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깨어나라, 국민 타자!' 삼성 이승엽은 올해 두산과 한국시리즈(KS)에서 몸살과 부담감으로 극심한 침체를 보이고 있다. 사진은 6차전에서 삼진을 당한 뒤 더그아웃으로 들어가는 모습.(대구=황진환 기자)
한국시리즈(KS)도 이제 마지막 7차전만을 남겨놓고 있습니다. 두산이 3승1패로 앞설 때만 해도 정규리그 4위 최초의 우승이 보였지만 저력의 삼성이 시리즈를 원점으로 만들면서 패권의 향방을 알 수 없게 됐습니다.
5, 6차전 삼성의 대반격을 이끈 주역들은 박한이(34), 채태인(31), 최형우(30) 등 좌타 3인방입니다. 여기에 우타자 박석민(28)도 뒤를 받치고 있습니다.
박한이는 1승3패로 밀린 5차전 절체절명의 순간 결승 2타점 적시타로 경기 MVP에 오른 데 이어 6차전에서도 쐐기 3점 홈런을 날리며 펄펄 날았습니다. 채태인도 5차전 선제 솔로포에 이어 6차전에서 역전 결승 투런포를 터뜨리며 MVP에 올랐습니다.
최형우는 6차전에 침묵했지만 5차전에서 홈런 포함 3안타 1타점 2득점으로 승리를 뒷받침했습니다. 박석민 역시 5차전 2안타 3볼넷 2타점으로 거들었습니다.
▲이승엽, 타율 1할3푼…오티스, 6할8푼8리하지만 삼성 간판 타자 이승엽(37)의 이름은 거론되고 있지 않습니다. 이승엽은 이번 KS 타율 1할3푼(23타수 3안타) 1득점에 머물러 있습니다.
오히려 삼성이 이번 KS에서 고전하는 이유로 꼽히고 있습니다. 2차전 연장 10회말 1사 만루 끝내기 기회와 4차전 0-2로 뒤진 9회 무사 1, 2루에서 모두 내야 땅볼에 그치는 등 고비에서 침묵했기 때문입니다.
이승엽의 부진은 어제 끝난 메이저리그 월드시리즈(WS)에서 보스턴의 우승을 이끈 데이비드 오티스와 선명하게 대비돼 더 아쉬움을 주고 있습니다. 오티스는 1975년생으로 이승엽보다 빠르지만 아직 만 37살로 같은 베테랑이기 때문입니다.
오티스는 세인트루이스와 WS에서 타율 6할8푼8리 2홈런 6타점 7득점 8볼넷의 놀라운 기록을 남겼습니다. 출루율이 무려 7할6푼, 장타율은 10할을 넘었습니다. 6차전에서는 고의 4구만 3개로 엄청난 존재감을 과시했습니다.
당연히 시리즈 MVP의 몫은 오티스였습니다. 불혹을 앞둔 나이라고는 믿기 힘든 활약이었습니다.
▲이승엽과 오티스의 올해는 완전히 다르다
'이것이 바로 이승엽!' 지난해 SK와 한국시리즈 6차전에서 싹쓸이 3타점 3루타를 친 뒤 환호하는 이승엽.(자료사진=삼성 라이온즈)
사실 올해 이승엽에게 오티스와 같은 활약을 바라기에는 다소 무리가 있습니다. 2013년은 분명 이승엽에게 이상 신호가 온 시즌이었기 때문입니다.
이승엽은 1997년 이후 2003년까지 7시즌 평균 43개 홈런을 뽑아냈습니다. 8년의 일본 생활을 마치고 돌아온 지난해도 타율 3할7리 21홈런 85타점으로 이름값을 해냈습니다. 전성기는 지났지만 '역시 이승엽'이라는 칭찬을 받을 만했습니다. SK와 KS에서도 1차전 홈런 포함 타율 3할4푼8리 7타점으로 시리즈 MVP까지 올랐습니다.
