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마가 있는 고품격 뉴스, 세상을 더 크고 여유로운 시선으로 들여다보는 CBS <김현정의 뉴스쇼=""> '기자수첩 시즌2'에서는 정의롭지 못한 것에 대한 날카로운 비판을 담았다. [편집자 주]김현정의>
21일 신문 보도(중앙일보 단독)에 간첩신고 건수가 급증했다는 보도가 있었다.
"국정원에 따르면 올해 1월부터 지난달까지 국정원이 111 전화신고와 홈페이지를 통해 받은 간첩 신고는 4만7000여 건. 지난해 4만여 건이 접수된 것을 볼 때 크게 늘어난 수치다. 노무현 정부 때 간첩신고는 5,865건(한 해 평균 1,173건)이 접수됐고 이명박 정부(2008~지난해) 때는 8만6,332건(한 해 평균 1만7,266건)의 신고가 들어왔다."
남북정세를 감안할 때 김대중.노무현 정부 때 보다 이명박 정부 때 간첩신고가 많았으리라는 건 짐작이 가지만 2013년에 부쩍 늘어난 이유는 뭘까?
신문보도 내용은 전문가 분석을 인용해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이석기 통합진보당 의원의 내란예비음모 사건, 국제 해커조직 어나니머스(Anonymous)에 의한 북한의 대남 선전 사이트 ‘우리민족끼리’ 회원 아이디 9001개를 공개한 사건이 올해 간첨신고를 결정적으로 늘린 배경이 됐다."
이 분석은 타당하다. 이 사건들로 ‘일간베스트(일베)’ 등 보수 성향 인터넷 사이트에서는 간첩자수기간 캠페인이나 간첩신고 붐도 일었다. 우리민족끼리 회원 정보를 근거로 신상털기를 하고 간첩이라고 신고를 하는데 아예 ‘죄수번호 0000 간첩 000를 신고한다’ 이런 간첩신고도 비일비재했다. (0000은 우리민족끼리 회원정보 공개 때 순번).
◈간첩신고 5만 건, 간첩검거 4건…당황하셨어요?간첩신고가 4만 건이라고 기사를 썼으면 실제로 확인되거나 적발된 간첩은 몇 명인지 알려줘야 하는데 기사 내용에는 그런 게 없다. 다만 밑에 공안사범 검거실적이 나온다.
"공안사범 검거 실적은 김영삼 정부 때 149명이던 것이 김대중 정부 112명, 노무현 정부 50명으로 줄었다. 이명박 정부 들어서는 다시 194명으로 늘었다."
왜 간첩 통계에서 공안사범 통계로 초점을 바꾼 것일까? 올해 초 <연합뉴스> 보도에 따르면 검찰과 공안당국이 밝힌 간첩 검거 숫자는 이명박 정부에서 총 25 명이다. 참여정부 시기인 2003년부터 따지면 모두 49명의 간첩이 구속됐고, 이 중 42%인 21명은 탈북자로 위장해 국내에 잠입했다 검거됐다. 박근혜 정부에서 검거된 간첩은 4명, 모두 탈북자 위장간첩이다.
<중앙일보>는 2013명 간첩신고 건수 4만7천명에서 간첩검거 4명으로 옮겨 가기가 부담스러웠나보다. 그것보다는 숫자가 큰 공안사범 검거로 얼버무렸다.
수만 건에 이르는 간첩신고에는 다양한 사연들이 담겨 있다.
△지난 10월 충북 청주에서는 알코올 중독자가 고정간첩인데 자수하겠다고 해 공안당국이 총출동하기도 했다.
△대학 수업 중에 반자본주의·반미를 가르쳤다는 이유로 1학년 학생에게 신고당한 강사도 있다. 수업과목은 ‘자본주의 바로 알기’.
△고려대에서는 학교 내 성추행 사건 문제로 토론이 번지다 반대 의견 학생의 신상털이를 해 ‘붉게 물든’ ‘투쟁’ 등의 단어들을 사용한 적이 있으니 간첩이라고 신고하기도 했다.
△울산에서는 청년들이 영화 ‘은밀하게 위대하게’ 흉내를 내며 북한 말투로 대화하는 걸 여중생들이 간첩으로 오인해 신고했다. “동무, 얼른 자결하라우”가 영화대사를 흉내낸 대화의 내용.
△강원도 영월에서는 빈집을 세트장으로 삼아 영화를 찍고 있던 제작진이 영화에 사용한 김일성.김정일 사진을 방치했다 MT왔던 대학생들에게 간첩으로 신고 당했다.
◈다시 번지는 21세기의 메카시즘·파시즘적성국의 간첩을 적발하고 검거하는데 협조하는 건 시민의 책무일 수 있다. 문제는 ‘간첩 같다’가 아니라 진보이념을 종북으로 몰고 더 나아가 실천에 나서 간첩신고가 집단행동화 하는 현상이다.
민주 사회에서 사상의 자유는 기본이고 사회주의에 대한 진지한 토론과 연구도 필요한 것인데 좌파·사회주의·마르크스라는 글자만 들어가도 좌빨, 종북으로 오해받고 준간첩처럼 인식되는 쪽으로 우리 사회가 가고 있다.
우리 사회가 북한에 대한 경각심을 지켜나가는 건 문제될 게 아니다. 하지만 반공이념과 기재가 국민 감시장치로 작동하는 게 문제이다.
국민은 간첩과 아무런 상관이 없어도 ‘나도 언젠가 간첩으로 오해받아 신고 당하면 끌려가 조사받게 될 수 있지’라는 생각에 오해받을 행동을 지극히 자제하며 살아간다. 수십 년을 반공구호, 간첩신고 구호와 함께 살아 온 세대는 더욱 그렇다. 권위주의 정권 시대의 자기검열이 몸에 각인되어 있는 것이다.
중앙일보>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