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과 유럽연합(EU)이 러시아가 우크라이나 크림반도에 병력 6천명을 진입시켜 군사적 긴장을 높인다며 나란히 성토하면서도 대응 카드를 놓고서는 차이를 보이고 있다.
미국과 EU는 한목소리로 러시아의 군사 행동이 국제법 위반이라고 규탄하면서 공조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으나, 러시아와 경제 관계가 얽혀있는 회원국들을 둔 EU는 제재 방안에 대해서만큼은 미국보다 신중한 태도를 견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먼저 미국은 러시아에 대한 비자 발급 중단, 러시아 관료나 기업인의 자산동결, 투자·무역 관련 제재 등을 거론하며 러시아를 압박하고 나섰다.
존 케리 미 국무장관은 2일(현지시간) CBS, ABC, NBC 등 미국 3대 공중파 방송 시사프로그램에 잇따라 출연해 러시아의 파병을 '침략 행위'(act of aggression)라고 비판하면서 "미국 기업들도 이런 식으로 행동하는 나라와 사업하는 것에 대해 재고할 것"이라고 말했다.
미국의 이와 같은 상대적 강경 모드에 견주어 볼 때, EU 회원국들은 유럽안보협력기구(OSCE)나 유엔을 통한 국제중재로 이번 사태를 풀 것을 선호하는 것으로 보인다고 로이터 통신은 분석했다.
특히 독일, 프랑스, 영국, 네덜란드, 핀란드 등이 중재를 선호하고 있다고 로이터는 지목했다.
독일의 앙겔라 메르켈 총리는 이날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 통화에서 OSCE가 주도하는 진상조사 기구 설치 등을 제안해 받아들여졌다고 밝혔다. 러시아는 동독 출신 목사의 딸로 3선 연임에 이어 4선으로까지 내쳐 달리려는 메르켈의 독일을 그나마 미국 쪽으로 덜 기운 '중립형' 국가로 본다.
러시아와 국경을 접한 핀란드도 이번 사태 해결에 제재가 아닌 EU 지도자들이나 OSCE의 역할을 강조했다.
유럽의 이런 태도는 러시아와 밀착된 경제 상황이 배경으로 작용한다고 전문가들은 분석한다.
EU는 전체 석유와 천연가스 소비량의 ¼ 이상을 러시아에 의존하고 있다.
또 러시아는 미국, 중국에 이어 EU의 3대 수출 시장으로, EU는 2012년 1천230억 유로(181조5천억원) 상당의 상품을 러시아에 수출했다.
서방이 할 수 있는 대 러시아 제재 수단이 별로 효과적이지 않을 것이라는 점도 EU가 적극적인 제재 시도를 하지 않는 이유로 일부에서는 분석했다.
유진 루머 전직 미국 국가정보위원회(NIC) 연구원은 "서방이 푸틴을 물러나게 할 수 있는 선택지가 많지 않다"며 "경제 제재도 효과적으로 이행될 것으로 보이지 않는다"고 월스트리트저널(WSJ)에 말했다.