하지만 올해 정규리그에서 타율 2할5푼3리 13홈런 69타점에 머물렀습니다. 데뷔 이후 가장 좋지 않은 성적입니다. 타격감과 몸 상태 등 모든 면에서 예년과 달랐습니다.
반면 지난해 다소 주춤했던 오티스는 올해 완전한 부활을 알렸습니다. 오티스는 지난해 부상으로 90경기 출전에 그치며 타율 3할1푼8리 23홈런 60타점의 기록을 남겼습니다. 2004년 이후 보스턴에서 8시즌 평균 40홈런을 날렸던 점을 감안하면 다소 기대에 못 미쳤습니다. 그러나 올해 137경기 타율 3할9리 30홈런 103타점으로 건재를 과시했습니다.
그런 오티스였기에 WS에서도 맹활약을 펼칠 수 있었습니다. 올해 정규리그에서 침체를 보인 이승엽과는 너무나 다른 상황이었던 겁니다. 올해만큼은 이승엽에게 주역이 될 만한 활약을 기대하기는 어렵다는 겁니다.
▲'그래도 이승엽이라면...' 부담 극복이 관건하지만 '이승엽이라면' 하는 아쉬움도 분명히 남습니다. 그동안 국내외 무대에서 너무도 숱하게 결정적인 장면을 만들어낸 이승엽이기에 더욱 그렇습니다.
2000년 시드니올림픽 일본과 동메달 결정전의 결승타, 2002년 LG와 KS 6차전 극적인 동점 3점 홈런, 2006년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 일본전 역전 2점포, 2008년 베이징올림픽 일본과 준결승전 결승 투런포 등 일일이 열거하기도 어려울 정도입니다.
무엇보다 팀이 어려울 때 경기 후반 극적인 한방으로 강렬한 인상을 남겼습니다. 2002년에는 9회말 홈런으로 삼성의 첫 KS 우승의 발판을 놨고, 시드니와 베이징올림픽, WBC 때는 8회 통렬한 결승타를 날리며 각각 사상 첫 올림픽 동메달과 금메달, WBC 4강을 이끌었습니다.
'국민 타자의 포효' 2008년 베이징올림픽 일본과 4강전에서 8회 결승 2점 홈런을 친 뒤 환호하고 있는 이승엽.(자료사진)
특히 2008년 베이징올림픽 때는 타율 1할 극심한 침체를 보이다 일본과 4강전에서 짜릿한 결승 홈런을 때려내며 더욱 큰 감동을 안겼습니다. 후배들의 병역 혜택이 걸린 중요한 대회였기에 이승엽은 경기 후 인터뷰에서 그동안의 마음 고생에 눈물까지 쏟았습니다. 저 역시 현장에서 그런 이승엽을 보면서 울컥 감정이 북받치기도 했습니다. 이런 감동적인 한방으로 이승엽은 '국민 타자'라는 영광스러운 별명까지 얻었습니다.
류중일 삼성 감독은 6차전 승리 후 "더 이상 이승엽에 대한 얘기는 안 했으면 좋겠다"고 잘라 말했습니다. 누구보다 부담감이 클 이승엽을 배려한 겁니다. 이승엽도 "뭐라도 해보고 싶다"며 의지를 불태우고 있지만 우승에 대한 스트레스로 온 몸살과 중압감에 시달리고 있습니다.
과연 이승엽이 이대로 KS를 무기력하게 마무리하게 되는 것일까요? '국민 타자'의 부담감과 컨디션 난조를 극복할 '현실적인' 한방을 기대해봅니다.
P.S-오티스는 WS 우승을 확정지은 뒤 인터뷰에서 "종종 '나도 나이가 들었다'고 말한 적이 있는데 지금 생각은 어떠냐"는 질문을 받자 "여러분, 내가 돌아왔습니다(I'm back, baby)"는 한 마디로 베테랑의 건재를 만천하에 알렸습니다. 이승엽 역시 이대로 끝내지는 않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올해 KS가 끝난 뒤 이승엽의 인터뷰는 어떨지 궁금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