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노든 파일'을 통해 조금씩 실체가 드러나는 미국 감청망은 세계 각국 시민을 어느 정도까지 감시할까?
전(前) 미국 방산업체 직원 에드워드 스노든이 다량의 기밀을 언론에 공개한 지 5개월이 다 됐지만 감청망의 범위와 깊이는 아직 수수께끼다.
그러나 지금껏 공개된 내용은 '상상 그 이상'이라는 말로 요약된다. 감청 범위는 미국을 넘어 전 세계였고 민간인부터 독일 등 우방정상과 교황까지 신분의 높낮음도 가리지 않았다.
게다가 문제는 '첩보원의 귀'가 아니라 기술력이다. 급속히 발전하는 IT(정보기술) 역량은 전화통화 기록 등 사생활 정보를 손쉽게 분석·활용할 수 있게 해 감청망을 초유의 '괴물'로 만들었다는 것이 스노든의 지적이다.
◇ "지난 행적 깨알 분석…누구나 범법자 몰릴 수도"
미 정보 당국은 휴대전화, 메신저, 이메일, SNS(소셜네트워크서비스), 신용카드 정보 등 디지털 네트워크의 정보를 소화전의 물을 빨아당기듯 흡입한다. 이렇게 모은 대용량 정보(빅데이터)를 서버에 저장하고 컴퓨터의 힘을 빌려 매초 매분 분석한다.
구글이 검색정보를 저장·분석해 광고에 활용하듯 국가가 민감한 사적 정보를 몰래 데이터베이스(DB)에 쌓아놓고 쓸 수 있는 상황이 된 것이다.
특히 직접 사람이 방대한 감청 정보를 뒤져 빈틈이 많던 과거와 달리 지금은 컴퓨터 분석 덕에 작은 특이점이나 장기간의 변화도 금세 찾아내 감시망이 더 촘촘해졌다.
미국 일간 뉴욕타임스(NYT)는 1일자 해설 기사에서 고객정보를 자세히 분석하는 것으로 유명한 인터넷 장터 '아마존'에 비유해 NSA를 정보기관의 '아마존'으로 부르기도 했다. IT(정보기술) 시대 이전 1970∼80년대 정보기관과 NSA는 아예 다른 존재라는 얘기다.
이런 상황에서는 무고한 민간인도 당국의 의심만 받으면 과거 행적과 대화상대 등이 모두 파악돼 범법자로 몰릴 수 있다고 스노든은 강조했다.
스노든은 3일 독일 잡지 슈피겔에 기고한 글 '진실을 위한 선언'에서 "감청은 사생활, 표현의 자유, 열린 사회를 위협한다"며 인권 보호를 위한 감청 규제를 촉구했다.
◇ "비밀 요하는 인간 활동 봉쇄"
스노든 파일의 첫 폭로는 전화 '메타데이터' 수집이었다. 영국 가디언지는 올해 6월6일 미 국가안보국(NSA)이 민간인이 건 전화번호와 통화 시간 등 기록을 대규모로 수집한다고 보도했다.
통화를 엿듣는 것은 아니라고 미 정부가 해명했지만 대중의 분노는 컸다. 이 사건을 특종한 글렌 그린월드 기자는 "낙태를 원하는 여성이 낙태 클리닉에 전화하면 그 사실이 그대로 기록된다. 메타데이터는 언론 취재를 비롯해 비밀을 요하는 인간의 모든 활동을 불가능하게 만든다"고 강조했다.
파문은 인터넷 통신을 감시하는 '프리즘' 프로그램이 드러나며 더 커졌다. 구글, 페이스북, 스카이프 등 유명 서비스의 메일과 동영상 등 정보가 영장 하나면 정보기관에 넘어간다는 사실이 처음 알려진 것이다.
미 감청망이 중동 등 세계 각국에 넓게 퍼져 있다는 사실도 공개됐다. 영국은 환대서양 통신 케이블을 아예 해킹해 전화·인터넷 통신 내용을 가로채고 미국과 관련 정보를 공유했다.
◇ 국경 없고 규제도 없어
이란 등 적성국만 표적이 아니었다. 프랑스, 독일, 교황청 등을 표적으로 마구 감청을 했다는 기밀이 최근 알려지면서 감청망은 대규모 외교 분쟁에 불을 댕겼다.
게다가 독일·프랑스·스페인 등 유럽 정보기관이 영국의 자문 아래 인터넷·전화 정보를 수집했다는 정황이 이번 달 드러남에 따라 미 감청망과 비슷한 제2, 제3의 감시 체제가 존재할 개연성도 커졌다.
감청망은 당국의 규제를 거의 받지 않는 '괴물'이다. 법원의 감독을 받는다는 미 NSA는 영장 없이 구글과 야후의 데이터센터를 해킹해 매일 수백만 건에 달하는 자료를 무단으로 퍼갔다.
일부 NSA 직원들은 권한을 악용해 마구 배우자 등의 사생활을 뒤졌지만 내부 징계 대상이었을 뿐 기소조차 되지 않았다.
◇ 기밀해독 난관…'테러억제' 해명과도 충돌
스노든이 미 정보 당국에서 빼돌린 기밀문서는 수만 건에 이르는 것으로 추정된다. 지금까지 보도된 스노든 파일은 전체의 극히 일부다.
그러나 NSA 내부 메모와 발표 슬라이드 등으로 구성된 이 문서 더미는 전문가도 쉽게 못 읽을 정도로 내용이 어렵다. 정보기관이 쓰는 속어와 약어가 빽빽한데다 극히 일부만 보는 문서라 배경 설명도 거의 없다.
스노든 파일을 분석했던 베테랑 언론인 바턴 겔먼은 뉴요커 잡지와의 인터뷰에서 "20여 년 동안 안보, 국가정보, 외교정책을 취재했지만 이런 자료는 처음 봤다. 처음 읽었을 때 겨우 절반가량만 이해했다"고 말했다.
즉 문서 내용을 이해하고 맥락을 파악하는 것 자체가 난관이다. 미 정부가 관련 보도를 이적(利敵) 행위로 보고 대립각을 세우는 만큼 당국자 취재도 쉽지 않다.
게다가 보도가 나가도 당국이 기밀에 대한 오해라면서 변명을 거듭하면 보도 신뢰성에 혼선이 일 가능성이 있다. 대(對)테러작전 등 공익에 부합하는 임무라는 반론도 거세다.
실제 르몽드 등 유럽 매체는 스노든 파일을 토대로 미 NSA가 프랑스, 스페인, 이탈리아 등에서 민간인 전화 내용을 대거 수집했다고 보도했으나 NSA는 '기밀을 잘못 이해한 오보'라고 맞받아쳤다.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 동맹국들이 군사작전으로 수집해 미국에 넘겨준 합법 정보를 민간인 무단 감청으로 착각했다는 주장이다.
◇ 한국 NSA 감청 실태 밝혀지나
스노든 파일을 전량 보유한 언론인 그린월드는 미 감청망의 한국 내 실태도 폭로하겠다고 예고해 보도시 큰 파문이 예상된다.
그린월드는 지난달 12∼15일 브라질 리우데자네이루에서 열린 세계 탐사저널리즘 콘퍼런스에서 'NSA의 한국 감청 실태에 관한 기밀 문서도 갖고 있다'며 이 같이 밝혔다고 한국 온라인 매체인 뉴스타파가 보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