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정부지로 치솟는 전세값과 월세 등의 부담을 줄이려는 대학생과 직장인들 사이에서 '셰어하우스'·'셰어오피스'가 새로운 대안으로 떠오르고 있다.
특히 1인가구가 증가하는 요즘, 독거로 인한 외로움도 극복할 수 있어 입주자들은 면접을 보고 들어갈만큼 큰 인기를 끌고 있다.
◈ 보증금이 월세 두 배, 가족같은 유대감
(사진=이미지비트 제공)
4년 전 학업 때문에 전북 익산에서 홀로 서울로 온 유정현(24·가명) 씨. 제한된 인원탓에 기숙사는 못 들어간 유 씨는 저렴한 곳을 찾아 여러번 보금자리를 옮겨야만 했다.
결국 고향을 떠나온 뒤 상당 기간을 좁은 고시원에서 혼자 외롭게 지내던 유 씨. 가봤자 아무도 없고 머리만한 작은 창문 만이 유일한 해방구였던 곳에서 그는 그저 잠만 잘 뿐이었다.
하지만 유 씨는 요즘 집에 가는 것이 즐겁기만 하다. 초인종을 누르면 함께 사는 친구들과 형, 동생들이 현관문을 열고 나오며 그를 반긴다.
방은 따로 쓰되, 거실과 주방 등은 공유하는 이른바 '셰어하우스'에서 6명이 집세를 공동 부담하며 살고 있는 것이다.
특히 유 씨가 살고 있는 셰어하우스는 월세도 저렴하지만, 부담없는 보증금이 주머니 가벼운 대학생들에게 큰 장점으로 다가왔다.
몇 명이서 몇 평에서 사느냐에 따라 월세는 30만원에서 60만원까지 다양하다. 반면, 보증금이 겨우 월세의 두 달치밖에 되지 않는다.
월세 35만원을 내면 보증금은 70만 원. 월세를 60만 원 낸다하더라도 보증금은 120만원 밖에 되지 않는 것.
아무리 학교 앞 허름한 집이라도 보증금이 보통은 1000만원에서 최소 500만 원인 요즘, 유 씨가 머무는 셰어하우스는 서울 물가에 익숙지 않은 지역 부모님의 부담을 덜어드리에 안성맞춤이었다.
이렇다보니 경제사정이 팍팍한 대학생들이나 나홀로 직장인들은 서로 셰어하우스에 들어가기 위한 경쟁도 상당히 치열하다.
유 씨가 지난 5월 처음 이곳에 들어올 때 경쟁률은 무려 16대 1. 당연히 들어갈 수 있는 사람은 한정돼 있었고 자의반, 타의반으로 입주 면접까지 치르게 됐다.
이같은 셰어하우스가 곳곳에서 생기면서 나홀로족들이 분산돼 지금은 16대 1까지는 아니지만 그래도 3대 1 정도의 경쟁률은 꾸준히 유지되고 있다.
셰어하우스 관리자들은 입주 지원자들의 면접을 보면서 한 공간에서 취사 규칙 등을 지키는 것은 물론 여러 사람들과 잘 어울리며 지낼 수 있는 사람들을 뽑는다.
서울로 온 뒤부터 혼자 살다보니 밥도 잘 안챙겨 먹게 되고, 공부도 힘들어 지치기만 했다던 유 씨.
"집에 와도 말동무도 없다보니 매일 밖에서 술만 마시곤 했지만 지금은 그렇지 않다"며 "무엇보다 다른 누군가와 '함께' 지낸다는 게 가장 큰 매력"이라고 강조했다.
유 씨는 "남남이던 사람들이 같이 살면서 형·누나·동생이 되니 서로 의지할 수도 있고 또 하나의 가족이 생긴 것처럼 든든하다"면서 "같이 사는 사람이 있다는 것 자체가 큰 버팀목이 되는 것 같다"고 말했다.
수도권에서 통근이 불편해 회사와 가까운 여의도에서 셰어하우스를 구한 직장인 이성진 씨(29)도 현재 생활에 대해 큰 만족감을 나타냈다.
이 씨는 "현재 한 아파트에 4명이 함께 살면서 각각 보증금 200만원에 월 20만원씩 나눠 내고 있다"면서 "원룸보다 저렴하고 쾌적한 아파트에 살면서도 비용도 아끼고 외롭지도 않다"고 말했다.
◈ 외국은 이미 일반화…서울시도 가세셰어하우스는 이미 영국, 호주 등 외국에서는 일반화된 주거형태다.
셰어하우스가 국내에서 인기를 끄는 것은 주거비 부담을 덜 수 있다는 점이다. 여기에다 비교적 적은 돈으로 거실, 마당 등 원룸에서는 누릴 수 없는 공간들도 이용할 수 있어 입주자들의 만족도가 높다.
서울시는 이같은 추세에 맞춰 지난달, 첫 국내 셰어하우스형 공공임대주택인 '두레주택' 입주자 5가구를 모집했다. '입주민간 소통과 상호협력, 공동체 활성화 의미가 담긴 두레 주택은 도봉구 방학동에서 첫 선을 보인다.
서울시 관계자는 "두레주택은 1~2인 가구를 효과적으로 수용할 수 있는 신유형의 공공임대주택"이라면서 "도봉구 방학동의 셰어하우스가 모범 사례 될 수 있도록 사업 모델을 정립해 다른 구역에도 점차 확대해 나갈 계획"이라고 말했다.
◈ 집뿐 아니라 사무실도 '셰어 열풍'
(사진=이미지비트 제공)
사실 국내에 '셰어' 열풍이 먼저 도입된 것은 바로 사무실에서다. 특히 길목이 좋거나 상권이 집중된 서울 도심에서 초기 창업가들이 자비만으로 사무실을 임대하기란 결코 쉬운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또 큰 사무실이 필요없는 사람들에게는 평당 수천만원짜리 공간도 그저 버려지는 자리일 뿐이었다.
이같은 이유들로 보증금은 물론 사무실 임대료, 관리비, 전기료, 인터넷 요금 등을 함께 부담하면서 사무실을 같이 쓰는 '셰어오피스'가 국내에도 전파되기 시작했다.
셰어오피스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경제적인 이점도 있지만 무엇보다 비슷한 일을 하는 사람들끼리 모여 시너지 효과를 얻는 것이 가장 큰 매력이라고 입을 모은다.
지난해부터 강남의 한 사무실을 다른 창업가들과 함께 쓰고 있는 건축가 박영호(35·가명) 씨는 "비용 절약은 물론이고 비슷한 직종의 초심자들끼리 모여 일하다보니 서로 아이디어도 공유하고 동기부여도 돼 효율성도 높아진다"고 말했다.
5년 전 미국에 유학갔다가 셰어오피스를 보고 난 뒤 국내에서도 찾아봤다는 박 씨는 "처음에는 이 개념이 생소해서인지 입주자를 구하기 쉽지 않았지만 최근에는 주변 친구나 선후배들도 셰어하우스를 많이 찾고 입주자도 금방 만나곤 한다"고 전했다.
◈ 1인가구 450만 시대에 '안성맞춤'건국대학교 부동산학과 조주현 교수는 부동산 가격 폭등과 1인 가구의 급증 등 가족 구조의 변화에서 그 이유를 찾았다.
자녀들이 결혼 전부터 직장이나 학업 때문에 독립하는 등 나홀로족이 점차 증가하고 있는데 기존의 주거 형태에서는 가족 간의 유대에 대한 향수를 채울 수 없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