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하급 법원이 국가안보국(NSA)의 무차별적인 휴대전화 통화기록 정보수집 사건에 대해 엇갈리는 판결을 내놓고 있다.
한 1심 법원이 국민의 사생활권을 침해했다며 시민단체의 손을 들어준 반면 다른 1심 법원은 국가 이익을 위해 불가피하다며 정부의 편에 선 것이다.
결국 미국 연방 대법원이 합법 또는 합헌 여부를 결정할 것으로 보인다.
미국 뉴욕남부 연방지방법원은 27일(현지시간) NSA의 정보수집은 개인의 사생활을 침해하지 않은, 합법적인 행위이며 국제 테러 조직인 알카에다와의 전쟁을 위해 아주 중요한 요소라고 판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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윌리엄 폴리 판사는 시민단체인 미국시민자유연합(ACLU)이 NSA를 상대로 낸 소송에서 54쪽짜리 판결문을 통해 "이번 사건의 쟁점은 연방정부의 대량 전화 정보 수집 프로그램이 과연 합법적이냐다. 본 재판부는 그렇다고 인정한다"고 설명했다.
재판부는 "기술의 발전으로 알카에다가 점점 분권화하고 원격 테러 공격을 기도할 수 있게 됐다. 휴대전화 정보 수집 프로그램은 알카에다의 테러망을 제거하기 위한 미국 정부의 반격 무기(카운터 펀치)인 셈"이라고 부연했다.
재판부는 판결문에서 수차례 3천명의 목숨을 앗아간 9·11테러를 언급하면서 광범위한 대(對) 테러 프로그램이 끔찍한 사건의 재발을 막아줄 수 있다고 강조했다.
에드워드 스노든이 폭로한 '프리즘' 같은 감시 도구라야 '모든 정보'를 샅샅이 모을 수 있다며 NSA의 무차별적인 정보 수집을 합리화하기도 했다.
이번 판결에 대해 ACLU는 즉각 뉴욕 제2연방 순회항소법원에 항소하겠다는 방침을 밝혔다.
이 단체 자밀 재퍼 법률 자문은 "이번 판결은 지극히 실망스럽다. 헌법에 보장된 핵심 권리를 간과했다"고 주장했다.
반면 오바마 행정부는 환영 입장을 밝혔다.
피터 카 법무부 대변인은 언론에 판결문을 통째로 배포하면서 짤막한 성명을 내고 "재판부 판단을 다행스럽게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번 판결과 달리 워싱턴DC 연방지방법원은 지난 16일 NSA의 무차별적인 정보 수집은 위헌·위법이므로 이런 행위를 중단하고 관련 자료를 파기해야 한다는 판결을 내린 바 있다.
리처드 리언 판사는 NSA의 무차별적인 정보 수집이 국민의 사생활 권리를 침해하는 만큼 이를 중단시키는 명령을 내려야 한다며 오바마 대통령을 상대로 소송을 낸 시민단체 프리덤워치 측의 주장에 일리가 있다고 판결했다.
재판부는 "영장 없는, 불합리한 수색과 압수를 금지한 수정헌법 제4조에 근거할 때 원고(시민단체)가 승소할 가능성이 크다"고 설명했다.
리언 판사는 "모든 시민 개개인을 상대로 한, 이번 사건과 같은 조직적이고 첨단 기술을 동원한 정보 수집 및 보유보다 더 무차별적이고 임의적인 사생활 침해를 상상할 수도 없다"고 지적했다.
미국 건국의 아버지이자 헌법 제정에 참여한 제임스 매디슨도 이런 정부의 사생활권 침해를 보면 '경악할 것'이라고 비판하기도 했다.
이에 따라 오바마 행정부에 무선 통신 회사인 버라이즌 와이어리스를 통한 원고 측의 통화 기록 수집을 금지하고 현재 보유한 데이터를 파기하도록 하는 내용의 가처분 명령을 내렸다.
그러면서 이 1심 판결에 대한 항소 절차는 최소 6개월 이상 소요되고 이 사안에 얽힌 국가안보 이익의 중요성 등을 고려해 명령 이행을 항소심 결정 때까지 유보한다고 부연했다.
한편 뉴욕 지법의 폴리 판사는 민주당 소속의 빌 클린턴 대통령에 의해 임명됐고 워싱턴DC 지법의 리언 판사는 공화당 출신인 조지 W 부시(아들) 대통령으로부터 임명장을 받았다.
두 엇갈린 판결에 대해 패소한 시민단체와 오바마 행정부 모두 항소할 것으로 점쳐지는 만큼 연방 대법원 등 상급법원이 NSA의 정보수집에 대한 최종 판단을 내릴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