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17일 북한의 상호 비방 중단 제안을 일축한 것에 대해 향후 전략적으로 움직일 공간을 완전히 없앤 게 아니냐는 우려가 나온다. 유연성을 발휘할 만한 대목에서조차 정부가 대화의 실마리마저 단칼에 잘라버리면서, 북측이 대남 비난 수위를 높일 명분을 제공한 게 아니냐는 지적이다.
통일부 김의도 대변인은 이날 북한 국방위원회가 전날 상호비방을 자제하자며 발표한 중대제안에 대해 "사실을 왜곡하고 터무니없는 주장을 계속하면서 여론을 호도하려는 태도"라며 거부했다.
김 대변인이 밝힌 정부 입장은 일단 북한 제안에 대한 유감으로 시작해, 문제의 원인은 북측에 있는 것이라고 지적한 뒤 조건 없는 이산가족 상봉을 받아들일 것을 촉구하는 것으로 마무리된다.
북측이 대남기구인 조국평화통일위가 아닌, 격이 더 높은 국방위 차원의 제안을 했다는 점, 우리 정부를 공격하는 표현을 자제하고 유화적인 표현을 사용한 점 등을 고려하면, 단 칼로 자르다시피 한 정부의 반응이 지나치게 경직돼 있는 게 아니냐는 말이 나온다.
홍현익 세종연구소 연구위원은 "예정된 한미 군사훈련을 하지 말라고 요구한 것이 정부 입장에서 받아들일 수 없는 부분"이라면서도 "비방을 자제하자는 것과 북핵 논의를 하자는 것 등까지 한꺼번에 일축하는 것은 '굽히고 들어오라'는 메시지 밖에 되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남북 관계가 현재 '메시지 주고받기'에 머무를 수 밖에 없는 상황인 만큼, 이번 입장 발표에서 북한을 우리가 원하는 쪽으로 끌고 오기 위해 나름의 메시지를 심어둘 필요가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일관된 분석이다. 이번 입장에는 '대화를 위한 대화는 없다'는 원칙만 있고 남북 관계를 어떻게 끌고 가겠다는 '전략'은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