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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자폭탄 못 막아 번개탄 때는 세상



경제 일반

    이자폭탄 못 막아 번개탄 때는 세상

    사채시장 고금리의 덫

     

    '고금리 사채' 문제가 도마에 오르면 늘 나오는 말이 있다. "규제하자"다. 백번 옳은 말이지만 현실을 외면한 주장이기도 하다. 소득이 없거나 신용도가 낮은 서민이 기댈만한 언덕이 '사금융' 밖에 없기 때문이다. 어떻게 해야 할까. 답은 하나다. 고금리 사채업자를 일벌백계하고, 사채의 빠진 이들을 구제할 방도를 찾는 것이다.

    # 이진우(가명ㆍ54)씨는 지방에서 작은 음식점을 운영했다. 2000년대 중반만 해도 수입이 짭짤했지만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엔 걱정이 태산이다. 생각보다 경기침체가 장기화되면서 손님이 줄어들었기 때문이다. 이젠 하루 매출이 10만원도 올리기 어렵다.

    음식점 월세와 직원 월급 등 운영자금이 부족해진 이씨는 생활정보지의 일수 광고를 보고 500만원을 빌렸다. 중개수수료 명목으로 선이자 10%를 떼고 이씨가 받은 돈은 450만원. 이자율은 193.5%, 90일 동안 일 7만원을 갚는 조건이었다. 이씨는 '이자 갚는 건 문제 없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그게 아니었다. 가게 사정이 더 어려워지면서 7만원의 일수금을 갚는 것도 힘겨워졌다. 결국 이씨는 일수를 갚기 위해 가게를 정리했다. 지금은 다른 식당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생계를 유지하고 있다. 사채의 덫에 제대로 걸린 셈이다.

    # 김정철(가명ㆍ62)씨는 퇴직 이후 아파트 경비원으로 근무했다. 한달에 100여만원의 월급으로 간신히 생계를 유지하며 지냈다. 문제는 지난해 터졌다. 결혼을 앞둔 자녀의 결혼자금을 마련할 길이 없었기 때문이다. 은행대출을 알아봤지만 '불가통보'를 받았다. 아파트 전세보증금을 위해 대출을 받은 게 발목을 잡았다.

    돈을 구할 곳이 없었던 김씨는 무등록대부업자에게 1000만원의 대출을 받았다. 선이자 15%를 떼고 850만원을 받았고, 연 180%의 이자를 지급하기로 했다. 월로 따지면 이자율은 15%, 150만원은 족히 필요했다. 김씨는 당연히 이자를 갚지 못했다. 자신의 월급보다 많았기 때문이다. 결국 김씨는 울며 겨자 먹기 식으로 전세금을 빼서 돈을 갚았다. 지금 그는 '월세'를 전전하고 있다.

    김씨처럼 어떻게든 사채를 갚은 경우는 그나마 다행이다. 사채를 갚기 위해 또 다른 사채를 사용하는 경우가 비일비재해서다. 이런 경우 빚은 순식간에 불어난다.

    최지현(가명ㆍ36)씨가 사채를 쓰게 된 이유는 밀린 월세를 내기 위해서였다. 큰돈을 빌린 것도 아니었다. 최씨가 대부업자에게 처음 빌린 돈은 70만원이었다. 대부업자도 '신용이 없어 큰돈을 빌려주기 힘들다'고 했다. 선이자와 수수료를 제하고 받은 돈은 49만원, 하루에 6만원씩 25일 동안 갚는 조건이었다.

    급한 불을 끈 최씨는 지인에게 조금씩 돈을 빌려 빚을 갚았다. 하지만 이게 최씨를 '사채의 늪'으로 빠뜨리는 계기가 됐다. 급전이 필요할 때마다 돈을 쉽게 빌릴 수 있는 사채시장의 문턱을 넘게 된 것이다.

