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로 저기가 꿈속에서도 잊지 못하는 고향입니다."
12일 경남 진주시 진양호 선착장 근처에 설치된 천막에 앉은 정창자(73·여·인천시)씨는 진양호를 바라보면서 옛날을 회상했다.
정씨는 1969년 진주 남강댐 건립공사로 마을이 수몰돼 고향을 떠난 실향민을 위해 열린 행사에 참석해 이처럼 기억을 더듬었다.
이날 행사는 당시 수몰된 진주시 귀곡동 귀곡마을인 일명 '까꼬실' 주민이 구성한 진주 귀곡 실향민회가 마을이 수몰된 지 거의 반세기 만에 열었다.
당시 수몰된 마을 주민과 자녀 등 500여 명이 반갑게 만났다.
정씨는 "고향이 물속에 잠겼지만 옛날 집이나 논두렁까지 생생하다"며 "반가운 얼굴을 본다는 생각에 밤잠을 설쳤다"고 들뜬 마음을 전했다.
정정섭(77·경기도 안산시)씨는 "2~3년에 한 번씩 진양호 안에 선산을 찾지만 이번 실향민 행사는 처음이다"며 "혈기왕성했던 청년들이 40여 년 만에 노인이 돼서 만났지만 고향 사람을 보니 그나마 위안이 된다"고 말했다.
실향민들은 이날 행사에 설치된 8개의 천막에서 손을 잡고 서로 안부를 물었다.
처음에는 긴가민가했던 얼굴을 한참을 쳐다보고 나서 친구 얼굴임을 확인하고 눈물을 글썽이기도 했다.
일부 실향민은 이번 행사를 손꼽아 기다리다가 얼마 전 쓰러졌다며 자식들이 행사에 참석해 부모의 안부를 전하기도 했다.
이날 행사는 당시 귀곡마을의 초입이던 현 진양호 선착장에서 사물놀이와 초청가수 공연, 고인이 된 실향민 추모제례, 고향에 대한 시와 수필 낭송, 마을별 노래자랑과 민속놀이 등으로 진행됐다.
실향민들은 '우리의 고향 까꼬실의 정신을 영원히 계승한다', '귀곡초등학교 옛 터에 표지석을 세운다', '고향 땅에 비바람을 피할 수 있는 쉼터를 마련한다'는 등의 결의문을 채택해 실향민의 안타까운 마음을 서로 위로하기로 했다.
까꼬실 마을은 수몰 전 257가구 1천467명의 주민이 각골, 아랫말, 큰말 등 8개 마을에 거주하다가 1969년 남강댐 건립공사로 이주했다.
절반 정도만 진주에 정착하고 나머지는 전국 각지로 흩어져 생업에 전념하느라 그동안 전체 주민이 만날 기회가 없었다.
그러다 2001년 실향민회가 구성돼 흩어진 고향 사람을 찾는 데 노력했고 까꼬실 사람을 소재로 한 소설과 시집 등의 책자를 발간하기도 했다.
2003년에는 마을이 내려다보이는 진양호 가에 망향비를 세웠다.
그러나 집과 농토는 물론, 접근로조차 수몰돼 마을 선산에는 명절 때 배를 타고 가야 하는 실정이다.
정종섭 귀곡 실향민회 회장은 "고향을 떠난 지 40여 년 만에 주민 전체가 모였지만 눈앞에 고향을 두고 길바닥에서 행사를 열어 부끄럽다"며 "내년쯤 진양호 둘레길이 완공된다고 하니 성묘길이나 시간이 날 때마다 자녀 손을 잡고 고향을 방문하는 날을 기대한다"고 소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