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합진보당 비례대표 부정경선에서 대리투표를 한 당원들이 전원 무죄를 선고받았다.
법원은 정당의 당내경선에서 반드시 선거의 4대원칙이 그대로 준수돼야 하는 것은 아닌 점, 통진당 관계자들이 대리투표의 가능성을 알고 있었음에도 별다른 조치를 취하지 않은 점 등을 무죄의 근거로 들었다.
7일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35부(송경근 부장판사)는 업무방해 혐의로 기소된 김재연 통진당 의원의 비서 유모(32) 씨, 조양원 CNP그룹 대표 등 당원 45명에 대해 무죄를 선고했다.
통진당 비례대표 부정경선은 지난해 제 19대 국회의원 선거 비례대표 후보자 추천을 위한 통진당 당내 경선에서 일부 당원들이 다른 선거권자들에게 자신의 인증번호를 알려줘 대리투표를 하게 하거나 다른 선거권자의 인증번호로 대리투표한 사건이다. 이 사건과 관련해 1735명이 수사를 받았고 모두 462명이 기소됐다.
검찰은 정당의 당내경선에 공직선거의 4대 원칙(보통·평등·직접·비밀 투표)이 적용돼야 하고, 통진당의 당헌·당규에 대리투표를 금지하는 조항이 있다는 점을 들어 유죄를 주장했지만 재판부는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재판부는 "공직선거의 4대 원칙이 정당의 당내경선에서도 그대로 준수돼야 한다는 검찰 주장은 그 전제부터 잘못됐다"고 말했다.
헌법에 국회의원, 대통령 선거 등 8개 주요 공직선거에 대해서 선거의 4대원칙을 적용해야 한다는 규정이 명문화돼 있지만 정당의 당내경선에 대해서는 헌법 등 어떤 법률에도 이러한 규정이 없다는 점을 들었다.
재판부는 "정당이 공직선거에 참여하기 위해 후보자를 추천하는 행위는 정당의 가장 본질적인 헌법적 기능 중 하나이므로 정당의 자율성을 존중해야 한다"고 봤다.
이어 "정당 당내경선의 경우 공직선거의 4대 원칙이 그대로 준수돼야 하는 것은 아니나 적어도 민주적인 기본질서에 반하는 등 선거제도의 본질적인 기능을 침해하는 방식의 투표는 허용될 수 없다"고 덧붙였다.
통진당의 당헌·당규에 대리투표를 금지하는 조항이 있다는 검찰 주장에 대해서도 "(통진당 당헌에 규정된 전자투표 방식이) '반드시 직접투표를 해야 하고 대리투표를 해서는 안 된다'는 원칙을 담보하기 위한 것이라고 단정하기는 부족하다"고 결론내렸다.
재판부는 "선거권자의 의사를 왜곡하는 상당한 규모의 조직적 대리투표가 아닌 '가족, 친척, 동료 등 일정한 신뢰관계가 있는 사람들 사이에 위임에 의해 이뤄지는 통상적인 수준의 대리투표'는 감수할 의사가 있었던 것으로 볼 여지가 충분하다"고 설명했다.
결국 도덕적인 비난 가능성은 있지만 업무방해죄 혐의에 대해 법적인 책임은 물을 수 없다는 판단을 내린 것이다.
재판부는 "대리투표임을 알면서도 투표율에 집착해 이를 금지하는 규정조차 전혀 마련하지 않은 채 선거를 실시한 통진당 당직자 및 선거관리업무 담당자들에게 근본적이고 중대한 책임이 있다"고 꼬집었다.
이어 "정당의 공직선거 후보자 추천을 위한 당내 경선에서의 대리투표 행위가 제한없이 허용된다거나 언제나 업무방해죄가 성립될 수 없다는 취지는 아니다"라고 선을 그었다.
한편 이같은 판결에 대해 한 법조계 관계자는 "헌법상의 명확성의 원칙을 따져보면 무리한 판결이라고는 볼 수 없을 것 같다"면서 "개인적으로 도덕적인 비판받을 여지가 충분하다고 보지만 '법을 위반했느냐'와는 다른 차원의 문제"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