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정기술로 세상을 밝히는 3인이 있다. 돈 때문에 청력을 포기하는 소외계층을 돕고, 휠체어로 이동하는 장애인의 이동권을 보장하며, 제3세계 사람들의 빈곤한 삶에 온기를 전달한다. 하는 일은 달라도 마음은 동일하다. 3인의 착한 기술과 착한 마음은 어디에서 비롯된 것인지 들어봤다.
김정현 딜라이트 대표
소리 소문 없이
소리를 선물하다
서울 당산동 보청기 전문업체 딜라이트 본사 입구. 흥미로운 광고문구가 고객을 먼저 맞는다. "'갈치 맛이 기가 막히다는데…' '김치를 찢어 수저 위에 올려 주신다' 부모님의 사랑은 한결같지만 청력은 한결같지 않습니다. 딜라이트 보청기 34만원부터."
광고처럼 딜라이트의 보청기 가격은 34만원부터다. 경쟁사 비슷한 제품과 비교하면 3분의 1 가격대다. 34만원은 청각장애인에게 지급되는 보청기 보조금과 동일한 금액이다. 김정현(28) 딜라이트 대표는 이렇게 말했다. "돈 때문에 청력을 포기한 분들이 생각보다 많더라고요. 소외계층을 돕고 싶었습니다."
김정현 대표는 사회적기업을 연구하는 대학연합 동아리 '넥스터스'에서 활동했다. 사회적기업의 성공사례를 조사하던 그는 국내 보청기 시장에 문제가 쌓여 있다는 사실을 알아냈다.
"당시 국내 보청기 시장은 외국계 기업이 거의 독점하고 있었죠. 저소득층으로선 보청기를 구매하고 싶어도 그러기 어려웠어요. 가격 때문이었죠. 우리나라보다 소득수준이 높은 일본에선 같은 제품이 30~40% 저렴하게 팔릴 정도였다니까요. 그렇다고 정부보조금이 뒷받침해주는 것도 아니었어요. 그래서 마음 먹었죠. 보청기 시장에 한번 뛰어들어보자고요."
대학에서 경영학을 전공한 김 대표는 '보청기 문외한'이었다. 보청기 세미나ㆍ포럼 등에 참석해 경쟁업체 엔지니어에게 자문을 구하는 등 발품을 팔 수밖에 없는 처지였다. 대학생 신분이던 그를 봐줄 만큼 사회가 녹록하지도 않았다.
김 대표는 다른 업체와는 다른 '보청기'를 만들지 않으면 생존하기 어렵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맞춤형이 아닌 표준형 보청기를 제작하기로 했다. 맞춤형 보청기가 비싸다는 점에 착안했다. "보청기가 비쌌던 이유는 맞춤양복처럼 개별로 생산되기 때문이죠. 여러 옵션을 만들어 표준형 보청기를 만들었습니다. 그랬더니 대량생산이 가능해 값을 내릴 수 있었습니다."
딜라이트는 적정기술 대표기업 중 한곳으로 꼽힌다. 지난해 5월엔 미 매사추세츠공대(MIT)의 적정기술연구소와 기술ㆍ유통협력 제휴를 맺기도 했다. "처음부터 적정기술 기업을 목표로 삼은 건 아니었어요. 소외계층에 좋은 퀄리티의 보청기를 저렴한 가격에 제공하겠다는 생각뿐이었죠. 목표를 달성하려고 택한 방법이 적정기술로 인정받은 것 같아요."
김 대표가 다니던 대학 한편에 마련된 공간에서 보청기를 팔던 딜라이트는 이제 해외 대형업체와 자웅을 겨룰만큼 성장했다. 전국에 직영점만 15곳에 달하고, 직원은 40명이 넘는다. 지난해 매출 42억원을 올린 이 회사는 올해 50억원을 기대하고 있다. 그럼에도 김 대표는 여전히 '공헌'에 더 많은 신경을 쓴다.
미술대 입시를 준비하는 학생들에게 무료 미술교육을 제공하는 '꿈꾸는 앨리'를 위한 기부활동을 하고 있다. 소셜벤업체가 진행하는 셰어하우스 사업에도 뛰어들었다. 이 사업은 오래되거나 빈 집을 전월세로 빌려 대학생과 사회초년생에게 보증금 없이 월 30만~40만원에 빌려주는 것이다. "경제적인 문제로 당연히 누려야 할 것들을 누리지 못하는 이들이 많습니다. 앞으로도 도움이 필요한 분야를 찾아 공헌을 하는 게 꿈입니다." 착한 기술을 개발한 김 대표는 착한 CEO를 꿈꾼다.
노승우 개발자(서울대 대학원 의공학 박사과정)
앱으로 밝힌
장애인의 눈
2008년 어느날. 대학원에서 의공학을 공부하던 노승우(30)씨는 과제를 받고 깜짝 놀랐다. '장애인의 위치파악을 통한 모니터링 방안을 연구하라'는 다소 낯선 주제였기 때문이다. 간단한 연구가 아니었다. 의공학을 전공했지만 장애인이 이용하는 휠체어는 생소한 분야였다. 그렇다고 물러설 그가 아니었다. 노씨는 IT기술과 생체계측기술에 관심이 많은 청년이었다.
