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씨름협회 박승한 회장이 지난달 19일 승부 조작 관련 기자회견을 하고 있는 모습.(자료사진=송은석 기자)
2013 씨름 왕중왕전이 열린 4일 전남 화순 하니움문화체육센터. 대학과 일반 선수들 통틀어 올해 최강자를 가리는 이른바 올스타전이었다.
첫날 이른바 레전드 올스타전 성격의 씨름스타대전(단체전)에 앞선 행사는 대한씨름협회의 자정결의대회였다. 최근 불거진 씨름 승부 조작 사태와 관련, 각 팀 선수와 감독, 심판, 협회 관계자 등 씨름인들이 반성과 향후 근절을 다짐하는 자리였다.
전주지검은 최근 지난해 설날장사대회 금강장사 결승전 등에서 승부 조작 혐의로 선수들을 구속 수사하고 있다고 밝혀 씨름계가 발칵 뒤집혔다. 이에 협회는 지난달 19일 긴급 기자회견을 열고 박승한 회장이 머리를 조아리며 대국민 사과를 했다.
이어 약 보름 만에 다시 전 씨름인들이 깨끗한 스포츠로 거듭나기 위한 결의를 맺은 것이다. 가뜩이나 씨름 인기가 예전만 하지 못한 가운데 더 국민들이 등을 돌릴 수 있다는 위기 의식이 배경에 있었다.
하지만 대국민 사과나 자정결의대회는 일종의 전시성 행정이라는 지적이다. 앞서 축구, 배구, 농구, 야구 등 프로 스포츠에서도 이런 행사를 열었지만 승부 조작의 그늘에서 벗어나지 못했기 때문이다.
특히 전통 스포츠 씨름은 선후배, 동료들 사이의 정이 유독 돈독해 전부터 승부 조작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가 나왔다. 금전이 오가는 식의 본격적인 범죄가 아니라 무의식적, 관행적으로 이뤄져 왔을 것이라는 의혹의 시선이었다. 실제로 왕년의 장사들은 "예전에 같은 팀 선수끼리 대결에서는 왕왕 양보해주는 경우가 있었다"고 말하고 있다.
▲"일본 스모처럼 씨름도 확실한 교육이 필요"
올해 천하장사 이슬기, 왕년 씨름스타 손상주 대한씨름협회 전무이사, 김은수 현대삼호중공업 감독, 황대웅 전 천하장사(왼쪽부터) 등 씨름인들이 3일 '2013 씨름 왕중왕전'에 앞서 열린 자정결의대회에서 선서를 하고 있다.(화순=대한씨름협회)
그렇다면 과연 근본적인 해결책은 무엇일까.
박승한 협회장은 3일 경기 후 취재진과 만나 승부 조작 근절 대책에 대해 일단 "정말 대답하기 어려운 질문"이라며 운을 뗐다. 이어 "선수와 지도자 등 대대적인 교육밖에 해답이 없다"고 강조했다.
일본 씨름인 스모처럼 확실한 직업관과 윤리 의식을 심어야 한다는 것이다. 박회장은 "스모 선수가 되면 6개월 동안 윤리 의식과 인터뷰 요령 등 경기 외적인 부분까지 철저하게 교육을 받는다"면서 "부끄럽지만 우리 씨름은 아직까지 옛날 사고 방식에 젖어있는 것이 사실"이라고 분석했다.
이어 "선수와 지도자 등이 정에 이끌려 해서는 안 될 일에 빠져서는 안 된다"면서 "모든 승부에 최선을 다하지 않는 것이 범죄라는 인식을 가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사실 협회는 올해부터 승부 조작 금지 서약서를 받는 등 선수단 교육을 의욕적으로 해오고 있다. 올해 창단한 제주도청을 비롯해 6개 시도에서 실시했고, 내년에는 16개 시도 전체로 확대할 계획이다.
이런 가운데 지난해 벌어진 사건이 뒤늦게 적발된 것이다. 협회 관계자는 "한꺼번에 선수, 지도자들을 모을 수 없는 상황이라 비용이 많이 들어도 꾸준하게 시도를 돌면서 교육을 추진할 것"이라고 밝혔다.
최근 침체에서 중흥을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는 씨름. 과연 승부 조작 사태를 수습하고 민속 스포츠로 다시금 자리매김할 수 있을지 지켜볼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