선언했다. 이 씨는 다시 법원을 찾았고 대전지법 형사 11부(이종림 부장판사)는 지난 25일 이 씨에 대해 무죄를 선고했다.
38년 동안 이 씨를 짓눌러왔던 ‘전과’는 겨우 3개월 만에 사라져버렸다.
재판부조차 이 씨의 지난 38년을 위로했다.
재판부는 판결문에서 “과거 권위주의 정권에서 자행됐던 위법.부당한 공권력으로 큰 시련과 옥고를 겪게 된 피고에게 이제야 잘못된 과거를 바로잡고 명예를 회복시켜 드리게 된 점에 대해 사과드린다”며 “이 사건 재심판결이 피고가 지난날 겪었던 고통에 대한 위로와 명예회복의 계기가 되길 바란다”고 밝혔다.
재판부는 이어 “이 사건과 같은 아픈 역사를 교훈삼아 재판부로서는 다시는 그러한 비극이 발생하지 않도록 국민 기본권을 보장하고 보편적 정의를 구현하는 최후의 보루로서 역할을 다 할 것을 다짐한다”고 덧붙였다.
한편 지난 26일 충북에서도 긴급조치 9호 위반 혐의로 2년 6월 복역한 80대에게 무죄가 선고되는 등 지난 4월 대법원 결정 이 후 긴급조치 위반에 대한 재심 신청과 무죄 선고가 잇따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