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리핀의 경기가 열리는 날 몰오브아시아 아레나는 입추의 여지가 없다 (사진/노컷뉴스)
필리핀 경기가 열릴 때마다 농구장에 "가리! 가리!"를 외치는 응원 소리가 울려퍼진다. 무슨 뜻인가 궁금해 현지 관계자에게 물었더니 필리핀 대표팀의 최고참인 35세의 슈터 데이빗 개리를 응원하는 목소리란다. 발음이 독특해 그렇게 들린 모양이다.
개리는 필리핀에서 가장 인기있는 선수 중 한명이다. 단지 그 이유 때문에 열렬한 응원을 받는 것은 아니다. 한 관계자는 "개리는 과거에 대단한 득점 기계였다. 또 대표팀 생활을 얼마 남겨두지 않고있는 노장이다. 대회 초반에 많이 부진했다. 그래서 팬들은 개리가 다시 부활하기를 바라며 응원하는 것"이라고 귀띔했다.
필리핀에서 농구는 가장 대중적인 스포츠다. 절대적인 사랑을 받고있다. 전 국민이 서포터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개리의 예에서 알 수 있듯이 질책보다는 격려가 많다.
팬들의 응원 수준도 높고 열기도 대단하다. 이미 필리핀의 승리가 결정된 4쿼터 막판이라 할지라도 심판 판정이 마음에 들지 않으면 주저없이 야유가 쏟아진다. 필리핀 경기가 열리면 각 지역에 배치된 진행 요원들이 일제히 경기장으로 들어와 농구를 관람한다. 맡은 바 업무는 잠시 뒤로 미루는데 누구도 간섭하지 않는다.
제27회 국제농구연맹(FIBA) 아시아남자농구 선수권 대회가 열리고 있는 필리핀 마닐라의 몰오브아시아 아레나는 최대 2만명이 입장할 수 있는 대형 구장이다. 지난 해 완공된 최신식 시설로 필리핀 농구의 새로운 성지다.
한국 대표팀 선수단은 경기장에 들어서자마자 "우리나라에도 이런 농구 전용구장이 있었으면 좋겠다"며 부러운 눈빛으로 바라봤다.
필리핀의 경기가 열릴 때마다 입장권 구하기가 하늘에 별따기다. 12강 리그가 끝나자마자 8강전 티켓에 매진됐고 4강전 티켓 역시 일찌감치 동났다. 한국과의 4강전의 경우 표를 구하지 못해 입장 대기를 걸어놓은 팬들의 숫자가 수만명이라는 이야기도 있다.
한국은 10일 오후 9시30분(한국시간) 몰오브아시아 아레나에서 필리핀과 4강전을 치른다. 여기서 승리하는 팀은 내년 스페인으로 간다. 농구 월드컵으로 명칭을 바꾼 세계남자농구선수권 대회가 열리는 장소다. 한국은 16년만의 첫 진출을 노린다.
전력 싸움은 둘째 문제다. 유재학 감독은 2만명 관중 아래 치러진 필리핀과 카자흐스탄의 8강전을 현장에서 지켜보며 "이 정도 응원 소리라면 코트에서 선수들에게 지시하는 내용이 전혀 들리지 않을 것"이라고 걱정했다.
필리핀에 58-88로 완패한 카자흐스탄 선수들은 "관중 때문에 압박감이 컸다"고 입을 모았다.
유재학 감독도 "분명 압박감이 있을 것"이라며 "윌리엄존스컵 때 대만에서 느꼈다. 관중들이 난리를 치니까 우리 선수들이 압박감에 자기 플레이를 못하더라. 얼마나 자신을 마인드컨트롤하느냐가 관건이다. 그런 걸 연습한 적도 있다"고 말했다.
대표팀은 7월 초 2013 윌리엄존스컵 대회 개최국인 대만과의 경기에서 홈 팬들의 뜨거운 응원에 고전했던 경험이 이번 필리핀전에서 도움이 되기를 바라고 있다.
조성민은 "역으로 생각하면 된다. 필리핀도 부담을 안고 경기를 해야하기 때문에 편안하게 하겠다"며 자신감을 나타냈다.
심판 휘슬도 변수다. 모든 심판이 공정한 판단을 내리려고 애쓰지만 2만명이 일방적으로 한 팀을 응원하는 분위기에서 자칫 흔들릴 가능성을 무시 못한다. 애매한 상황이면 '홈 콜'을 불어주는 것이다. 국제대회에서 늘 있었던 관례와도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