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가장 중요한 패션 키워드 중 하나는 '젠더 플레이(Gender Play)'였다. '오버룩(over look)'으로 물든 여성 패션은 실제 자신의 몸집보다 크고 과장된 스타일을 강조하는 식이었다. 반면 남성 패션은 몸의 핏을 살리고 디테일을 간소화 한 '미니멀룩(minimal look)'이었다.
과거 여성의 오버사이즈 패션은 아우터(outer)에 머무는 정도였다. 하지만 올해의 오버룩은 모자가 없는 헐렁한 맨투맨 티셔츠와 일반 셔츠, 액세서리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아이템으로 확장됐다. 오버룩 열풍은 여성의 사회진출이 일반화되면서 그들이 과거의 내조자나 조력자의 역할에만 머무르지 않고 활발한 사회활동을 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아우터는 남자 양복을 입은 것과 같이 벌어진 어깨를 강조했으며, 통 넓은 와이드 팬츠로 과감함과 편안함을 추구하기도 했다. 또 큼직한 액세서리, 다양한 색깔의 힐 등은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옷을 입는 이에게 시선을 집중하게 했다.
과거의 여성 평상복은 목을 감추거나 여러 개의 작은 단추로 앞을 여미는 등 폐쇄적인 형태의 것이 많았다. 그러나 시대의 흐름에 따라 여성복은 몸의 선을 과감하게 드러내 는 것으로 진화했다. 현대에는 넓은 어깨, 넓은 소매, 어깨심 등으로 '여성을 남성처럼 보이게 하는 패션'으로 변화했다. 남녀의 역할 고정화를 거부하고, 남성과 여성이 서로 다르다는 생물학적ㆍ사회적 차이를 부정하는 사회적 인식 변화에 따른 것이다.
이전에도 여성의 오버룩이 주목을 받았던 적은 있다. 하지만 과거의 오버룩은 여성의 사회적 인식에 의한 것이라기보다 불안한 사회상을 반영한 것으로 해석하는 경우가 많았다. 경제적으로 여유롭지 않은 시기에 남자들 대신 가족의 생계를 책임져야 하는 여성이 많았고, 그게 패션에 반영됐다는 거다. 실제로도 오버룩은 전쟁이나 불경기와 같이 사회가 안정적이지 않은 상황에서 유행하고는 했다.
하지만 2013년의 오버룩은 달랐다. 현대의 여성은 경제력 있는 남성에게 여성성으로 어필해 편안하게 사는 삶을 거부한다. 이들은 '알파걸(Alpha Girl)'로 불리는 젊고 강한 엘리트 여성 집단으로 학업ㆍ운동ㆍ리더십 등 모든 면에서 남성에게 뒤지지 않는다. 자신을 적극적으로 드러내며 사회적으로 다양한 성취를 이루기도 한다. 재미있는 건 지난해 인기를 끌었던 남성의 이미지는 오히려 '베이비남'이었다는 사실이다. 드라마 '너의 목소리가 들려'의 이종석, '굿닥터'의 주원은 귀여운 미소년 이미지를 가진 '지켜주고 싶은 남자'로 인기를 끌었던 것도 같은 이유다.
패션에도 이런 경향이 반영됐다. 남성 패션의 키워드였던 미니멀룩은 편안함과 담백함을 반영한 패션으로 사회적인 성취보다는 일상적이면서도 꾸미지 않은 듯한 편안함을 강조한 것이다. 색상도 블랙 혹은 블랙 앤드 화이트 등 무채색이 많았다. 강한 색상으로 스스로의 개성을 강조한 여성 패션과 대조된다. 어쩌면 지금까지 사회적 성과와 성취, 리더로서의 역할 등에 지쳐 있었던 남성들의 보호받고 싶은 욕구와 안락한 삶을 지향하고자 하는 심리가 반영된 것일지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