YTN 화면 캡처
17일 김정일 2주기 중앙추모대회에서 눈에 띄는 부분 중 하나는 핵에 대한 언급이 아예 없다는 것이다. 6자회담 재개를 위한 포석이라는 설명과 함께 이미 지난 6월 북한이 북미 고위급회담을 제안했을 때부터 이같은 태도는 예고됐다는 분석이 나온다.
1년 전 1주기 추모대회에서 북한은 "우리나라를 세계적인 군사강국, 당당한 핵보유국의 지위에 올려세우는 민족사적 공적을 이룩하시었다", "우리 조국을 그 어떤 원수도 감히 건드릴 수 없는 불패의 정치사상 강국으로, 핵 억제력을 보유한 무적필승의 군사강국으로 전변시키신" 인물로 김정일을 칭송했다.
장거리 미사일과 관련해서도 1주기 추모대회에서는 "성과적 발사" 등으로 표현됐던 것이 "우주기술" 정도로 순화됐다. 1년 전과 비교했을 때 추모사와 결의연설 등에서 '핵과 미사일'이라는 표현 자체가 사라진 것이다.
핵과 미사일이라는 '위험국가' 북한의 슬로건이 빠진 추모사를 두고, 전문가들은 6자회담 분위기를 조성하기 위한 노력이라는 분석을 내놓고 있다. 실제로 중국과 러시아는 장성택 처형 이후 다시금 회담 재개 드라이브에 나서기도 했다.
6자회담 수석대표인 우다웨이 중국 외교부 한반도사무특별대표는 지난 16일 러시아를 방문, 이고리 모르굴로프 러시아 외무차관과 만나 6자회담 재개를 위해 노력하자는 데 공감대를 형성한 것으로 전해졌다. 같은 날 왕이 외교부장은 "6자회담을 조속히 재개하길 희망한다"고 밝혔다.
앞서 왕이 외교부장은 15일 저녁 존 케리 미국 국무장관과의 전화통화를 통해 6자회담 재개 문제에 대해 의견을 나눴다.
특히 이같은 분위기는 북한이 전쟁 분위기를 고조시켰던 5월을 지나 6월 대화 공세로 전환하면서 일찌감치 예고됐다는 분석도 있다. 북미 관계정상화를 위해 핵을 포기할 수 있다는 메시지를 6월 16일 국방위 대변인의 '중대담화'을 통해 나타냈다는 것이다.
당시 북한은 '핵 없는 세계' 등을 위한 북미 고위급회담을 제안하면서 한반도 비핵화는 '김일성, 김정일의 유훈'이며 '반드시 실현시켜야 할 정책적 과제'라고 했다. 한반도 비핵화와 관련해 자신들의 목표는 '미국의 핵위협을 완전히 종식'시키는 것인 만큼 외부로부터 오는 핵 위협이 완전히 사라지게 되면 핵 보유를 포기할 수 있다는 점을 밝히고 있다.
북한이 핵문제와 관련하여 자신의 핵심적인 목표와 이해, 입장을 이번처럼 명확히 밝힌 것도 이례적이었지만, 앞서 3월 31일 당 중앙위 전원회의에서 '핵을 포기하지 않겠다'는 입장을 강조했던 입장에서 변화를 보인 것이다.
백학순 세종연구소 수석연구위원은 "김정은은 아버지와 할아버지 때부터 오랜 숙원이었던 북미 관계 정상화, 이를 통해 중국의 영향력에서 벗어나 자립경제를 이루는 것을 자기 시대의 과제로 삼고 있는 듯 하다"며 "추모식에서 핵과 미사일이 언급되지 않은 것은 6월 중대담화 때 보인 태도의 연장선"이라고 분석했다.
남은 문제는 북한의 이런 유화적 몸짓이 '가장 중요한 상대'인 미국에 먹히느냐 여부다. 미국은 최근 장성택 처형을 두고 강한 비판을 쏟아내면서 '협상이 불가능한 상북한'이라는 확신을 굳히는 모양새다.
한국은 미국과 중국의 엇갈린 입장 가운데 주도적 공간을 만들어야 하지만, 북한문제와 관련해서는 미국과 한 치의 거리도 허용하지 않고 있다. 정부 고위 관계자는 "핵을 가지고서는 북한이 경제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는 것을 깨닫는 순간이 올 것"이라며 "6자회담이 북한 비핵화라는 결과를 담보해야만 대화가 의미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