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당 김한길 대표. 윤창원 기자/자료사진
민주당 김한길 대표는 20일 광주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서 미당 서정주 시인의 시구(詩句)로 '호남 민심 투어'를 시작했다.
김 대표는 "어머니에게 꾸지람을 되게 들어 따로 어디 갈 곳이 없이 된 날에는 외할머니네 때거울 툇마루를 찾아와 오디 열매를 약으로 먹어 숨을 바로 한다"는 시구를 소개하면서 "호남에 올 때 저는 이 시구를 떠올린다"고 말했다.
민주당의 전통적 지지기반인 호남의 중요성을 강조하기 위한 발언이었지만, 광주항일학생운동과 민주화 운동의 성지(聖地)인 호남에서 서정주 시인의 이름이 호명되자 일부 참석자들은 고개를 갸우뚱했다. 서정주 시인은 친일인명사전에서 '친일파'로 등재된 인물이기 때문이었다.
광주 양동시장에서 상인들의 민심을 사로잡겠다던 김 대표의 계획도 속전속결로 끝났다. 김 대표가 이날 시장을 가로질러가며 상인들과 악수하는 데에는 10여분이 채 걸리지 않았다.
호남 민심을 되찾기 위한 위기의식에서 바짝 엎드릴 것이라는 예측과는 달리 김 대표는 상인들과의 대화에서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고마워요. 열심히 하겠습니다"라고 답하는 등 원론적인 태도를 보였다.
현대·기아차 협력업체인 주식회사 '호원'을 방문한 자리는 대중소기업 상생이란 말이 무색했다. 양진석 호원 대표이사를 비롯한 협력업체 대표들을 비롯해 김종웅 현대·기아차 부사장이 참석했다. 하지만 '상생'이라는 표어와는 달리 노조원은 참석 대상에 포함되지 않았던 것.
노조원과 같은 '을(乙)'을 위한 정당이 되겠다던 민주당의 주장이 무색해지는 대목이었다. 민주당은 당내에 '을지로위원회'까지 구성한 제1야당이다.
참석자들의 면면이 이렇다보니 간담회에서는 주로 "탄소세 시행을 늦춰달라", "통상임금 판결과 관련해 기업들에 크게 부담되지 않도록 검토해달라", "현행 70%인 농공단지 건폐율 제도를 개선해달라" 등 친(親) 기업적인 요구가 빗발쳤다.
김 대표는 이날 광주에서의 마지막 일정으로 광주지역 언론사 국장단과의 오찬을 가졌다. 선거 국면에서 역대 당대표와 대선 후보들의 핵심 방문 코스였던 광주 김대중컨벤션센터는 이날 광주 일정에서 최종 제외됐다.
새해 두번째 호남투어는 전북 부안 고병원성 조류인플루엔자(AI) 대책 점검, 전주지역 상인 간담 등으로 이어졌지만 지도부 행보에서는 절박함이 부족해 보였다.
이번 호남 방문에서 민주당 지도부의 키워드는 '안철수'와 '중원(中原)'이었다. 민주당의 안방인 호남에서 '안철수 신당 바람'을 차단하는 한편 중원을 공략해 중도층 표심을 이끌어내겠다는 전략이었다.
이른바 '집토끼'와 '산토끼'를 동시에 잡겠다는 구상이다. 하지만 이날 김 대표를 비롯한 민주당 지도부가 보여준 태도는 '과도한 우클릭'으로 외려 집토끼 단속에 실패한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민주당의 한 관계자는 "지도부가 아직 사태에 대한 본질을 파악하지 못한 채 '호남에 가면 대충 표를 주더라'는 식으로 절박함과 절실함이 없다는 게 문제"라며 "이번 호남 방문이 전통적 지지층에게 먹히기는커녕 오히려 역효과만 있었을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