곧장 대학로에 위치한 노들장애인야간학교를 찾았다. 휠체어를 이용하는 장애인을 관찰하기 위해서였다. 아니나 다를까. 장애인이 이동하면서 겪는 문제는 생각보다 심각했다. 지하철 역사에 설치된 휠체어용 리프트는 설계가 잘못된 탓에 종종 낙상사고가 발생했다. 거리 역시 이들에겐 위험한 곳이었다.
그는 사고를 미연에 방지하고, 사고 발생 시 대응할 수 있는 시스템을 개발하기로 했다. 일단 '사고는 언제 어디서든 발생할 수 있다' '사고 위험성을 장애인에게 경고함과 동시에 원격을 통해 제3자에게 알려야 한다' 등 두가지를 염두에 두고 연구를 거듭했다.
오랜 연구 끝에 노씨는 2009년 우발적인 상황을 검출할 수 있는 시스템과 사고 데이터ㆍ상황을 GPS를 통해 전송하는 원격 모니터링 시스템을 개발했다. 이런 연구결과로 석사학위까지 받은 노씨가 원격 모니터링 시스템을 다시 연구하기 시작한 건 2010년 스마트폰이 대중화되면서다.
노씨는 스마트폰을 주목했다. 스마트 기기에 내장된 GPSㆍ모션센서 등을 활용하면 휠체어의 기울기 등을 추정해 안전사고를 감지할 수 있을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실험 결과, 그의 예상은 맞아떨어졌다. 2012년 노씨는 이 서비스를 '휠체어 지킴이'라는 이름의 애플리케이션(앱)으로 출시했고, 의미 있는 성과를 거뒀다.지난해 한국산업기술평가관리원이 주최한 '장애인과 노약자를 위한 보조기기 및 스마트폰 앱 공모전'에서 장려상을 수상한 것이다.
이 앱이 시사하는 바는 결코 작지 않다. 장애인의 이동권 보장에 따른 위험 요소를 공학기술로 해결한 것이라서다. 나아가 휠체어를 이용하는 장애인이 증가하는 상황에서 이들의 사회 참여를 안전하게 뒷받침한다는 점에서 인간 중심의 적정기술을 표방한다.
앱 '휠체어 지킴이'는 상용화에 성공했지만 현재 상업화는 보류했다. 개인의 위치정보 수집이 민감한 사안으로 떠오르면서 비즈니스 계획을 잠시 접어둔 것이다. 노씨는 "휠체어 지킴이는 적정기술을 이용한 기술의 가능성을 보여준 사례다"며 "정부와 기업이 관심을 가진다면 소외된 90%를 위한 기술이 더 많이 나올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김영진 제로디자인 대표
태양 전등으로
암흑을 밝히다
2011년 8월, 평범한 직장인이던 김영진(34ㆍ대표), 김항석(36ㆍ경영지원팀장), 조재련(28ㆍ기술개발팀장ㆍ캄보디아 거주) 세명의 청년이 캄보디아로 단기선교를 떠났다. 소외된 계층를 위한 봉사에 관심이 많던 청년들이었다. 현지에서 캄보디아 사람들의 '빈곤한 삶'을 목격한 그들은 도울 수 있는 '무언가'를 찾기 시작했다.
그로부터 3개월 후, 세명의 청년은 캄보디아의 프놈펜ㆍ쯔럭 르싸이ㆍ쁘렉 아엥ㆍ쁘렉 클롭ㆍ시아누크빌 등 지역에 수작업으로 제작한 태양광 전등을 보급했다. 청년들이 만든 벤처기업 '제로디자인'은 이렇게 세상에 나왔다.
지금이야 '젊은이들이 대단하네'라는 말을 듣지만 창업과정은 가시밭길의 연속이었다. 창업자금이 없어 교회의 허름한 창고에 사무실을 차렸다. 태양광 전등 제품생산 과정도 녹록지 않았다.
제품을 생산하려면 목업ㆍ금형제조 등 기본적인 제조과정을 밟아야 하는데, '제조 문외한'이던 세 사람에겐 낯설기 그지없었다. 그렇다고 중국제품을 구입해 판매할 순 없는 노릇이었다. 직접 디자인하고 직접 생산해야 캄보디아 현지에 최적화된 제품을 공급할 수 있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김영진 대표는 "제대로 된 제품을 보급해야 사업을 지속할 수 있다"고 말했다.
'서당개 3년이면 풍월을 읊는다'는 말처럼 제로디자인은 혁신적인 태양광 전등을 생산하는 데 성공했다. 여러 전등을 연결하는 태양광 제품이 대표적이다. 태양광 전등이 각각 설치돼 있더라도 '배터리'를 공유할 수 있는 시스템도 자체 구축했다. 최근엔 제품 디자인에도 혼신의 힘을 쏟고 있다. 김 대표는 "태양광 랜턴의 사양은 대부분 엇비슷하다"며 "이 때문에 디자인적 측면을 무시할 수 없다"고 말했다.
제로디자인의 목표는 돈을 버는 게 아니다. 김항석 팀장은 "소외된 계층에게 어떤 도움을 줄 수 있는지를 고민하는 게 우리의 첫째 역할"이라며 "그다음이 수익성 추구"라고 말했다. 그래서 해외시장 진출 목표도 일단 접었다. 국내외 사회적기업과 NGO단체를 타깃으로 제품을 판매하는 게 더 의미있다고 생각해서다. 제로디자인은 '지저스 로드 디자인(Jesus Road Design)'의 약자다. 사명처럼 이들은 '성聖스러운 길'을 걸어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