    ◈눈 깜짝할 사이 불어나는 이자

     

    최씨의 불행은 건강상의 문제로 일을 관두면서 시작됐다. 고정수입이 없어지자 하루 7만~8만원의 일수를 갚는 것이 벅찼다. 생활비도 바닥을 보였다. 최씨는 결국 또 다른 사채를 사용하게 됐다. 이자를 갚지 못하는 날이 많아지자 대부업자는 돈을 갚을 수 있게 또 다른 대부업자를 소개해 주겠다고 나섰다. 하루하루 이자가 늘어나는 게 불안했던 최씨는 그 제안을 받아들였다.

    그때부터 본격적으로 빚이 빚을 만드는 상황이 벌어졌다. 상환이 힘들 때 마다 다른 사채를 사용했다. 이른바 '사채 돌려막기'로 빚을 갚기 시작한 것이다. 최씨가 돈을 빌린 대부업체는 2년만에 30곳으로 늘었다. 가장 낮은 금리가 적용된 곳이 연 80% 이상, 연 1000%가 넘는 이자를 적용한 업체도 있었다. 평균 금리는 200~300%였다.

    최 씨는 "급전을 빌려도 2~3개월 사이에 소액으로 갚을 수 있다는 점에 깜빡 속아 연 이율이 높다는 것을 체감하지 못했다"며 "하지만 한순간 연체가 되니 그다음부터는 빚이 걷잡을 수 없을 만큼 불어났다"고 말했다.

    빚을 갚지 못해 힘들어하던 최씨는 시민단체의 도움을 사법기관에 신고를 하고 소송도 준비중이다. 하지만 여전히 갚아야 할 빚은 산더미다. 되레 대부업자로부터 사기죄로 고소를 당할 수도 있다. 상환능력이 부족한데 다른 대출 사실이 있는 것을 숨기고 무리하게 대출을 받았기 때문이다.

    최씨는 "법적소송이 진행된 이후 돈을 갚지 않고 있다"며 "이 때문에 자신의 돈을 먼저 갚으라는 대부업체의 전화가 빗발쳐 이만저만 고통스러운 게 아니다"고 말했다.

     

    고금리 사채 빚을 이기지 못하고 목숨을 끊는 사건도 빈번하게 일어났다. 2003년 사채를 갚지 못해 시달리다 일가족 6명이 자살한 사건이 있었다. 2000년 여수에서 작은 야채가게를 운영하던 송석호(가명)씨는 2001년 가게를 확장하면서 아파트 단지 상가에 마트를 열었다.

    사업확장 과정에서 돈이 부족했던 송씨는 사채를 사용하게 됐다. 마트를 운영하며 빚을 갚아 나갔지만 인근에 대형마트가 들어서면서 사정이 크게 어려워졌다. 매출부진으로 사채 이자를 갚지 못하는 날이 늘어났고 빚은 순식간에 불어났다. 직장을 다니던 두딸까지 마트운영을 위해 카드빚을 지는 상황에 몰렸다. 빚은 7억원까지 늘어났고 사채업자의 독촉에 괴로워하던 송씨 가족은 '집단 자살'이라는 극단적 선택을 했다.

    지난해 11월 충북 제천에서도 어머니와 30대 두 딸 등 3명이 사채 빚 때문에 자살한 사건이 있었다. 차안에서 번개탄을 때고 목숨을 끊은 것이다. 도로변에 주차된 차안에서는 "아파트 대출금과 사채 빚 때문에 가족에게 미안하다"는 내용의 유서가 발견됐다.

    사금융 시장, 일명 사채시장의 고금리 문제는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금융감독원이 8월 26일 발표한 사금융 이용실태 조사 결과에 따르면 사금융 시장의 평균금리는 연 43.3% 수준이다. 등록 대부업체의 금리는 38.7%이다. 미등록 대부업체와 개인간 거래의 경우에는 각각 52.7%와 38.5%를 기록했다. 특히 미등록 대부업체 이용자의 약 20%는 연 100%가 넘는 고금리를 부담하고 있다고 응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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