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애 두 번째 영광인데...' 올해 천하장사에 오른 이슬기는 최근 승부 조작 사태로 마음이 편치만은 않다. 사진은 지난달 17일 2013 천하장사 씨름대축제에서 우승한 뒤 꽃가마를 탄 모습.(서산=대한씨름협회)
씨름 간판 이슬기(26, 현대삼호중공업)는 올해 대회 모두 끝났어도 바쁘다. 그동안 밀린 대학원 수업을 들어야 하는 데다 천하장사가 된 까닭에 여기저기 인사를 다니고 있다.
올 한 해를 천하장사로 마무리해 마음이 든든할 것 같지만 실상 그렇지만도 않다. 가뜩이나 씨름 인기가 떨어지는 가운데 최근 불거진 승부 조작 사태로 마음이 무겁다.
이슬기는 지난달 17일 충남 서산에서 열린 '2013 천하장사 씨름대축제'에서 김재환(용인대)의 돌풍을 잠재우며 황소트로피를 받았다. 2011년 이후 2년 만에 최고의 영예를 안았다.
이슬기에게는 눈물의 결실이었다. 1년여 기나긴 재활 끝에 거둔 수확이었기 때문이다. 2011년 천하장사에 이어 지난해 설날대회 백두장사 2연패, 최우수 선수 등 승승장구하던 이슬기는 9월 왼 무릎 십자인대가 끊어지는 중상을 입었다. 수술과 피나는 재활 끝에 지난 추석대회에서 4위에 오르며 재기의 신호탄을 쐈고, 마침내 천하장사에도 올랐다.
사실 운도 어느 정도는 따랐다. 올해 3연속 백두장사에 오른 강력한 우승후보 정경진(26, 창원시청)이 4강전에서 김재환에게 덜미를 잡혔기 때문이다. 대학생이라 다소 방심한 데다 생소한 상대라 파악이 덜 된 게 컸다.
하지만 김재환 돌풍은 이슬기에게는 통하지 않았다. 운 좋게도 이슬기의 재활 훈련 장소가 용인대였기 때문이다. 이슬기는 "몇 번이나 훈련에서 붙어봤기 때문에 김재환을 파악하고 있었다"고 말했다. 천하장사 결승전은 3-0으로 싱겁게 끝났고, 이슬기는 상금 2억 원을 상대적으로 수월하게 얻은 셈이었다.
'천하장사의 김치 맛은?' 이슬기가 11일 목포시에 있는 시각 및 정신 장애우 시설인 광명원에서 김장 봉사 활동에 참여해 김치를 담그고 있다.(사진=현대삼호중공업 씨름단)
그럼에도 천하장사 등극은 이슬기의 완전한 부활을 알릴 계기였다. 최근 씨름 인기가 하락했지만 가장 큰 대회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곧바로 다음 날인 지난달 18일 전주지검발 승부 조작 관련 사태가 터졌다. 이슬기의 장사 등극 소식은 온데간데없게 됐다. 이슬기는 "완전히 묻혀버렸다"며 아쉬움을 드러냈다.
목표를 이루기 위해 묵묵히 훈련하는 게 선수의 본분이지만 자신의 성과가 널리 알려지기를 원하는 게 인지상정이다. 특히 오랜 어려움을 이기고 달성한 업적이라면 더욱 그렇다. 눈물나는 재활에 대한 짧은 기사에도 속으로 기뻐했던 이슬기였다.
하지만 올해 천하장사 대회는 어쩔 수 없는 현실. 이슬기는 "씨름 인기가 예전보다 줄었고, 승부 조작도 한번은 짚고 넘어갔어야 했던 것"이라면서 "더 체력과 기술을 길러 더 재미있고 화려한 경기로 팬들을 모으는 수밖에 없다"며 내년 시즌을 기약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