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창규 전 삼성전자 사장이 거대 통신기업 KT의 차기 회장 최종 후보에 이름을 올리면서 삼성의 글로벌 성공신화 DNA가 어디까지 확장될 지에 관심이 쏠린다.
앞서 지난 5일 대표적인 '삼성맨'으로 꼽히는 현명관 삼성물산 회장도 한국마사회장에 취임했다.
민영화된 공기업과 공기업이라는 차이는 있지만 수조원의 매출을 올리는 알짜 기업에 삼성 최고 임원 출신들이 연달아 임명된 셈이다.
최근 태광과 동부그룹 등 다른 기업들도 삼성 출신 고위 임원을 영입하는 등 '삼성 DNA 전파'가 유행처럼 번지는 모양새다.
◈ 반도체 전문가가 통신시장 접수? KT CEO추천위원회는 황 회장 후보자 인선 직후 "황 내정자는 미래전략 수립과 경영혁신에 필요한 비전설정능력, 추진력 및 글로벌마인드에서 가장 높은 평가를 받았다"고 밝혔다.
또 "정부와 경쟁사 등 회사를 둘러싼 다양한 이해관계를 조정하는 데도 탁월한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황창규 회장 후보자는 부산고와 서울대 전자공학과를 졸업하고 미국 매사추세츠주립대 전자공학박사 학위를 받은 뒤 삼성전자에 입사해 반도체총괄 겸 메모리사업부장 사장 등을 역입한 정통 엔지니어다.
지난 1994년 세계 최초로 256메가 D램 개발에 성공하는 등 삼성전자 반도체 신화의 주역이다. 이명박 정부 때는 지식경제부 연구개발(R&D) 전략기획단 초대 단장을 지내기도 했다.
하지만 KT 내부와 재계 일각에서는 성공한 삼성출신 고위 임원이 다른 기업 CEO로 잇따라 선임되는 것에 곱지 않은 눈길을 보내고 있다.
정선섭 재벌닷컴 대표는 "삼성 출신 브랜드가 삼성 관련 사업을 하는 데는 도움이 되겠지만 경제발전 다양성 측면에서 좋지 않다"며 "특히 민영화된 공기업에 사기업 출신 고위임원이 임명돼 성공한 사례가 많지 않다"고 말했다.
정 대표는 또 "황 내정자는 삼성 반도체라는 하드웨어 전문가인데 KT는 전혀 성격이 다른 통신서비스 사업자"라며 "거대 기업을 경영한 적이 없는 황 내정자가 KT 내부 갈등을 봉합할 수 있을지도 미지수"라고 말했다.
삼성이 글로벌 시장에서 성공한 기업으로 꼽히는 만큼 삼성 출신 인사들이 치열한 경쟁을 거치고 성공 노하우를 지녔다는 점은 인정하지만 이런 성공 DNA가 모든 기업들에 들어맞을 수는 없다는 우려다.
특히 KT는 통신 서비스라는 공공재적 성격도 있어 정부부처와 많은 협조를 해야하는 데 이런 경험이 전무한 사기업 출신이 감당할 수 없다는 지적도 나온다.
여기에 최근 미래창조과학부와 방송통신위원회 등 정부가 일명 '단말기 유통법' 통과에 힘을 쏟고 있는 가운데 단말기 제조사인 삼성전자와 SKT, KT, LGU+ 등 통신사업자의 이해관계가 미묘하게 다르다는 점도 부담이다.
가뜩이나 KT 단말기의 삼성전자 종속 논란이 계속되는데 차기 회장이 삼성전자 출신이라는 점에서 업계 내 또다른 갈등의 씨앗이 될 수 있다는 우려다.
◈ 전문경영인이 아닌 '흥행 보증수표' 아이콘
최근 박근혜 정부의 '공기업 메스 들이대기'의 연장선상에서 삼성 출신들의 약진을 바라볼 필요가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KT와 포스코 등 민영화된 공기업과 일부 공기업의 CEO 교체가 예정된 가운데 '창조와 혁신'을 대표하는 인사가 주목된다는 것.
글로벌 성공신화의 아이콘으로 요약될 수 있는 황창규 후보처럼 기업에 활력을 불어넣고 현정부와 코드를 같이하는 인사가 중용될 가능성이 큰데 역시 삼성 출신 인력풀이 넓다는 얘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